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터널·규제입법 속에서 좌절감 팽배 ...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 소명감마저 생채기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2016년 621개 직업종사자 1만 9127명을 대상으로 '직업만족도' 결과를 발표했다. 

직업만족도는 해당 직업의 △발전 가능성 △급여만족도 △직업 지속성 △근무조건 △사회적 평판 △수행직무만족도를 평가한 개념이다. 이번 조사에서 일반의사는 21위, 전문의사 27위, 치과의사는 54위에 위치했다. 
621개 직업 중 21위를 차지한 의사의 직업 만족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의사는 돈 잘번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졌다"

이 조사결과를 두고 대한의사협회 집행부 측 생각과 현장에서 진료하는 의사들 생각이 조금 달랐다. 또 대학교수와 개원의들 생각에도 차이가 있었다. 

의협 측은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했다. 
의협 한 관계자는 "621개 직업 중 의사가 21위를 차지한 것은 좋은 성적 아니냐"고 반문하며 "정부의 악법이나 규제가 해결되면 만족도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데 일선 의사들은 일생 의술을 베풀며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살겠다고 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특히 개원의들은 "만족도를 생각하기 이전에 먹고 살기조차 어렵다"란 현실적인 목소리를 쏟아낸다.   

서울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김 모 원장은 "의사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지난 30년 동안 개원가 사정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한번도 좋아진 적이 없다"며 "사회적 분위기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니까 보람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흉부외과를 운영하는 전 모 원장도 팍팍해진 개원가 얘기를 꺼냈다. 
전 원장은 "스트레스도 많고 환자들의 불만 불평에 시달리는 등 안 좋은 점이 많은 직업이지만 그럼에도 사명감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많다"며 "최근 개원가 수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과거에는 힘들어도 수익이 어느 정도 되니까 참았는데 이젠 그마저도 안 되니 정말 힘들다"고 호소했다.

대학병원 교수 등은 개원의 반응보다는 덜 자극적이었다. 
분당서울대병원 백 모 교수는 "과거보다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어졌고 의사와 환자가 계약관계가 되다 보니 만족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병원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해도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이자 교수라서 개원의들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과거에 비해…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만족도 떨어져" 

개원의들이 과거보다 수입이 적어져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의협 측 인사도 같은 주장이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그는 "과거 개원의가 개원했을 때 도시 근로자의 5배 정도 수입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2배 정도밖에는 벌 수 없다"며 "의대와 병원 수련기간 등을 고려하면 수익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의사들이 과거보다 수입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학병원이나 인기과 봉직의들이 1억 2000만원~2억 정도 연봉을 받고 있다"며 "의사들이 과거 수익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의사 수익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서울의대 김 모 교수는 현재 의사들의 수입이 줄었지만 외국과 비교해 고소득이라는 주장을 폈다. 선진국 국가 의사들은 중소도시 도시 근로자의 3~5배 정도 임금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그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또 "의사사회 내부에서의 불평등 즉 개원가와 대학병원 혹은 진료과 간 소득 격차 심화가 의사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까지…왜 존경받지 못하는 의사가 됐나?

의사가 환자에게 존중이나 신뢰받지 못하게 된 것도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보인다. 그런데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개원의들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에 방점을 뒀고, 일부에서는 의협의 역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감에도 정부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개원의들의 하나 된 목소리다. 

한 개원의는 "요즘 가장 힘든 것은 국회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의료악법이다. 이 법들이 진료에 영향을 미쳤냐 하면 그렇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의사로서 자존감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열심히 공부해 의료분야 최고 전문가인 의사가 됐다. 그런데 의료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정책들은 비전문가들의 손에서 뚝딱 하고 만들어진다. 전문가인 의사들은 그들의 손에서 나온 결과물에 따라 각종 규제를 받는 처지다. 정말 이러려고 의사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호소했다. 

또 "의료정책은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 만들어진 정책은 곧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며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 무책임한 입법이 계속 이어져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대립구조가 의사들을 존경받지 못하게 한다는 진단도 했다. 
전 원장은 "미국은 치료하기 전 보험회사에 허락을 받는 시스템이다. 의사는 좋은 치료를 하고 싶어도 보험회사 때문에 할 수 없다. 즉 의사와 환자가 같은 편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며 "우리나라는 치료한 후 삭감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치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의사가 좋은 치료가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기적 기득권 집단 오명 벗어야"

의사들이 수익도, 그렇다고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되는 처지에 이르도록 그동안 의협은 무얼 하고 있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제 의협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의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으로부터 의사들이 돈만 아는 이기적 기득권 집단으로 몰려 있어, 이런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의협이 국민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 원장은 "의사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가 워낙 장기간 나쁘게 인식돼 왔기 때문에 의협이 대국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의협은 생각도 의지도 없는 것 같지만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알리는 작업이 없어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 원장도 의협이 기존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건강보험공단은 선한 이미지를 주는 브랜드 광고를 한다. 그런데 의협은 가끔 신문 하단에 광고하는 정도"라며 "국민이 보기에 정부는 우리 편, 의사들은 돈 벌려는 나쁜 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언론이 부도덕한 의사들과 관련된 사건·사고를 집중보도해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지 않았나 반성하자"

의사들이 집단 내에서 스스로 불행을 재생산한다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의협 회장 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의사들이 피해자라고 선동해 표를 모으고, 이를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는 피해자'란 키워드로는 결코 지금의 의료 현안을 풀 수 없다고 했다. 의료계가 의도적으로 고립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모 의대 교수는 자기 이익만 요구하고, 사회와 동떨어진 인식과 판단을 내리는 집단에 어떤 국민이 귀를 기울이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사들이 얘기하는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다. 우선 어렵다거나 혹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이후 정부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다음에는 국민이 의사를 불신한다고 불평한다"며 "피해자란 자조적 목소리를 내면서 의사들이 내부 결속을 이룬다. 이런 방식이 의사들을 불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들이 자영업자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라는 이미지를 벗지 않으면 국민에게 존경받는 직업으로 거듭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의협이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발언하고 싸운다면 국민이 나서서 의사들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왜 진찰료가 올라야 하는지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개원가가 어려우니 올려 달라고만 한다. 국민은 똑같은 진료를 받고 돈을 더 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의사들이 국민의 시각에서 이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대표도 의협이 국민 입장에서 사고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진단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단순히 투쟁, 수가인상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민과 걸음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의협 활동에 대한 회원들의 기대가 크다는 점 잘 알고 있다. 올바른 의료정책을 만들기 위해 대국회, 대정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다만 현실적인 한계들도 존재한다. 일례로 정부, 공단, 심평원 등은 바뀌지 않지만 의협은 임기제 집행부이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지고, 의정회(구 의협 대국회 로비조직) 같은 조직을 다시 운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민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최근 시민단체와 '진료실 문화 바꾸기' 캠페인을 시작했다"며 "의협 집행부가 시민단체나 국민과 접점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땅에 떨어진 신뢰와 여론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는 없겠지만 조금씩 접점을 넓히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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