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시장 양보없는 한판승부 점화

2005년 12월 15일 현재 식약청 승인된 임상시험은 총 175건, 이중 다국가임상시험이 91건이다. 연간 3000여건의 호주와는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근래 들어서야 다국가임상시험의 제도적 여건이 조성된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의약품임상시험관리기준(KGCP)을 시행한지 5년만인 2000년, 국내 임상시험 허가수는 33건(로컬 대 다국가: 28 대 5)으로 다국가임상시험이 처음으로 실시됐다. 2002년 55건(38 대 17)으로 여전히 걸음마를 걷던 시장은 동년 12월 의약품임상시험계획승인제도(IND)의 시행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IND는 신약승인의 조건부로 임상시험을 허가하던 기존과 달리 신약시판과 임상시험 승인을 완전히 분리한 선진국형 제도. 다국적제약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신약시판 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별도의 다국가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대형병원에 환자가 집중돼 환자모집이 수월하고, 의료의 질 또한 세계적 수준을 견지하는 등 비용·시간·질 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 임상시험시장은 제도적 뒷받침을 기반으로 이후 상당량의 외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2003년 46건(로컬 97건)이었던 다국가임상시험이 2004년 62건(75건)을 거쳐, 지난 12월 현재 2005년 연기준으로 로컬 임상시험을 앞질렀다. 지난해 다국가임상시험 만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500억원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다국가임상시험은 연구비 등 관련 비용 전액이 해당 시험국에 투자된다. 임상시험 자체가 순수자본이 이동하는 고부가가치의 화이트 산업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경우, 1개 임상시험 참여당 얻는 경제적 이익은 약 50만달러로 한화 5억원 가치. 대형종합병원에서는 다국가임상시험 만으로 진료상의 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농담조(?)의 말이 나올 정도다.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계로서는 새로운 대규모 수익모델을 만난 셈이다. 또한, 글로벌임상시험의 경우 본사 차원에서 해당국 지사에 임상시험모니터요원(CRA) 지원비 등 대략 2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추가된다는 것이 다국적제약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인력 및 연구 인프라가 구축돼, 독자적 신약개발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현단계에서 우리가 바라 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거시적인 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독자적 신약개발이 실현 및 활성화 될 경우, 제약산업 선진화를 통한 21세기 BT산업 주도의 희망 또한 더이상 꿈이 아니다. 1개의 신약이 자동차 300만대의 순이익과 맞먹으며 BT 시장의 60%를 의약품이 차지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장을 둘러싼 아·태지역의 접전이 치열하며 우리의 경쟁력이 결코 앞선다고 볼 수 없다. 경제적 가치만을 앞세워 단기적 이익에 치중한다면 21세기 성공비전 또한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없다

 현시점에서 힘과 노력을 집약시키지 못하고 시간을 소모한다면 거대한 시장을 놓치기 쉽다. 선진 제약계 요구(수요)와 한국시장 환경(공급)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산업화의 최적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태지역 이웃국들이 우리와 대등 또는 보다 우수한 경쟁력으로 시장 선점 및 진입하는 상황에서 한치 양보없는 경쟁 역시 피할 수 없다. 바야흐로 거대한 규모의 임상시험시장을 둘러싼 아시아 국가들 간 한판 경쟁이 불붙고 있다.
 대만은 정부가 가이드라인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산업화를 이끌어, 시장은 성장기에 돌입했고 인프라면에서 1~2년 정도 앞선다는 평가다. 관계자들은 1년 정도면 양·질 모두에서 추월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나, 주마가편(走馬加鞭)해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의대 약리학교실 신상구 교수는 중국에 대해 "임상시험시장을 개방할 경우, 우리시장의 성장은 끝이라고 봐야한다"며 최대 경계대상으로 꼽았다.
 이제 막 눈을 떴지만, 정부지정 임상시험센터 125개소가 운영되는 등 대규모 지원과 함께 13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 잠재력이 막강하다.
 임상시험 공동화 현상까지 겪으며 대표적 실패사례로 꼽히는 일본도 임상시험 네트워크화, 의료기관 인프라 지원, 환자참가 지원, 기업부담 경감 등으로 대변되는 `임상시험 활성화 3개년 계획`을 내세우며 재기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은 과거 아시아 10개국이 참여한 다국가임상시험의 심사를 토대로 대만 또는 중국 등에 우선해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다국가임상시험, 일본과의 경험 - 한국제약의학회지 2004년 VOL2. NO2).

환자이익 묻히면 성공 불투명

 임상시험의 최종단계는 신약개발을 지향하며, 의약품은 인류의 생명연장과 삶의 질 개선을 전제한다. 임상시험의 최대 효용중 하나도 이과정에서 환자들에게 혁신적 신약의 투여기회가 확대된다는데 있다. 결론은 임상시험의 최상위 가치인 환자의 이익이 경제적 가치에 묻힐 경우, 산업화의 성공은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산업화 실패의 주원인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일본을 통해 경험했다.
 반면, 임상시험 성공사례 호주는 시장개방의 가장 주된 이유가 신약접근 기회제한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료혜택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임상시험등록제(CTN)를 시행했고, 시장과 산업화는 자연스럽게 형성·확대됐다. 시장형성이 환자중심 사고에서 출발했듯이 그 발전 또한 반드시 이들의 이익을 근간으로 추구돼야 할 것이다.
 반면, 임상시험 성공사례 호주는 시장개방의 가장 주된 이유가 신약접근 기회제한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료혜택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임상시험등록제(CTN)를 시행했고, 시장과 산업화는 자연스럽게 형성·확대됐다. 임상시험시장이 오늘과 같이 자리를 잡은데는 FDA가 주도한 환자중심의 의약품허가제도가 촉매역할을 했다. 시장형성이 환자중심 사고에서 출발했듯이 그 발전 또한 반드시 이들의 이익을 근간으로 추구돼야 할 것이다.

윤리는 연구 콘텐츠 토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논란은 결과를 최우선시 하는 한국사회의 `빨리빨리` 또는 `대충대충` 신드롬이 과학계에도 만연돼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임상시험에는 환자의 이익과 연관되는 윤리적 측면에 절대 `대충대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서구 선진국의 보편적 시각이다.
 한국노바티스 임상의학부의 고재욱 전무는 연구에 있어 윤리는 콘텐츠의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 기반이 약할 경우, 아무리 우수한 성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선진국형 임상시험관리제도(KGCP)를 시행해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를 의무화 했지만, 약자 즉 환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느냐에는 아직도 이견이 많다.
최근 황교수 논란의 발단이 윤리문제였다는 점에서 외국의 시선도 곱지 않다. 불신이 고착화 된다면, 질적인 측면이 가장 중요시 되는 임상시험에 있어 다국적제약사들이 그 토대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한국시장을 회피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처럼 불었던 산업화 바람이 미풍으로 사그러들지도 모를 일이다. IRB 강화를 통한 적극적인 윤리잣대 적용과 범국가적 차원의 대외 신뢰도 확보가 절실하다.

몸집에 맞는 머리 키우자

 한국 임상시험 분야는 인프라 면에서 급속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가 아직은 독자적 신약개발이라는 새로운 가치창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제 몸집에 걸맞는 머리를 키워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시설·설비·제도 등 하부구조는 성장해 가고 있으나 전체적인 임상개발을 계획하고 관리 및 수행해 나갈 리더그룹은 열악하다는 것.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만으로도 임상시험을 통한 외화획득은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 임상개발을 입안하고 이끌어갈 브레인이 없이는 신약개발의 병목현상 극복은 힘들 것이다.

정부주도 강한 정책 필수

 관련 전문가들은 이상의 요인들을 효율적으로 헤쳐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주도의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한시도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시장경쟁하에서 정·산·학의 개별 노력이 배가된 힘과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며, 임상시험의 산업적 측면에 대한 거시적인 비전을 가진 브레인 즉 리더그룹이 정부에 포진돼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예측 가능한 일관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다국적제약사들은 아시아 지역에 임상시험의 허브가 돼줄 만한 곳을 절실히 원한다. 제도와 시장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어느나라가 시장의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선점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주력산업의 원천이 해당국가에 자리잡게 된다. 이같은 판도는 향후 5년 이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산·학이 각각의 목청을 높이는데 힘을 빼기 보다, 머리를 맞대고 거시적인 비전을 그린 깃발을 세우고 허브의 고지를 향해 달려야 할 때다.
이상돈 기자 sdlee@kimsonline.co.kr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