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등 중상해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의료계 "소극진료 만연" 우려감 여전
분쟁조정건수 2배 이상 늘어날 듯...제도 연착륙 관건은 '객관성''공정성'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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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신해철·예강이법이 오는 30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피신청인이 참여를 거부하면 실제 조정절차가 시작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중상해 사건으로 의료분쟁조정신청이 접수된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신청인의 조정신청만으로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시작된다. 조정절차 자동개시는 30일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부터 적용된다. 

중상해 사건으로 국한됐지만, 이번 법률 개정으로 의료분쟁조정신청과 실제 조정건수 모두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관측이다. 

시민사회는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 반면 의료계는 여전히 "분쟁을 우려한 소극진료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망 등 중상해 사건, 의료분쟁조정 자동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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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이른바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 법률은 의료분쟁조정제도 활성화, 특히 환자 접근성 향상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사망과 중상해 등 중대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분쟁조정절차를 자동으로 개시하도록 해 조속한 피해구제를 돕는다는 것이 골자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소송을 보완할 피해구제 절차로 2012년 4월 처음으로 도입됐다. 의료소송의 경우 비용과 시간 소모가 큰 만큼, 조정과 중재를 통해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쌍방이 동의한 경우에만 조정절차가 개시되는 상황이다 보니, 실제 조정개시 건수는 신청 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상황. 실제 2012년 4월 조정중재원 개원 이래 지난해까지 접수된 조정신청 사건은 5487건이었으나, 이 중 피신청인의 동의를 얻어 조정절차가 개시된 사건은 43.2%인 2342건에 그쳤다. 

이에 주로 의료인인 피신청인의 조정참여 거부로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이것이 결국 일부 의료분쟁에 대한 조정절차를 사실상 강제하는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자동개시 적용, 중상해 범위는?

당초 법안은 모든 의료분쟁에 대해 조정절차 강제개시가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그 범위가 중상해 사건으로 축소됐다. 조정남발을 우려한 까닭이다. 

이에 최종적으로 결정된 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 범위는 사망 또는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로 자폐성 장애와 정신장애를 제외한 '장애등급 1급' 에 해당되는 의료사고로 정리됐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1급에 해당하는 경우는 △두 팔이나 두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뇌병변 장애 △좋은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시각장애 △지능지수가 35 미만인 지적장애 △안정 시에도 심부전이나 협심증 증상 등이 나타나 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심장장애 △24시간 인공호흡기 생활을 해야 하는 호흡기 장애 등이다.

다만 기존 장애에 더해 장애등급 1급이 된 경우는 예외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이번 법률 개정으로 현재보다 연간 최소 900건 이상 조정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의료분쟁 조정개시 건수가 연 평균 725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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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자료협조 의무 부여, 위반시 과태료

개정 법률은 제도의 실효성 향상을 목적으로 의료사고 조사 요구를 받은 의료기관, 의료인, 조정 당사자에 중재원의 자료요청에 협조할 의무를 부여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한 경우에는 △1차 위반 시 300만원 △2차 위반 시 500만원 △3차 이상 위반 시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마련됐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감정위원이 의료사고 현지조사나 자료 열람·복사 등을 하려면 7일 전까지 그 사유 및 일시 등을 해당 보건의료기관에 서면으로 통보하게 했다. 이는 중재원 감정부가 수사권에 준하는 현지조사권을 갖게 되는 만큼, 중재원 조사가 자칫 강압적 조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 조정절차 자동개시로 발생할 수 있는 무분별한 조정개시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피신청인 이의신청제도도 신설했다. 신청인이 조정신청 전에 의료기관을 점거하거나 진료방해 등 의료법 위반 행위를 한 경우, 허위사실 유포 등 형법 위반 행위를 한 때에는 피신청인이 자동개시를 회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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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개시만 강제…조정결과는 '쌍방동의' 원칙

의료분쟁의 조정은 어디까지나 조정의 절차로 쌍방 간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개정 법률이 강제하는 것은 조정절차의 시작이지, 조정의 과정이나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통상적으로 중재원은 분쟁조정이 접수되면, 피신청인에게 안내문을 송달해, 조정절차 참여의사를 묻는다.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이 과정에서 피신청인이 참여를 거절하거나 별다른 의사표현을 하지 않을 경우 사건은 각하로 종결처리 된다.

이번 개정법률이 작동하는 것은 이 지점으로, 앞으로 중상해 사건과 관련된 의료사고의 경우 피신청인의 의사표시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분쟁조정절차가 시작된다.

분쟁조정절차가 시작되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사 과실 유무 조사, 책임 여부 판단, 손해배상액 산정 등을 거쳐, 그 결과를 바탕으로 쌍방간 조정작업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양 당사자가 합의를 하면 쌍방합의, 동의를 하면 쌍방동의(조정결정 성립/재판상 화해효력)로 사건이 종료되며 합의나 수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조정불성립으로 사건이 종결된다. 조정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의료인이 반드시 조정결정 내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조정이 불성립한 경우 신청인은 다시 의료소송 등 다른 권리구제 수단을 찾을 수 있다.

의료계 '신해철법=중환자기피법' 여전한 반감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 

중상해 사건에 대한 의료분쟁조정을 강제로 개시할 경우, 의료인들이 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중환자를 기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

이에 의료계는 법률 개정 직후 이른바 신해철법 대응 TF를 구성, 법 적용 예외조항을 추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최근 이뤄진 하위법령 개정에 반영되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개정 법률 시행에 따른 우려점을 다시 한 번 대외에 전달하는 한편, 중재원이 요청한 조정·감정위원에 불응하는 것으로 간접적인 보이콧 의사를 표명했다.

의협 추무진 회장은 "자동조정절차가 시작될 경우 중환자 기피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며, 나아가 신규 의료진들이 중환자를 주로 보는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추 회장은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가 개선되기 전에는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수용할 수 없으며,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내부 입장을 정했다"며 "정부가 입장변화를 보이기 전까지는 중재원 업무참여를 보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당사자' 병원계, 대책 마련 분주

직접 당사자인 병원계의 고민은 더욱 깊다. 당장 제도의 영향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불안감만 커져가는 모양새다. 

모 대형병원 관계자는 "제도 시행 전이라 관련 데이터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며 "실제 자동조정 사유에 해당되는 환자가 얼마나 될지, 또 그 가운데 어느 정도가 실제 조정신청을 제기할지, 조정 금액은 대략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지 현재로써는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예측가능성이 떨어져 대응방안을 짜기도 쉽지 않다"며 "병원계 입장에서는 부담과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병원은 자체 대응 매뉴얼을 개발해, 제도 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기존의 통계와 판례들을 분석해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했다. 의료분쟁을 사례별로 묶은 일종의 사례집으로, 이를 바탕으로 문제의 유형과 분쟁규모, 또 의료진의 과실여부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대응 프로세스를 가동해 나가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 선홍규 법무팀장은 "조정절차 자동개시에 대비해 내부 법무팀을 보강하는 한편, 그간의 판례나 유사사례들을 내부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참고 사례가 없는 만큼 일단은 과거 판례들을 바탕으로 문제의 유형과 규모 등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해 사례별로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료분쟁조정접, ‘분쟁 조장법’ 안 되려면

의료계 안팎의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주사위는 일단 던져졌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개정 법률이 또 다른 사회갈등 요인이 되지 않도록, 이제 시행 주체 모두가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우선 과제는 제도의 객관성과 공정성, 신뢰성의 확보다.

국회 관계자는 "개정 법률이 환자의 권익보호와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이라는 입법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그 과정과 결과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재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적어도 의료사고의 사실관계 규명 등 분쟁조정의 핵심 역할을 하는 감정부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재원 감정부 위원은 의료인 2명, 법조인 2명, 시민단체 1명 등 5인으로 구성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사고 사실관계 규명이라는 감정부의 역할을 감안할 때, 구성 위원 5인 중 3인을 비의료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전문성 차원에서 적절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정사례 등을 체계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홍규 팀장은 "주요 진료과목이나 병원 규모에 따라 분쟁사례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를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례들이 쌓이면 환자와 의료인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중재원이 합리성을 갖춰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재원도 노력을 약속했다.

중재원 관계자는 "의료계 안팎의 우려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환자들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는 한편, 사회적 갈등이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운영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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