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고신정 기자

우리 형법에는 '낙태의 죄'가 명시돼 있다. (모자보건법 허용범위를 넘어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 부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한 의사는 2년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한동안 잠잠했던 낙태죄 폐지 논란에 최근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정부의 비도덕 진료행위 규제 강화 움직임이 낙태죄 논란으로 이어진 탓이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달 29일 현행 법률의 허용범위를 넘어선 낙태를 비도덕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최대 1년의 자격정지로 상향하는 내용의 관련 개정안을 입법 예고, 낙태죄 논란을 재촉발 시켰다. 

논란이 거세지자, 복지부는 일단 입법예고일까지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서울과 부산 등 도심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이른바 '한국판 검은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를 담은 형법 규정은 1995년 개정된 후, 20년 넘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세상은 꽤나 많이 변했고, 국민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실제 복지부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중 19.6%가 인공임신중절술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주위에 인공임신중절술을 한 사람이 있다는 응답도 36.2%에 달했다. 임신중절 사유의 70% 이상은 원치 않는 임신 등 법적 허용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최근 진행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74%가 필요한 경우라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낙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2%가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임신 등 현행법에서 위법으로 규정한 사유들을 들었다. 

물론 한 생명을 다루는 일을 단순히 여론의 흐름에 따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문제가 단순히 낙태를 비도덕 진료행위에 넣느냐 마느냐는 선을 넘어섰으며, 지금이야 말로 오랜 낙태죄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적기라는 점이다.

찬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고 각계의 의견이 다른 만큼 일단 정부에 사회적 논의를 촉진시킬 수 있는 노력을 당부한다. 덧붙여 그 과정에서 전문가로서의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의료계의 역할이 있기를, 또 보장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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