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고혈압학계가 서울로 눈을 모았다. 올해 서울 한복판서 열린 제26차 세계고혈압학회 학술대회(ISH 2016)가 지난 9월 24~29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료됐다. 고혈압·심장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한국의 심장부에 모두 집결해 학술적 논의를 펼친, 우리 안방에서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별들의 잔치였다. 우리나라 고혈압학계는 혈압 및 혈관질환 관련 이슈와 화두를 조목 조목 짚어가며 안방에서 세계로 고혈압 학술제전을 타전했다.

이번 서울대회는 ‘Working Together for Better BP Control and CVD Prevention(고혈압 관리와 심혈관질환 감소를 위해 모두가 함께’를 주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세계고혈압연맹(WHL) 등 세계적인 유관기관 및 학회들과 기초, 임상, 역학 및 IT 관련 이슈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학술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특히 대회기간 동안 ISH와 대한고혈압학회는 WHO와 함께 ‘서울선언’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25% 줄이기 위해 모두 함께 하자’를 캐치프레이즈로 고혈압 관리를 통한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각국, 정부, 학회, 국민, 산업체가 뜻을 모아 협력하자는 내용을 담아 전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ISH 2016의 서울선언은 지구촌 고혈압의 심각성과 함께 적극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십분 반영한 결과다. 고혈압은 심혈관질환 및 사망의 주원인으로 작용하는 대표적 위험인자 중 하나다.  고혈압은 여전히 ‘절반의 법칙(rules of half)’을 앞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절반의 법칙’의 지배를 받아 온 대표적 심혈관 위험인자 중 하나가 바로 고혈압인데, 환자의 ‘절반’은 자신이 고혈압인지를 모른다(절반의 인지율). 알더라도 ‘절반’은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절반의 치료율). 설령 치료한다 해도 ‘절반’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절반의 조절률).

 

절반의 법칙
한때 일부 선진국에서 유병률이 감소세로 돌아서며 장밋빛 전망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유병률·인지율·치료율·조절률이 모두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발목을 잡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등 중·저소득 국가 밀집지역이 고혈압 병폐의 온상으로 자리하며 과거 서구 선진국의 경험을 되풀이하는 형국이다<그림 1>.

유병률
Circulation 2016;134:441-450 최신호에 게재된 ‘지구촌 고혈압 이환 및 조절’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고혈압 유병률이 증가한 가운데 인지·치료·조절률 개선은 미미했다. 고혈압과의 전쟁에서 거둔 저조한 성적표는 중·저소득 국가지역의 관리부실이 큰 몫을 차지한다.

 

전세계 90개국(고·중·저소득 국가로 분류)의 역학 데이터를 모아 종합분석한 결과, 2010년 지구촌 성인인구(20세 이상)의 고혈압 유병률은 31.1%로 지난 2000년의 25.9%와 비교해 5.2% 포인트 증가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2000~2010년 사이 고소득국의 유병률이 31.1%에서 28.5%로 2.6% 포인트 감소한 반면, 중·저소득국 지역은 23.8%에서 31.5%로 7.7% 포인트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0년 현재 고혈압 환자 수로 따지면, 중·저소득국의 환자가 11억명으로 3억 5000만명의 고소득국에 비해 3배가량 많다.

인지·치료·조절률
고혈압 관리의 실태는 더 비관적이다. 2010년 세계 전 지역의 고혈압 인지·치료·조절률은 각각 46.5%·36.9%·13.8%로 어느 것 하나 ‘절반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의 41.4%·31.8%·11.7%와 비교해 보면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소득국 지역만 따로 떼어내 보면 ‘절반의 법칙’ 극복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고소득국 지역에서 2000~2010년 사이 인지·치료·조절률의 변화는 각각 58.2% → 67.0%, 44.5% → 55.6%, 17.9% → 28.4%로 고혈압 인지율과 치료율이 50%를 뛰어넘고 있다. 반면 동기간 중·저소득국 지역의 점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인지율 32.3% → 37.9%, 치료율 24.9% → 29.0%). 심지어 혈압을 목표치까지 강하시키는 조절률은 8.4%에서 7.7%로 10년 사이 성적이 더 떨어졌다<그림 2>.

서구 ‘절반의 법칙’ 극복사례

 

Circulation 보고서를 보면 혈압을 목표치 아래로 조절하는 조절률이 2000년과 2010년 모두 11.7%와 13.8%로 턱없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혈압 관리에 있어 인지율과 치료율은 개선을 보이고 있지만, 조절률은 현격하게 제자리 걸음이다.

반면 미국은 고혈압 치료의 고질적 병폐였던 ‘절반의 법칙’을 극복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심장협회(AHA) 저널 Hypertension 2012;126:2105-2114에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고혈압 환자의 항고혈압제 사용률과 혈압목표치 도달률(혈압 조절률)이 지난 10년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조절률이 개선된 데에는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다제병용요법의 확대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치료환자 절반 이상 목표치 달성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팀은 지난 2001~2010년까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18세 이상 성인 고혈압 환자 9320명의 데이터를 분석, 미국인의 고혈압 치료결과가 개선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2003년 JNC 7차 가이드라인 발표를 전후해 항고혈압제의 사용률과 혈압조절률의 변화를 들여다 본 결과다.

지난 10년간 전체 고혈압 환자의 혈압조절률(140/90 mmHg 미만, 당뇨병·신장질환 환자 130/80mmHg 미만)은 28.7%(2001~2002)에서 47.2%(2009~2010)로 유의하게 상승했다. 특히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혈압조절률은 44.6%에서 60.3%로 증가, 2010년 현재 절반 이상이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항고혈압제 병용, 단독 대비 혈압조절률↑
같은 기간 항고혈압제의 사용률은 63.5%에서 77.3%로 역시 의미있는 상승을 보였다. 변화는 병용요법이 주도했다. 다제병용요법의 적용률은 2001년 36.8%에서 2010년 47.7%로 증가해 항고혈압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단독요법은 전반적으로 비중이 낮은 가운데 미약한 증가에 그치거나 약제에 따라 사용량이 감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단독요법에 비해 병용치료 환자들의 목표치 달성률이 유의하게 높다는 데 주목했다. 하나의 약제만을 사용하는 경우와 비교해 변동용량 병용요법(약물 별도로 다중투여)의 혈압조절률이 26%, 고정용량 병용요법(단일 복합제)은 55%나 높았던 것.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혈압조절률의 개선이 다제병용요법의 확대적용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그림 3>.

ISH 2016, 항고혈압제 병용요법 화두
이번 ISH 2016에서도 이처럼 고혈압과의 전쟁 성적표가 공개되고 부진한 고혈압 관리실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혈압 조절률을 끌어 올리기 위한 학술적 방안들이 집중 논의됐다. 다수의 석학과 전문가들은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 했다.

영국 런던왕립대학의 Neil Poulter 교수는  “고혈압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요한 사망원인 중 하나지만 46.5%의 환자들만이 고혈압 발병을 인지하고 있고, 이 중 140/90mmHg로 혈압이 조절되는 비율은 30%대로 매우 낮다”며 저조한 혈압 조절률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으로는 충분한 강압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병용요법이 필요하다”며 병용조합에 있어서는 임상근거가 갖춰진 상호 다른 기전의 상호 보완 효과가 있는 항고혈압제를 선택하도록 주문했다.

제주의대 주승재 교수(제주대병원 심장내과)는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아 고통받고 있는 고혈압 환자의 실태를 지적, 목표치만큼 강압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고혈압을 잡기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여러 경로의 표적을 동시에 포괄적으로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들이 목표혈압 달성을 위해 2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는 “일반적으로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현재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선호되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합은 RAS(레닌·안지오텐신계)억제제 + 이뇨제, RAS억제제 + 칼슘길항제, 칼슘길항제 + 이뇨제 등이다.

 

SPRINT와 혈압 목표치
항고혈압제 병용요법과 혈압 조절률은 혈압을 얼마나 낮춰야 심혈관질환 위험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느냐는 혈압 목표치와도 난맥상으로 얽혀 있다. 목표혈압을 더 낮추게 되면 혈압 조절률 수치는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를 끌어 올리기 위해 보다 강력한 치료, 즉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필요성이 증대된다.

이번 ISH 2016에서는 이 혈압 목표치를 둘러싼 논쟁이 최대의 화두였다. 그리고 이 논쟁에는 SPRINT 연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올해 ISH 2016에는 미국에서 Jeff Williamson, Paul Whelton, William Cushman, Suzanne Oparil 등 SPRINT의 연구를 주도한 석학들이 대거 참석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에 나섰다. 관련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향후 고혈압 환자의 목표혈압을 더 내려잡아 심혈관질환 위험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Clive Rosendorff 교수(미국 마운트사이나이대학)는 SPRINT와 75세 이상 하위그룹 분석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 전제조건을 내건 상태에서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의 혈압조절을 권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PRINT 연구를 두고 대상환자들과 일치하는 그룹에서는 목표혈압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 연구 하나로 진료패턴을 바꾸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견해도 제시됐다.

노인 고혈압
혈압 목표치를 논할 때 격한 논쟁의 불씨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노인 고혈압이다. 임상의들에 딜레마를 가져다 주는 경우 중 하나가 노인 고혈압의 치료다. 고령층의 고혈압 유병특성으로 인해 젊은 연령대의 건강한 성인에게 적용하는 잣대를 그대로 들이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고혈압의 치료와 관련해 “단독(고립성) 수축기 고혈압과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사망위험 등을 고려해 특성화된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Lessons from SPRINT Trial’ 제목의 강연에 나선 Jeff Williamson 교수(미국 포레스트웨이크의대)는 SPRINT 연구의 75세 이상 하위그룹 분석결과를 두고, 고령층 집중 혈압조절의 심혈관 임상혜택에 더해 안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고령층 환자를 대상으로 120mmHg 미만의 적극적인 혈압조절을 적용했음에도 심혈관사건 위험이 감소한 것은 물론 기립성 저혈압이나 낙상과 같은 집중조절에 따른 위험이 140mmHg 미만조절 그룹과 비교해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결과에 기반해 고혈압학계가 이른 시일에 노인 고혈압 환자의 목표혈압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심장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Michael Weber 교수(미국 뉴욕주립대학)는 ‘노인 고혈압의 관리: 누구를, 얼마나 낮춰야 하나’에 대해 강연, SPRINT 결과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이를 임상에 적용하는 데도 동의했다. 쇠약한(frail) 노인그룹에서도 일관된 심혈관 임상혜택이 나타났다는 점에도 큰 의미를 뒀다. Weber 교수는 “고령층 고혈압 환자그룹에서도 120mmHg 미만 집중 혈압조절의 심혈관 임상혜택이 명백하게 나타났다”며 “ 있을 것”이라고 견해를 전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