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연구에서 위약 대비 강력한 혈압 조절 입증

2제 복합제를 넘어 3제 복합제가 주목받고 있는 고혈압 치료제 시장에서 '4제 복합제'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점쳐졌다.

The Lancet 2월 9일자 온라인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치료를 받지 않았던 고혈압 환자가 혈압을 낮추는 4가지 성분이 결합된 약물을 한 알로 먹었을 때 혈압 감소 효과가 뚜렷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이상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상당수의 고혈압 환자가 혈압을 낮추기 위해 단일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단일제만으로 수축기/이완기 혈압을 평균 9/5mmHg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혈압 조절이 요구되는 고혈압 환자에게는 이보다 강력하게 혈압을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때문에 단일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내약성도 잡을 수 있는 복합제 개발에 불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호주 시드니의대 Clara K Chow 교수팀은 4제 복합제로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파일럿 연구를 디자인했다.

연구에서 적용한 고혈압 치료제는 이뇨제, 안지오텐신 II 수용체 차단제(ARB), 칼슘채널차단제(CCB), 베타차단제로 각각 히드로클로로티아자이드(hydrochlorothiazide) 6.25mg, 이르베사르탄(irbesartan) 37.5mg, 암로디핀(amlodipine) 1.25mg, 아테놀올(atenolol) 12.5mg을 상용량의 4분의 1씩 한 알에 결합했다.

총 4개국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를 모집했다. 평균 나이는 58세였고, 등록 당시 평균 진료실 및 24시간 수축기/이완기 혈압은 각각 154/90mmHg와 140/87mmHg였다.

연구팀은 환자군을 4제 복합제 치료군(18명) 또는 위약군(18명)에 무작위 분류해 4주간 약물을 복용하도록 했다. 이후 2주간 휴약기간(wash-out)을 가지고 다시 4주간 치료했다. 

그 결과 4제 복합제 치료군에서 평균 24시간 수축기 혈압이 19mmHg, 진료실 혈압이 22/13mmHg 감소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단일제의 혈압 감소 효과와 비교하면 2~3배 더 강력한 효과가 입증된 셈이다. 

아울러 진료실 혈압이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된 환자는 위약군에서 단 6명에 그쳤지만(33%), 4제 복합제 치료군에서는 100% 조절률을 달성했다(RR 3.01; 95% CI 1.54~5.89; P=0.0013).

4제 복합제 복용에 따른 이상반응 문제에서도 청신호를 밝혔다.

4제 복합제 치료군에서 심각한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을뿐더러 환자들은 복합제를 먹는 데 불편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어 연구팀은 고혈압 치료제 상용량의 4분의 1을 복용했을 때 위약 대비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한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문헌고찰했다.

4700여 명이 포함된 36건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 상용량의 4분의 1을 한 알로 먹었을 때 위약보다 혈압이 5/2mmHg 낮아졌다. 이상반응이 나타날 위험은 위약과 같았다(RR 1.0; 95% CI 0.88~1.10). 

이와 함께 약 300명이 포함된 6개 연구를 문헌고찰한 결과에서도 상용량의 4분의 1을 두 알로 복용했을 때 위약 대비 혈압이 7/5mmHg 감소했다. 이상반응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Chow 교수는 한 외신(Medscape)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4제 복합제로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네 가지 약제를 한 알로 먹었을 때 서로 보완하는 메커니즘이 놀라운 약물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소규모 연구로 대표성 부족…2·3제 복합제와 효과 비교 필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연구에 포함된 환자군이 적고 이번 연구만으로 4제 복합제가 2, 3제 복합제보다 더 좋은 약제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 템플의대 Alan H Gradman 교수는 논평을 통해 "파일럿 연구이지만, 연구에 포함된 소수 환자가 전 세계 고혈압 환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뿐만 아니라 2, 3제 복합제도 유사한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복합제 간 비교한 결과가 없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의대 Steven Chrysant 교수는 한 외신(heartwire)과의 인터뷰에서 "이전 연구에서 하나의 약물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다제복합제인 폴리필(polypill)이 실제 임상에서 용량 조절 등 유연하게 처방할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의사들이 폴리필 처방을 주저한다고 밝혀졌다"면서 "현재 폴리필이 여러 나라에서 승인됐지만, 임상 적용에는 여러 제한점이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점을 인정하면서 "이번 연구는 파일럿 연구로 적은 인원만을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향후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복합제로 비순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강점을 제언했다. Chow 교수는 "많은 고혈압 환자가 여러 약제를 먹으면서 비순응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약을 하나로 먹는 것이다. 또 복합제 치료 시 용량을 점차 늘리면서(uptitration)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연구팀은 고혈압 1기 및 2기 환자에서 표준용량 이르베사르탄과 4제 복합제를 12주 및 1년간 복용했을 때 효과를 비교하는 QUARTET 연구의 닻을 올릴 계획이다.

이 연구에서는 파일럿 연구와 달리 아테놀올을 비소프롤롤(bisoprolol)로, 히드로클로로티아자이드를 인다파미드(indapamide)로 변경할 예정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올메살탄(olmesartan), 암로디핀,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를 결합한 고혈압 3제 복합제가 시판 허가를 받았으며,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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