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주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지난 겨울 중국 베이징과 인도 뉴델리는 살인적인 스모그에 시달렸다. 이들 도시의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의 20~30배에 달했다.

중국은 '스모그와의 전쟁'을, 인도는 '국가 비상사태'를 각각 선포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의 겨울 하늘은 잿빛이었다.

올봄 황사도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를 싣고 서울 거리 구석구석에 들이닥칠 것이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매년 1만5000명이 대기 오염으로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가 탁할 때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오고, 숨쉬기 어려웠던 경험이 없는 이들은 드물다.

미세먼지는 장기적으로 심장과 폐에 심각한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대기 오염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대기오염이 정신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불안과 우울, 분노, 짜증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그날의 기분이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와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더 우울하고, 대기오염이 심한 날

미세먼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보고도 있어

가족 간 다툼이 늘어난다는 중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오염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홍윤철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서울시민 500명을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행복감과 의욕이 줄고, 걱정과 절망이 늘어났다.

대기오염이 단순히 기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과 자살 위험과도 관계가 있다. 스웨덴에서 청소년 55만명을 3년 반 동안 조사해보니,

미세먼지가 높은 지역에 살면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도시 6곳에서는 미세먼지가 증가하는 날 우울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우울증으로 인한 응급실 방문은 많은 경우 자살 시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연구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5~2009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의 공기가 나빴던 날 우울증이 악화돼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스모그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기오염은 인지기능에도 악영향을 준다. 대기오염은 어린이의 두뇌 발달을 저하시키고, 지능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스페인에서는 매연에 노출된 초등학교 학생의 지능 발달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늦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된 산모의 아이는 7살이 되었을 때 지능이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미세먼지는 성인의 뇌 노화도 4~5년가량 앞당긴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낮아지고, 치매 위험도 올라간다. 지난해 Lancet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 주민 660여만명을 10년간 추적해보니 매연이 심한 도로 근처에 사는 사람은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이보다 치매 확률이 커졌다.

이처럼 몸의 문제로만 여겼던 미세먼지는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보가 전해졌을 때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을 깨끗이 씻고, 창문을 닫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우리 몸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에는 이같은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도 잘 관리하는 건 어떨까.

봄철 불청객 황사가 또 찾아와 잿빛 하늘 아래 숨이 답답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 대기오염이 우리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대기오염이 정신건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여유를 즐기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우울이나 불면 등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난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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