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고신정 기자

대한민국 아빠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빠의 전쟁'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루 평균 9시간 14분을 일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하다는 대한민국 평균 아빠들의 모습. 의사이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의사 아빠들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내과를 운영 중인 50대 의사 A씨.

그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에 시작된다. 그는 평일 오전 8시반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토요일에도 오전 8시반부터 오후 4시까지 의원을 열고 진료를 본다.

단 하루 뿐인 휴일인 일요일에는 학회에 가거나, 때때로 이어지는 등산·골프모임에 얼굴을 비춘다. 고단하지만 사회적 교류를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 가족에 대해 물었다.

"내 이름으로 의원을 연 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있는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개원의사에게는 꿈 같은 얘기였죠.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문득 돌아보니 코흘리개 큰 아이가 어른이 다 되었더군요. 나에게는 청춘을 다 바쳐 지켜내고 싶었던 소중한 가족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의 내가 어떤 아빠일지는…글쎄요. 자신이 없네요."

2012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내놓은 의원 경영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원의사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0.1시간에 달했다. 개원의사 98.9%가 토요일에도 진료했으며, 44.4%는 야간과 공휴일에도 진료실을 열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개원의사들이 무한 경쟁 시장에 내몰린 것은 이미 오래다.

2014년 서울 자영업자 업종지도에 따르면 서울에 문을 연 동네의원 10곳 가운데 2곳 이상(21.8%)가 마의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는 개원 2년을 못 넘기고 문을 닫은 곳이 20.6%, 1년을 못 채우고 폐업한 곳도 11.2%나 됐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개업 대비 폐업률은 매년 70~80%대를 유지하고 있다. 10곳이 새로 문을 여는 동안 7~8곳의 의원이 문을 닫는다는 셈이다. 

한때 의사 사회에서도 '저녁 있는 삶' '휴일 있는 삶'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하루 평균 7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일평 70' 공식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개원의사들에게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저녁과 휴일을 즐길 수 있는 삶은 여전히 먼나라의 얘기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의사는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아빠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개원의 진료시간에 관한 사안은 수가와 의료이용 행태, 의료전달체계 등 꽤나 다양한 사안들이 얽힌 난제다. 쉬이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복잡한 퍼즐이지만, 이제 이들의 고민에도 한번쯤은 귀를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