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피의자로 지목된 김모 씨(34)는 급성기 악화 조현병 환자로 여성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이상행동을 넘어 물리적 형태의 공격성으로 인한 극단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발표됐다. 최근 이뤄진 김 씨와의 프로파일러 면담내용을 요약하면 김 씨는 진술 전반에서 “2년 전부터 여성들이 나를 견제하고 뒤에서 험담한다”고 말하며 여성에 대한 반감과 피해망상을 드러냈다. 이에 경찰은 김 씨의 범행이 단순히 여성혐오에서 나온 증오범죄(헤이트크라임)가 아닌 정신건강질환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조현병 환자 범죄율 정상인보다 15배 낮아
하지만 단순히 피해망상을 동반한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 짓기에는 몇 가지 ‘팩트 체크(Fact Check)’가 필요하다. 먼저 정신감정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의자 김 씨가 조현병으로 수차례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자의적인 판단으로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고 △조현병 증상으로 잘 알려진 피해망상 등이 결국 여성에 대한 반감과 폭력성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 씨와 같은 피해망상을 동반한 급성기 악화 조현병 환자가 특정 대상에 반감을 갖는 경우는 많다고 알려졌지만, 이번 사건만으로 모든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전문가 대부분은 조현병에서 폭력성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후 20년 동안의 대규모 대상 인구조사를 했더니 20개 이상에서 조현병이 폭력성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와 임상에서는 혼란이 가중됐다. 비록 전체 사건에서 조현병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소수임에도 살인이나 폭력성이 조현병과의 통계적인 유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한 논문도 제시돼 있다.

하지만 폭력성은 조현병의 병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조현병 환자의 폭력성은 질환과 동반되는 물질 관련 장애의 영향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폭력발생 위험인자는 적대적인 행동, 최근의 약물 오용(drug misuse), 심리치료에 대한 거부감, 충동조절약화, 최근의 물질과 알코올 오용,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반응 등이다. 그러므로 정신건강질환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요인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부터 치료의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폭력은 조현병 증상 아니다”
다시 말해 폭력은 조현병의 증상이 아니라는 것. 조현병 환자의 60%가 우울증상을 보이는데, 이들은 폭력적인 성향이 있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소외된 경우가 많다. 2011년에 발표된 경찰청통계연보만 봐도 정신건강질환자의 범죄율은 0.3%로 아주 극소수에 해당한다. 범죄발생의 유형별 집계현황에서는 정신건강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강력범죄자 2만 5346명 중 509명, 폭력범죄자 39만 2042명 중 1506명으로 전체 가운데 0.4%를 차지했으며 조현병 환자 10만 명 중 단 40명만이 강력범죄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보고서에서도 2010년을 기준으로 정신건강질환자의 범죄율은 정상인의 10분의 1로, 정상인의 범죄율이 약 1.2%인 데 반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08%였다. 즉 정상인의 범죄율이 15배 가까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한양의대 최준호 교수(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폭력은 조현병의 전체 이환된 경과에서 모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첫 정신병 삽화에서 주로 발생한다. 또 반수가 삽화의 발생에서 치료를 받게 되는 시점 사이에 주로 나타난다”면서 “이 시기에 생성된 폭력성은 때론 타인에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영구적인 손상을 주는 정도로 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최근 성명서를 통해 “조현병은 급성악화기에 환청, 망상에 압도되고 불안과 초조,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동반돼 본인이나 타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될 수 있으며 꾸준한 유지치료로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현병, 범죄 일으킬 만큼 위협적?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국내 매스컴에서 집중보도되는 조현병 환자의 피해망상, 환각 등의 증상이 범죄를 일으킬 만큼 매우 위협적인 요인으로 치부될 수 있냐는 문제다. 피의자 김 씨는 2년 전부터 피해망상, 환각 증상이 심해졌다. 프로파일러 면담에서 모르는 여자가 자신에게 담배꽁초를 버리는 등 여성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어머니에게 누가 자기 욕을 하는 게 들린다고 말하며 집 근처 대문을 부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자기장애, 망상, 환각, 비논리적이고 혼란스러운 언어(빈번한 탈선, 지리멸렬)와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망상은 그 종류가 다양한데 △누군가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히고 피해를 주려 한다는 ‘피해망상’ △자신이 대단한 능력을 갖춘 위대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주변의 사건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신과 특정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관계망상’ △누군가 몰래 자신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감시망상’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는 ‘사고전파’ 등이 있다. 실제 외부 자극이 없는 데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을 통해 어떠한 자극을 지각하는 ‘환각’ 역시 환청이 가장 흔하며 심하면 환청이 지시하는 내용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조기치료로 개선 가능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청이나 망상을 동반한 환자가 물리적 형태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조기치료로 충분히 예방하고 개선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성균관의대 신영철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환자가 게을러졌다고 오해하거나 우울해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환자는 주관적으로 우울감을 호소하지 않거나 점차 어떠한 사회적 활동에도 무관심해져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행동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어 “이들 환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의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거나 말하고자 하는 초점을 잃고 말하는 도중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멍한 모습을 흔히 보여 적절한 급성기 치료 및 유지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현병은 분명 치료가 까다로운 질환은 맞지만, 모든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적절한 약물치료를 비롯한 조기치료로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는 질환으로, 증상 발생 후 1~3개월 후에 치료를 시작하면 예후가 현저히 나빠지기 때문에 치료를 빨리 받을수록 개선율이 높아지고 뇌 손상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치료전략
조현병 환자 치료법은 가장 기본적으로 약물치료, 정신치료, 가족치료, 입원치료로 이뤄진다. 특히 급성기 조현병은 물론 이미 만성으로 접어든 조현병 환자에서도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형 조현병 치료지침과 미국 텍사스주의 대학과 공공기관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지침서(Texas Medication Algorithm Project)에서는 치료의 처음 두 단계에서 항정신병약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세 번째 단계에서 클로자핀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만약 단독요법에도 반응하지 않는 환자라면 병용요법을 시도해볼 것을 지침서들은 권했다. 2012년 세계생물정신의학회(WSBF)에서 발간한 지침서의 경우 클로자핀과 리스페리돈 병용요법은 아직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경험적으로 효과를 기대하는 치료법으로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히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클로자핀은 조현병 관련 증상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자살 위험도를 감소시키고, 지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빈도수를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항우울제인 SSRI(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역시 증상을 개선하고 자살을 예방하는 데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입원치료는 진단적 목적, 약물 관련 이슈, 타인이나 본인에 위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존재하거나, 실제 생활이 어려울 때 고려토록 했다. 최근 경향은 무의미한 장기 입원을 피하고 가능한 지역사회로 빨리 복귀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약 환자가 입원하면 담당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자세히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치료는 조현병 환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상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질환의 이해도를 높여 환자에게 지지적이고 협조적인 환경을 조성해 재발률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적절한 대처방안을 찾아 위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울의대 김의태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조현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기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보통 개선도가 좋은 환자들 가운데, 본인의 병이 완벽히 나았다는 착각으로 치료를 자의적으로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는 재발의 악순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치료의 저항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전문의들의 조기 치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환자의 집중관리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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