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업무부담 가중 우려…편법 시도 우려에 CSO 지적도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보건복지부가 오는 2018년 1월부터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하자 제약업계는 이른바 '아비규환'이다. 의료인의 서명을 반드시 받도록 한 지출보고서로 인해 업무가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일부 제약사에서는 지출보고서 작성을 하지 않기 위해 편법을 논의하기도 했고, CSO(영업전문대행업체, 판매대행사 포함)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 지출보고서 양식 공개…의료인 '서명' 유지 

보건복지부는 15일 한국제약협회에서 설명회를 열고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양식 수정안을 공개했다. 

지출보고서 양식은 △견본품 제공 △임상시험 지원 △제품설명회 △시판 후 조사 △학술대회 지원 △대금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 할인 등 7개 유형으로 정리됐다. 핵심은 '서명' 기입.

당초 정부는 각각의 지출보고서 양식에 경제적 이익 제공 내역과 함께 이를 지원받는 의료인의 이름과 소속, 면허번호, 서명 등을 기재토록 했지만, 논란이 일자 면허번호는 삭제했다.  

복지부 약무정책과 박재우 사무관은 이날 설명회에서 "지출보고서는 HCP(Heath Care Provider)에 제공된 경제적 이익이 약사법상 허용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라며 "서명은 합법적인 경제적 이익 수수에 대한 의료인과 제약사 간의 쌍방합치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아비규환’…"서명 기입, 업무부담 불보듯"

지출보고서 양식이 의료인 서명만 받는 것으로 완화됐지만, 제약업계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서명을 받는 것조차 업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예를 들어 제약사 MR이 자사의 견본품을 제공했다면 수수 증빙을 위한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해당 MR이 관리하는 거래처가 20곳이라면 스무장의 지출보고서를 들고 서명을 받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제품 설명회에 참석한 의료인과 이 과정에서 제공된 식음료를 매칭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가 공개한 복수기관 제품설명회 지출보고서 양식에 따르면 참석 의료인에게 지원된 교통비, 기념품, 숙박, 식음료 금액을 반드시 기입해야 한다. 

A 국내사 CP팀 관계자는 "복수기관 제품 설명회라면 방명록 형식으로 참석자의 서명을 받는 게 용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참석자와 제공된 식음료를 대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아울러 참석자와 서명자를 대조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품 설명회를 열었다는 기록을 사진으로 남길 경우 장소, 날짜 등이 모두 명시돼 있고, 사진의 위·변조 여부도 쉽게 판독할 수 있다"며 "정부가 굳이 서명을 고집하는 건 결국 제약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겠다는 의미"라고 토로했다.  

스리슬쩍 편법 논의도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소식이 알려진 이후 편법을 고민하는 제약사도 있었다. 

국내 한 제약사는 최근 회의자리에서 지출보고서에 기입하지 않은 채 음성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전언이다.

해당 제약사 관계자는 "회의자리에서 CP 부서는 보다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영업부서에서는 편법을 통해 악용할 생각부터 하더라"며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영업사원들에게 지출한 것처럼 꾸미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B 국내사 관계자는 "우리는 제품 설명회 증빙을 방명록 형태로 진행하다 사진 촬영으로 대체했다"며 "참석자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동일 참석자라도 날짜마다 서명이 다른 경우도 있었고, 일부 영업사원은 자주 참석하는 의사의 도장을 제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편법이 발각될 경우 가중처벌을 받게 될 거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빙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했다. 

중견 국내사 관계자는 "법률 전문가에 문의한 결과, 서명 조작의 경우 이를 대조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자문을 받았다"며 "예를 들어 날짜마다 서명이 다를 경우 이를 법적으로 따져가며 증빙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영업부서도 편법에 대한 우려는 마찬가지다. 

한 국내사 영업부 관계자는 "견본품 등 1년에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이 얼마나 많은데 일일이 서명을 받겠나"라며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로 인해 마케팅과 영업은 더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리 사각지대 'CSO'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 과정에서 CSO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CSO에서 제품설명회를 개최한 이후 공급받은 의약품 제조사에 참석자 서명을 받아 제출할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C 국내사 관계자는 "지출보고서 의무 대상에 CSO는 제외됐다"며 "여러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아 총판 형식으로 판매하는 CSO는 결국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D 국내사 관계자도 "CSO에서 보고의무나 서명의무가 없다며 의료인에 접근한다면 의료인이 서명 자체를 불편해하는 상황에 어느 누가 제약사 MR을 환영하겠나"라며 "복지부는 CSO의 불법 행태가 만연한 뒤에야 문제를 깨달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CSO가 판매한 자사 의약품 수수료도 지급하고 문제 발생 시 처벌도 우리가 받으라는 것"이라며 "CSO가 저지를 불법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건 너무하지 않나"고 토로했다. 

복지부는 CSO가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다만, 처벌이 가능해 관리 사각지대는 아니라고 말했다.  

복지부 박재우 사무관은 "CSO는 의약품 공급자가 아니기에 지출보고서 의무작성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도 "약사법 처벌대상에 포함되진 않겠지만, 공정거래법상 부당고객유인행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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