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부 양영구 기자.

제약 강국이라 불리는 선진국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시작한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70여 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속 빈 강정'인 느낌이다. 

최근 국내사들의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며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분석하면서 기자는 글로벌을 외치는 제약사의 모습에 부끄러웠다. 국내사들이 다른 회사의 물건을 팔아주는 상품매출은 여전히 증가추세였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국내사는 여전히 자체 기술력보다 글로벌 제약사가 연구개발한 블록버스터 신약을 판매대행하는 것으로 수익을 채우는 모습을 보자니, '미래 먹거리, 글로벌 산업, 제약 강국'을 외치는 구호마저 낯 뜨겁다. 

이는 지난해 1조원 클럽에 가입한 3곳의 국내사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A 제약사는 지난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상품매출로 채웠고, B제약사도 절반에 가까운 44.5%를 다른 회사의 상품 판매액으로 채웠다. 제약사인지 식음료기업인지 정체성이 모호한 C제약사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국내사들이 글로벌 제약사의 도매상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일각의 비판을 반박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의약품을 개발하기보다 판매하는 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제약산업이라는 특성상 여러모로 규제도 따르고 약가인하 등 리스크도 많은 탓에 안정적인 캐시카우 확보를 위한 상품 판매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상품매출 비중이 확대될수록 외형성장 효과는 물론, 신규 영역 진출, 오리지널 상품을 앞세운 자사제품 판매 시너지 효과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게다가 상품판매를 통해 확보된 캐시카우를 신약개발을 위한 R&D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십분 공감하는 바다. 

비록 이전과 비교할 때 상품매출 비중이 상당히 줄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문제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상품의 판권이 회수될 경우, 해당 상품의 몫을 대신하거나 대체할 자사 제품이 빈약하다는 부분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글로벌 경제 침체 등을 이유로 제약사 본연의 역할보다는 식품, 화장품부터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수익성 좋다는 먹거리를 찾고자 열중하는 국내사들의 모습을 보니 뒷맛이 씁쓸하다.

그간의 세월 동안 우리나라 제약산업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한 국내사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제약산업이 진정 우리나라를 짊어질 미래 먹거리가 되길 바란다면 상품 매출은 줄이면서 자사 제품 개발에 몰두하려는 제약업계의 자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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