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시작되는 환자경험평가…문항 객관성 ‘도마위’
의료계·병원계 "주관적 설문…불신 조장" VS 심평원 "경험의 양 평가해 객관적 도출 가능"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의사가 환자분을 대할 때 존중하고 예의를 갖췄나요?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시겠어요?"

오는 7월부터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환자들이 받게 될 수화기 너머의 질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환자로부터 의료진의 의사소통, 투약 및 치료과정 등 입원기간 중 겪은 경험을 확인하는 형태의 새로운 평가인 '환자경험평가'를 적정성평가에 도입키로 하자 의료계와 병원계가 들끓고 있다. 

심평원은 환자 만족도 위주의 평가가 아니라 의료기관을 이용한 이후 느낀 경험을 객관화해 평가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평가를 위한 설문조사 문항의 타당성도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 질 제고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도리어 의사-환자 간 불신만 조장하는 ‘악제’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500병상 이상 의료기관 대상…7월부터 시작 

심평원은 최근 2017년도 요양급여 적정성평가 계획을 공개하며, 환자경험평가를 도입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환자 경험은 의료질의 핵심 구성요소이자 이미 여러 국가에서 보건의료체계 성과평가를 위해 환자경험을 필수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도입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환자경험평가는 상급종합병원과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1일 이상 입원했다 퇴원한 지 8주 이내의 만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500병상 이상~1000병상 미만은 150명, 1000병상 이상~1500병상 미만 200명, 1500병상 이상 250명의 환자를 설문 대상자로 선정한다. 다만 낮병동,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는 제외된다. 

환자경험평가는 전화를 통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실제 조사는 심평원으로부터 위탁받은 전문조사업체가 진행한다. 

심평원이 청구자료를 기반으로 환자경험평가 대상자를 추출, 요양기관에 대상자 명단을 제공하면 요양기관은 심평원에 평가대상자의 전화번호를 제출한다. 

이렇게 마련된 전화번호를 전달받은 전문조사업체는 설문지를 활용해 전화조사를 시행하고, 심평원은 그 결과를 분석하는 형태다. 

설문지는 총 24개 문항으로 구성됐는데, 각 문항별로 0~100점까지 점수를 부여, 결과값을 산출한다. 심평원은 오는 12월 평가 결과를 토대로 이를 분석,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며, 내년 5월 평가결과를 보고하고 공개 또는 활용방안을 의료평가조정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심평원은 "평가대상 요양기관에 평가 결과와 비교정보 등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평가 결과의 공개 여부와 범위, 방법 등은 추후 의평조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설문 문항 총 24개…"객관성 담보 될까?"

의료계와 병원계는 환자경험평가의 설문지를 문제 삼는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설문 문항을 살펴보면 문제로 지적할 만한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특히 24개로 구성된 문항은 너무 많을뿐더러 전화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평원이 내놓은 환자경험평가를 위한 평가도구, 즉 '설문 문항'의 내용은 크게 영역별 환자경험과 전반적 평가, 개인 특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영역별 환자경험 부문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진료서비스에 대한 경험을 묻고 있다. 투약 및 치료과정 부문에서는 병원의 모든 직원이 치료 과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설명과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를 묻는다. 

이와 함께 병원 환경이 깨끗하고 안전한지 묻기도 하고, 환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았는지, 예를 들어 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됐거나 수치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를 받았는지에 대한 경험을 묻기도 한다. 

아울러 입원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요구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특성을 묻는 질문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병원계는 이 같은 설문 문항 가운데 불필요한, 혹은 객관적이지 못한 질문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담당 의사 또는 간호사가 당신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했는가', '당신의 질환에 대해 자주 위로와 공감을 받았는가', '입원기간 동안 다른 환자와 비교했을 때 의료진으로부터 공평한 대우를 받았는가' 등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몇몇 설문 문항을 보면 환자 개인이 병원의 서비스,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주관적인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있다"며 "환자경험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을 갖기엔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환자 개인의 특성을 묻는 문항에는 의료인이 아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때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고도 했다. 

개인 특성을 묻는 설문 문항에는 '당신의 건강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최종 학력은 어떻게 되는가' 등이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 

병원계 한 관계자는 "설문 문항을 보면 객관적 기준 없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통해 줄 세우기를 하려는 의도 같다"며 "특히 최종 학력을 묻는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환자의 학력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한병원협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협회에서는 환자경험평가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며 "환자경험평가는 의료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환자가 예상했던 진료비, 진료에 대한 환자의 기대치, 치료 성과 등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화로 설문 진행…환자 동의 없이 전화번호 제공?

조사 방법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환자경험평가 진행 방식이다. 심평원은 요양기관에 입원했던 환자의 표본을 추출, 의료기관으로부터 대상 환자의 전화번호를 받고 이를 활용해 전문조사업체의 전화조사 방식으로 환자경험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의료기관이 환자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령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그 해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병원계 한 관계자는 "관련법에서는 요양기관 평가를 위해 요양기관이 청구자료 등 환자정보를 제공하도록 돼 있지만, 설문조사를 위한 전화번호까지 제공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모든 입원환자가 환자경험평가의 대상이 될 텐데, 이들에게 동의도 없이 전화번호를 제공한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자신의 입원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은 환자의 경우, 표본추출을 통해 설문조사 대상자로 선정돼 설문조사 업체로부터 전화가 온다면 상당히 불쾌할 것"이라며 "결국 환자경험평가의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오게 될뿐더러 이에 따른 민원은 병원 몫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평원에서는 환자경험평가 설문조사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법령을 검토한 결과 환자, 즉 정보주체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치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또 다른 병원계 관계자는 "심평원은 법령해석만 진행했을 뿐 행정해석 또는 법제처 유권해석은 진행하지 않은 채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환자경험평가가 대상자에 따라 오류가 발생할 여지도 높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객관적인 결과가 산출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중증 환자 또는 고령 환자의 경우 24개나 되는 설문 문항에 일일이 답할지 의문이다.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설문 문항, 주관적이고 진부하다”

학계도 환자경험평가 설문 문항이 환자의 경험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평가 문항이 CS, 안전, 환자 권리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만, 되레 감정노동, 경쟁 과열로 인한 문제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학계 한 관계자는 "설문을 보면 주관적이고 진부한 내용의 문항 비율이 높다"며 "입원경험 후 8주까지의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할 경우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설문 문항 중 담당 간호사와 의사의 진료서비스에 대한 문항의 경우 서비스 현황조사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심평원이 환자경험에 대한 정의와 조사영역에 대한 계획이 제대로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평가를 위한 표본 추출 및 설문조사 진행 과정에서의 오류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학계 관계자는 "청구자료를 기반으로 대상자를 추출할 때 무작위 추출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특히 24개나 되는 문항에 대해 환자들이 성심껏 응해줄지도 의문이다. 응답률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화를 통한 설문조사 방식이 편향적일 수 있다는 비판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전화 설문조사 과정에서 응답자가 문항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게 될 텐데, 설문조사원의 답변에 응답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모든 응답자가 각각의 질문에 따른 동일한 답변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전문 조사원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학계는 △응답자에 대한 조사항목 △설문 문항 등을 추가 또는 교체할 것을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입원 기간, 병동, 질병, 성별, 나이 등 응답자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항목을 설문조사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주치의 혹은 간호사로부터 본인의 질병에 대해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지, 이때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사용했는지 등 담당 간호사와 의사의 환자경험 진료서비스에 대한 문항으로 교체하면 보다 정확한 평가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문항들을 추가 또는 교체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영역에 대해 틀을 잡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평원 "100% 객관적이진 않지만…" 

환자경험평가의 객관성 담보 여부를 비롯해 향후 평가결과의 활용 방안을 놓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심평원은 아직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심평원 평가1실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의 결과산출 방법을 비롯해 조사대상기관별 등급 구분 방법 등 아직까지 향후 이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며 "환자경험평가 결과에 따른 공개 여부, 평가등급 선정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과산출 방법을 도출하기 위한 변수, 변수가 결과값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보다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사전문 업체와도 신뢰도 향상을 위한 보정작업을 진행하는 등 결과값 산출 과정의 합의를 위해 여러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가 100%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이번에 마련된 24개 설문 문항은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심평원 관계자는 "24개의 설문 문항을 통해 100%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의료진이 제공하는 정보의 수용성 등 경험의 양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성은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는 환자 기대에 따라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환자경험평가는 환자가 얼마나 경험했는지를 평가하기에 응답자의 가치판단 개입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유관 단체와 논의를 통해 필요하다면 개선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평원 최명례 업무상임이사는 "환자경험평가를 위해 그동안 의료계, 학계, 환자 및 소비자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분과위원회에서도 수차례 논의해왔다"며 "앞으로 환자경험평가를 수행하면서 관련 단체의 의견을 경청해 보완할 항목들을 발굴, 개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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