⑥ ‘임상재평가’…선택에 내몰린 제약사

서울지방법원 전경(왼쪽), 지난 5월 건정심 회의 모습.

[메디칼업저버 양영구·정윤식 기자] 코로나19(COVID-19)와 함께 했던 흰 쥐의 해인 경자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매년 순탄치 않았던 제약업계였지만, 올해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위협하면서 악재는 더 컸다. 게다가 코로나19 종식은커녕 내년에도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여 고난은 더해질 전망이다.

코로나19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업계 환경의 변화를 강제하고 변수를 창출했다. 이로 인해 예년과는 다른 형태의 변화가 다수 감지됐고, 국내·외 제약업계는 여러 방법으로 기민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대면영업을 중시해 온 국내 제약업계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온라인 영업이 대세를 이뤘고, 글로벌 제약업계는 법인을 쪼개고 품목군을 재조정하며 대처,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 중이다.

이와 별개로 제약사에게 난감한 선택을 강요한 경자년이기도 했다. 정부가 예고한 약제 재평가 제도의 시범사업 대상에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확정되면서 연간 3500억원에 달하는 시장이 축소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본지는 2020년 코로나19가 몰고 온 국내·외 제약업계의 변화된 모습과 달라진 환경, 그 외 핫 이슈 등을 정리해봤다.

① 언택트 시대…온라인이 대세
② 코로나19에 의약품 처방실적 '희비' 엇갈려
③ 새 옷 입은 글로벌 빅파마…실적 부진 여전
④ 코로나19, 악재속에서도 꽃피는 신약
⑤ 포스트 코로나, 임상시험도 '비대면' 접목
⑥ '임상재평가'…선택에 내몰린 제약사

[메디칼업저버 양영구·정윤식 기자] 2016년 이후 230여 개 품목이 등재되고 2019년 기준 3525억원의 청구액을 기록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대상환자 또한 2016년 98만명에서 2017년 121만명, 2018년 148만명, 2019년 185만명까지 증가해 3년 평균 증가율이 28%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종근당과 대웅바이오 등 130여개 제약사에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관련 허가사항 효능 및 효과별 유효성을 입증하는 자료와 국내외 사용현황, 품목허가사항 변경에 대한 의견 및 필요시 허가사항 변경안 등의 제출을 요구하며 재평가 카드를 만졌다.

이는 일각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허가사항을 증명할 근거가 부재하고 임상적 유용성이 떨어지며, 외국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문의약품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입장이 꾸준히 제기된 것과 보건시민단체에서 감사청구까지 진행한 사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관련 문헌 7편 중 6편이 알츠하이머 치매 대상 논문인데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총 3525억원의 처방액 중 치매 관련 처방액이 603억원 수준에(뇌대사관련 질환 2527억원) 불과한 것도 정부가 재평가 계획에 속도를 내게 한 계기가 됐다. 

국회의 지적도 이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1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9년 6개월여 동안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의 건강보험 청구액이 총 1조 7260억원에 이른다며 하루 빨리 약효에 대한 증명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외국 허가 및 급여 현황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스위스, 캐나다를 포함하는 A8국가 중 이탈리아 1개국만 허가했고 등재국은 없는 것도 치명타로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청구금액의 최근 증가율이 크다는 점 △해외에서 등재국이 없다는 점 △임상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지난 5월 제7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재평가 시범사업의 첫 타자로 선정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양윤석 과장은 "평가기준은 충분한 의학적·과학적 근거 및 의약적 표준 일관성, 대체가능성 및 투약비용, 임상적 근거기준 등이다"며 "등재약의 재평가 결과에 따라서 적절할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난감해진 제약사는 정부에 재평가 결과 재심의를 요청했고 복지부와 심평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의신청 건수가 결과를 뒤집을 만한 내용이 없다며 원안 유지를 결정했다.

즉, 최종심의 결과 종근당 등 130개 제약사의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236개 기등재 품목은 치매로 인한 효능효과 1에는 급여를 유지하고 그 외 효능효과(효능효과 1 중 치매 이외의 질환 및 효능효과 2, 3)에는 선별급여 본인부담 80%가 적용되게 된 것이다.

재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제약사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상재평가를 공고하면서 12월 23일까지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품목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제약사는 정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건강보험약제 선별급여적용 고시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임상재평가 준비에 들어갔다. 재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이 평균 2~3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한 대처였던 것. 우선, 소송에는 제약업체 78개사와 개인 9명이 참여했는데 첫 변론기일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선별급여 전환과정의 절차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원고(제약사) 측은 시범사업이라는 명분 하에 정부가 불분명한 절차로 기등재약의 일부 적응증을 선별급여로 전환한 것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피고 측은 급여목록 대상 변경이 아닌 기준 변경이기 때문에 절차상 특별한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급여의 적정성 여부를 정부와 제약사 중 누가 입증해야 하는지도 화두가 됐다.

이 같은 소송과 별개로 임상재평가 준비의 경우, 종근당과 대웅바이오 등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청구액 규모가 큰 일부 업체를 제외한 중소제약사들의 답답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임상시험을 주도하기 힘든 중소제약사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공동임상인데, 이는 매출 상위 제약사들이 어떤 디자인을 제안하느냐에 달렸고 고액의 비용을 투입해 참여한다고 한들 반드시 효능을 입증하리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관련 소송과 효능 입증이 끝난 후에 정부가 처방된 비용을 환수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 범위와 시기가 정해진 것이 없어 말 그대로 중소제약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

현재 2개로 분류된 임상재평가 그룹은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종근당·대웅바이오가 주도한다. 이 중 종근당·대웅바이오 그룹은 경도인지장애 뿐만 아니라 치매의 효능·효과 검증을 위한 임상재평가도 실시한다는 점에서 유나이티드제약과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도인지장애는 퇴행성과 혈관성으로 나눠 각각 95억원의 임상비용을 투입해 효능을 확인하고, 치매는 콜린알포세레이트+도네페질 병용투여군과 도네페질 단독투여군을 비교하는 방식을 채택해 약 100억원을 투입한다. 약 300억원에 달하는 임상비용은 참여 제약사 균등 분담이다.

만약 종근당·대웅바이오 그룹에 총 30개 제약사가 참여한다면, 제약사 한 곳당 약 10억원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한해 청구액이 10억원에 못 미치는 제약사는 임상재평가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볼 수 있지만 10억원 전후인 제약사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재평가를 주도하는 제약사가 제시한 모집 기한은 이미 끝났고 계획서 제출 마감에 따른 식약처의 품목허가 취소 조치도 곧 이뤄질 예정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2020년 한 해 동안 제약사의 고민거리가 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시범 사례가 약제 재평가 제도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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