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병원계 "전공의 빈자리 누가 메우나" vs 전공의·개원가 "또 다른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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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국회의원회관, 이날 국회에서는 '전공의 육성 및 수련환경 개선'을 주제로 서울대병원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시행에 들어간 전공의 특별법의 후속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논점은 곧 PA(진료지원인력, Physician Assistant) 양성화 시비로 옮겨갔다. 

전공의 특별법 시행에 따라, 내년 연말을 기해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조치를 행해야 하는 병원계가 전공의 인력 공백에 따른 해법으로, PA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면서 병원계와 전공의협의회간 논쟁이 벌어진 것. 치열한 논박에도 불구, 양측은 이날 토론회에서도 서로의 입장차만 재확인한 채 돌아섰다.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규정’ 시행을 앞두고, 병원 내 진료지원 인력, 이른바 PA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분위기다. 병원계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호스피탈리스트 활성화와 더불어 PA 양성화 등 인력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입장. 반면 전공의와 개원의사들은 "또 다른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 수련시간 단축 관련 주요 내용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 법정 전공의 수련시간 주당 80시간(교육목적 시 주당 8시간 연장수련 가능)/ 연속근무 상한 36시간/ 응급상황 발생 시 40시간/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 휴식시간 보장

- 위반시 1차 200만원, 2차 350만원, 3차 500만원 과태료(2018년 12월 23일부터)

의료인 범주 들지 않는 법외 직종…인력 규모 수천명

▲국립대병원 PA인력 현황

PA는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의 종류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로 정하고, 각각의 자격기준과 역할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PA는 이들 법정 의료인력에 속하지 않는, 이른바 법외 직종이다.

통칭 PA로 불리지만 그 정의 또한 명확치 않다. 국가 자격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필요에 따라 임의로 인력을 채용하는 형태다 보니 자격요건도 업무범위도 사례별로 제각각이다.  실제 어떤 사람들이, 병원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된 바 없다.

다만 병원계의 전언을 종합하자면 이들은 병원 내에서 PA 또는 SA(Surgeon's Assistant), NE(Nurse Expert),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진료지원간호사 등으로 불리우며 병원의 필요에 따라 단순 행정업무부터 진료영역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수술이나 시술보조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입원환자 약 처방을 내리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는 응급실 근무 등 진료영역을 담당하기도 한다. 

간호사 출신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간호조무사와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등 '비의료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병원은 간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경력자 등으로 지원자격을 제한하지만, 일부에서는 별도의 자격요건 없이 말 그대로 보조인력의 개념으로 PA를 채용하기도 한다.

국가관리 자격이 아니다 보니 활동인력의 파악도 쉽지 않다.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전국 국공립병원에서 활동 중인 PA 숫자는 800여 명, 민간의료기관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숫자는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전국 49개 국공립병원 가운데 25개 병원에서 총 859명의 PA 인력이 고용돼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병원간호사회가 전국 201개 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 병원의 PA 숫자는 2015년 현재 2921명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기관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무영역 '코에 걸면 코 걸이', 합법-불법 경계선 줄타기

당초 PA는 병원 내 인력공백을 메울 수 있는 손쉬운 대안으로 병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병동 내 행정업무 지원자, 수술방 간호사, 응급실 당직 의료인 등 당장 일손이 부족한 곳에 PA를 투입해 병원을 돌리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PA들은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현장에서 PA가 단순 행정업무 등을 지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면허·자격이 없거나 면허·자격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의사의 지도와 감독 없이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직접적인 수술과 시술, 처방 등 의사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PA가 수행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은 "의사가 해야 할 일을 간호사가 하거나, 심지어 면허나 자격도 없는 사람이 하고 있다면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이는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해법을 놓고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병원계는 "PA의 존재와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불법 인력이라는 오명을 벗고 PA가 당당한 병원 내 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한된 업무영역에 한해서라도 PA를 법제화, 양성화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A 대학병원 관계자는 "PA의 존재와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전공의특별법의 시행으로 그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대선이 끝나고 공무원 사회가 자리를 잡으면 PA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정책적, 법률적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B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계 입장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나 PA처럼 잘 교육받은 대체인력이 절실하다"며 "감염관리간호사 등 전담간호사처럼, PA 제도를 활용해 수술전담간호사를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의사가 해야 할 행위를 빼고 말 그대로 진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PA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적 한계" vs "부작용만" 수년째 평행선 공방

 

반면 전공의와 개원의들은 PA제도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기 회장은 "비정상이 많아졌다고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이는 불법행위가 많으니, 해당 행위를 합법화하자는 것과 같은 궤변"이라고 반박했다.

기 회장은 "PA를 양성화하자는 병원계의 주장은 현실의 벽을 가장한 자본의 논리다. PA가 어떤 방향으로든 양성화된다면, 병원들은 수련환경을 개선하거나 호스피탈리스트를 고용하려는 노력 대신 PA를 쓸 것"이라며 "의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으로 당장 정상 진료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병원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PA 양성화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병원계 일각에서는 전공의들이 수련시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당장 일손부족에 시달릴 병원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이자면서 대체인력은 쓰지 못하게 하면, 일은 누가 하느냐"며 "이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 관한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PA 상당수는 전공의 기근현상을 겪고 있는 외과계열에 몰려 있다"며 "이는 병원들이 단순히 값싼 임금을 이유로 PA를 찾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 회장은 "가혹한 전공의 수련환경, PA의 난립과 이로 인한 혼란 모두 당장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병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비롯돼 온 일"이라며 "언제까지 땜질처방만 반복할 것이냐.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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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공감을 표하고 있다. 국민건강에 밀접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임에도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수년째 사실상 문제가 방치돼온 만큼, 적어도 PA 실태파악 등 기초작업은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PA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며 "합법화 논의가 있다면 더 미루지 말고 이번 기회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실태파악과 대안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복지위 관계자는 "PA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지만 현재로써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쪽에서는 이를 양성화하자고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사실상 실체 없는 논란만 반복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찬반을 떠나 PA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PA 직군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런 다음에야 실제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회의 지적에 따라 복지부가 뒤늦게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PA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지만, 속도는 더디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 문제 제기에 따라 현재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실제 병원에 얼마나 많은 PA가 근무하는지, 실제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기초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다만 워낙 민감한 사안인 데다 비공개를 전제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PA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정책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며 "일단 PA의 정의, 현황, 실태 등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며 추후 이를 검토해 그 결과를 토대로 정책방향을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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