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 김석주 성균관의대 교수

지난달 8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경제적으로 몰락한 소도시 주민의 분노, 대도시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정치적 명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의 거침없는 표현과 감정적이고 다소 과장적인 쇼맨십이 맞물린 결과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부분은 그의 이민정책과 대외정책이다. 불법 이주민을 추방하고, 보호 무역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고, 세계 질서나 난민 보호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줬다.

미국인이 잘 살지 못하면 세계 평화나 해외 원조가 무슨 소용이냐는 저학력·저소득 백인의 속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우리끼리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브렉시트(Brexit)를 선택한 영국인들 역시 같은 심리가 깔려 있다.

'우리'라는 의식이 나쁜 것일까? 다른 가족보다 우리 가족, 다른 나라 사람보다 우리 나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당연하다. 인간은 나라는 자아의식뿐 아니라 우리라는 자아의식도 있다.

나와 비슷한 이에게 공감하기는 쉽지만 나와 다른 그들에게 공감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고통과 그들의 고통이 같을 수 없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의 고통을 볼 때보다 같은 한국인의 고통을 볼 때 고통을 느끼는 뇌의 활성이 더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이 공격성을 키우기도 한다고 본다. 주로 그들에게 심하게 공감하지 않을 때이다. 심리학에서 분리(splitting)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고 철저히 나눈다.

우리는 정당하고 옳다고 이상화하고, 그들은 악하고 혐오스럽다고 평가절하한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기에 그들이 당한 일에 공감하지 않고, 그들에게 자행한 일에 도덕적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이 인종 학살의 역사에 가담했던 것도 같은 이치다.

좌절을 겪으면 다른 집단에 대한 적개심은 더 커진다. 자기 탓을 하는 것은 괴롭고 자존심이 상하기에, 쉽게 미워할 대상을 찾는다. 이때 심리학에서 투사(projection)라고 부르는 작용이 일어난다.

그들이 우리 것을 가져가 내가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강하다면 우리 것을 강탈할 것이고, 약하다면 우리 것을 훔쳐갈 것이라는 공포와 증오가 투사된다.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아올 지도자는 고상하거나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우리와 그들을 철저히 구별하고 그들에게 분노와 증오를 투사하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분리와 투사는 인격장애와 정신병의 대표적 심리다. 인종차별(racism)과 외국인공포증(xenophobia)이 바로 그와 같은 병리적 현상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보는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은 점점 늘고 있다. 탈북자는 3만 명을 넘었고, 북한에는 2500만 명의 우리 민족이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750만 명가량이다. 다문화 사회가 도래하면, 이민이 늘어나면, 통일이 이뤄지면 이 모든 이들을 우리로 품을 수 있을까?

이주민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북한 출신 주민이 복지혜택의 경쟁자가 된다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이나 트럼프의 미국 이상으로 배타적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 집단을 우선시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다만 우리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점점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가 동포애로 바뀌고, 애국심이 인류애로 확장될 것이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폭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아닌 '그들'도 우리와 같은 감정과 감각을 느낄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상상할 수 있다면 비합리적인 공포와 혐오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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