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없는 방문확인 제도...건보공단과 협의로 제도운영 '공인'한 꼴

 

방문확인 제도 개선을 위해 의협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협상을 벌인 것을 두고, 자충수 논란이 일고 있다. 

'법률 근거 미비' 논란에 시달려온 공단의 방문확인 제도를 공식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제도 운영을 전제로 개선책을 논의한 상황이, 역으로 의료계가 공단의 방문확인을 공인한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의협은 건보공단과의 협의를 통해 요양기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요양기관이 협의한 경우만 방문확인 실시 ▲요양기관이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거부하거나 복지부의 현지조사를 요청하는 의견을 표명할 경우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개선방향을 도출했다. 

이같은 개선방향을 두고 일선 개원가에서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의협이 개선방향의 핵심으로 꼽은 내용은 이미 2014년 3월, 그리고 2017년 1월 발표된 방문확인표준운영지침(SOP)에 그대로 명시돼 있다. 

우선 2014년 3월 발표된 SOP 내용에 따르면 ‘지역본부장(또는 지사장)은 요양기관 방문확인 실시 전 방문 확인 근거, 목적, 방문인원, 자료제출 요청 내역 등을 요양기관에 문서로 사전 통보한다’는 내용과 ‘요양기관 대표자(또는 대리인)와 전화 등으로 방문일정을 사전 협의 후 문서 통보’ 등의 명시돼 있다.

아울러 ‘2차에 걸친 자료제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료 제출을 거부(제출 지연, 일부 제출 포함)하거나 제출된 자료만으로 사실 관계 확인이 곤란한 경우 또는 사실과 다른 자료를 제출한 때에는 현지조사 의뢰’라는 문구도 명시돼 있다. 

뿐만 아니다. 올해 1월 개정된 SOP에도 같은 내용은 반복된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요양기관 대표자(또는 대리인)와 전화 등으로 협의할 때 방문일정을 포함해 동의 여부도 묻도록 한 것뿐이다.  

즉, 두 번에 걸친 SOP 내용에 의협이 언급한 개선 방향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한 개원의는 “의협이 개선을 이끌어 냈다며 홍보하는 내용은 이미 SOP에 명시된 내용”이라며 “제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선 의사들이 모르고 있던 부분일 뿐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근거법도 없는 방문확인...“의협이 길 열어주는거냐”

특히 의료계 일각에서는 건보공단과의 이번 협의가 근거법도 없는 방문확인 제도의 틀을 의협이 만들어줬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 제도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제도 운영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이처럼 근거법 조차 미비한 제도를 의협이 건보공단과 협의함으로써 되레 기틀을 마련해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건보법에는 방문확인을 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명확치 않은 상황이다. 

건보공단은 건보법 제57조에 명시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부당이득의 징수할 수 있다(부당이득의 징수)'는 규정을 근거로 방문확인 업무를 진행해 왔다. 

또 지난 2003년 법제처의 방문확인에 대한 유권해석도 방문확인 제도 운영의 근거로 삼고 있다. 

당시 법제처는 “요양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의 확인을 위해 서류 확인만으로 부족할 경우 요양기관의 임의적인 협력을 전제로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방문확인이 가능하다”며 “현행법상 명시적인 방문확인 규정이 없는 점을 고려, 부당이득과 관련된 사안을 중심으로 방문확인을 행해야 하며,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확인업무는 현행 법률규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건보공단의 방문확인 제도는 법리적으로 규정이 명확치 않다보니 '월권행위'라는 비판과 논란에 시달려 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협이 건보공단과 개선 방향을 내놓으면서 방문확인을 스스로 인정한 ‘자충수’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방문확인, 현지조사 등 실사제도의 문제점은 관리 감독하는 기관의 태도 문제가 핵심”이라며 “의협은 보다 적극적인 실력 행사를 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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