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동안 이주노동자 진료에 참여하고 있는 전로원 원장

올해 본지의 모토는 'Only the best is the best'다. 오직 최고만이 최고라는 뜻으로 우리가 서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뜻이다. 

2017년 신년호 기획으로 본지의 모토와 어울리는 인사를 찾았다. 그런데 의사로서의 최고란 물음에 가로막혔다. 명의(名醫)로서의 삶이 최고일까 아니면 유명 대학병원의 교수가 되는 것이 최고일까 등 의견이 엇갈렸다. 

토론 끝에 기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리고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최고'로 정의했다. 
이후 의료계 인사를 물색했다.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는 많았지만 오랫동안, 그리고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실천하는 의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기획회의 때 여러 명의 인사가 추천됐고, 대학시절부터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료진료를 하는 전로원 원장을 우리가 찾던 그 주인공으로 결정했다. 

▲ 15년 동안 이주노농자 무료진료에 참여한 전로원 원장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15년 동안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으로 돌아온 말이다. "무료진료를 오랫동안 이어온 특별한 이유는 없다.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족 등을 진료하다 보면 매주 봉사활동에 빠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만큼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 봉사를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게 된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전로원내과의원을 운영하는 전 원장은 서울의대에 다닐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97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고, 현재 라파엘클리닉 대표이사인 서울대병원 안규리 교수가 무료진료소를 제안해 만들어진 것이 라파엘클리닉"이라며 "당시 서울의대 가톨릭교수회가 주축이 돼 CaSA(서울의대 가톨릭학생회)가 만들어졌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도 라파엘클리닉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라파엘클리닉은 지금도 이주노동자나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등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처음 간이 진료소가 만들어졌던 곳이 혜화동 성당인데 지금도 혜화동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그의 대학시절 봉사활동은 라파엘클리닉에 머무르지 않았다. 서울 난곡 도시 빈민 진료와 구로3동 쪽방 진료 등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정부, 이주노동자에 관심 보여야"

의대 졸업 후 교환교수로 미국을 다녀온 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봉사활동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진료는 물론 라파엘클리닉의 살림을 맡아 보는 재무, 후원 담당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 신장내과를 운영하는 전로원 원장은 이주노동자에게 무료로 투석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오랫동안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현재 라파엘클리닉을 찾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몽골, 베트남, 남미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외국인노동자들을 불러 일을 시키지만 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민간에서 이들을 위한 진료를 해야 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외국인 노동자 중 많은 사람이 불법노동자로 체류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무료진료를 하는 곳에 출입국관리소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를 체포하기 위해 오기도 하는데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역 이웃 위해 10년 동안 쌀 2톤 기증 

외국인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라파엘클리닉에서 끝나지 않고 병원으로 이어진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그가 봉사활동에서 만난 외국인노동자 중 투석이 필요한 사람에게 치료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이다 보니 초기에는 병원이 휘청거릴 정도로 비용 부담이 컸다고 한다. 최근에는 다른 병원에 연계해주고 2명 정도만 투석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 전로원 원장은 지역주민에게 건강강좌 등 환자 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전로원내과의원은 2002년 개원한 이후 한 번도 이전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10년 동안 동사무소에 '희망을 나누는 따뜻한 이웃 전로원 내과 사랑의 쌀'을 기증하고 있다. 그간 기증한 쌀의 양은 무려 2톤. 그는 간혹 진료하면서 쌀을 잘 받았다는 인사를 받기도 한다며 웃는다. 

10년 이상 근속 직원 절반 넘어…"진실함 담은 직원 복지"

봉사하는 의사로도 이름이 높지만 내부직원을 관리하는 데 노하우를 가진 듯했다. 직원관리가 가장 어렵다는 개원가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이 17명 중 10명 이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직원이 3년 이상 근무하면 해외학회 지원은 물론 해외여행도 후원하고 있다. 또 직원 자녀 중 첫째가 대학을 가면 등록금도 지원하고, 싱글맘일 경우 장학금도 후원한다. 개원가에서 쉽게 찾기 힘든 직원복지가 진행되고 있다. 

15년 동안 외국인노동자의 건강을 지켜온 지킴이로서, 또 지역 주치의로서, 병원을 운영하는 CEO로서 그에게서 얻은 메시지는 진실함이었다.  

▲ 전로원 원장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그는 인터뷰 끝자락에 병원 주변 상황을 어떻게 봤는지에  질문을 던졌다. 지하철과 대로를 통해 병원을 찾은 기자는 "대규모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는 것을 봤을 때 서울의 평범한 곳과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그는 병원 뒤쪽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원 앞과 뒤쪽 풍경은 너무 달랐다. 앞쪽에는 휘황찬란한 아파트들이 불빛을 자랑했지만 뒤에는 도시생활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낮은 지붕들이 모여 있어 불빛마저도 어둡게 느껴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외국인노동자, 불법체류자 등이 화려함을 뒤로 한 채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눈이 오고 지붕들이 눈으로 덮일 때 이곳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며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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