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새 법률 시행 앞두고 의료계 반발 "의견수렴 없는 졸속개정...퇴원 대란 불 보듯"

오는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 정신보건법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의료계는 실질적인 준비와 투자가 선행되지 않았다며 법률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 복지부는 강제입원의 폐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며,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신보건법이 지난 국회에서 의견수렴없이 졸속 개정됐다"며 "수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조속히 재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신의학회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인권보호라는 법 취지 자체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보호장치는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일 간담회를 열어, 정신보건법 재개정을 촉구했다.

개정법률은 비자의적인 입원의 허용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먼저 비자의적인 입원이 가능한 범위를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받을만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이 경우에도 2주간의 입원기간을 정해 그 사이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으로 입원 지속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전문의들이 입원 소견을 낸 경우에도 최초 입원 후 1개월 내에 국립병원 등에 입원적합성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환자 장기입원이 가능하다. 최대 입원 기간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 최장 3개월 단위로 입원 연장심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책임있는 공조직이 비자의적인 입원을 주관, 정신장애인 본인 의지에 반하는 불필요한 입원을 제한한다는 취지인데, 현장에서 이 같은 모형이 제대로 작동할 지는 의문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차기 이사장(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은 "2차 전문의 진단이 입원 전인 아닌, 입원 후 2주 이내 이뤄진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비자의적인 입원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입원적합성심의를 의무화한 점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전국 5곳에 불과한 국립정신병원이 연간 수십만건에 달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적합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학회에 따르면 전국 정신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비자의적인 입원이 연간 17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의료계의 지적에 복지부가 최근 심의위원회 설치 기관을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고, 2차 진단의사에 민간의사를 포함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회의 주장이다.

권 차기 이사장은 "민간 정신의료기관에 의한 비자의적인 입원의 공적 모니터링을 다시 민간에 의뢰하는 딜레마가 있다"며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제기됐다.

권 차기 이사장은 "개정 법률에 따르면 비자의적인 입원인 경우 입원 3일 이내 환자정보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등록하게 돼 있다"며  "환자 개인정보보호 유출 등 오히려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즉각적인 법률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의료보험과 급여 정책, 장애 지원 및 생활보장 정책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면서 "법률이 5월 30일 이전 재개정되지 않는다면 정신과 전문의들은 개정 법률을 따를 것이며, 이후 발생할 퇴원 대란 등의 혼란은 복지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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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의료계의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법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복지부 차전경 정신건강정책과장은 "2014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한국정부에 강제입원과 관련된 권고를 했고, 그 해 강제입원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청구되었으며, 2014년 최종적으로 헌법불합치 판정이 나왔다"며 "이번 법률 개정은 이 같은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정부는 법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차 과장은 "국제기준이나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입원시 2인 이상 의사의 판정이나 별도 기구의 심사를 요구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 강제입원 절차에 대해서는 개선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정 법률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국립정신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층원을 늘리고, 공보의를 우선 투입하는 등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또 민간 의료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스템을 감안해, 입원 적합성 심사기구로 국공립과 함께 민간 의료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지정병원이 입원판정을 하는 경우 비용보상이 가능하도록 수가도 준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제도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의료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시행 이후 나타나는 문제점은 함께 개선해 나가겠다고도 강조했다.

차 과장은 "20년 만에 제도가 바뀌는 것이라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간 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고, 또 헌재 판결까지 나온만큼 이제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해내야 할 때"라며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항상 귀를 열고 논의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의료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시행 이후 나타나는 문제도 함께 고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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