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그 후 제약영업 현장에 가다...“의심거리 만들지 말자” 몸사리기

낡은 관행을 깨고 투명 사회 발판을 마련했지만 시장경제 위축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 '김영란법'이 시행된지 20일 남짓이 지났다. 분위기가 가장 많이 바뀐 곳은 단연 공직사회이며, 다수의 국민 일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물론 제약업계에도 예외는 아니다. 국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은 물론 개원가까지도 의사들과 영업사원들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다.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부정청탁이 아님에도 혹여 색안경을 끼거나 자칫 의심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해 영업이 위축되는 분위기다. 직접 체감하는 정도는 어떤지 다국적사 직원과 국내사 직원을 서울대병원에서 만나봤다.
 

외래 출입금지에 만남 거부까지…강사 섭외 고충

서울대병원과 사립대병원, 중소병원 몇 곳을 담당하는 다국적사 영업사원 A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동선이 넓어졌다. 예전에는 하루에 병원 한 곳을 정해 여러 명의 교수를 만나는 일정이었다면, 최근엔 오전과 오후 시간을 나눠 하루에 병원 2~3곳을 방문하는 식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제약사 영업사원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교수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약사 직원과의 교류를 하루 아침에 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행 초반이라 몸을 사린다는 전언이다.

A씨는 "아침에는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고 서울대병원을 거쳐 오후에는 중대병원으로 넘어갈 예정"이라며 "병원에 대기해도 만나지 못하는 교수들이 늘어 시간을 관리하는데 변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예전에도 외래 진료실에서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더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는 "연구실에서 얘기하고 사전 약속 없이는 만나기 어렵다. 커피 등을 들고 연구실을 방문하는 영업사원들의 모습도 사라졌다"며 "서로가 의심받을 행동은 일체 하지 않으려 한다. 접대도 없어져 자의 반 타의 반 저녁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제품 디테일에도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의료진에 제품 특장점을 설명한 이후 '처방을 부탁한다'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면, 요사이엔 '이 약을 처방한다면 환자들에게 어떤 베네핏이 있다'고 둘러 말한다. 물론 이 같은 제품 디테일도 교수들을 만나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위축되는 영업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터. 가장 큰 고충은 강사섭외다. 개원의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해 줄 강사를 섭외하는데 강의료를 20만원 밖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사립병원 교수는 50만원, 국공립병원 교수는 20만원으로 강의료가 정해지면서 강의를 부탁하기 어려워 졌다"며 "컨텐츠와 교육 취지 등이 좋다면 강의를 해주겠다는 교수들도 있지만, 교재를 연구하고 연습하고 이동하기까지 할애하는 시간에 비해 강의료가 부족한 것 같아 섭외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화환이냐 현금이냐’ 경조사에도 현실적 고민

국내사 B 팀장은 기자와 만난 날 ‘키 닥터’로 꼽고 있던 한 교수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영란법에 의해 조의금을 10만원까지 낼 수 있지만 화환을 보내야 할지, 현금으로 전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예전같으면 두 가지 모두 했겠지만 조의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 데다 장례식장에 화환이 많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던 터라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했다.

또 키 닥터이다보니 추가적으로 신경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결국 병원 담당 직원들은 물론 관련 품목 마케팅팀 직원, 회사 임원까지 조문을 가 성의를 표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B 팀장은 "교수들과 친분이 있어도 만나기 쉽지 않은 데다 조사가 생겼을 때 화환이냐 조의금이냐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김영란법에 의한 변화를 체감한다"며 "당분간 영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기준이 완화되든 새로운 영업 방식을 찾든 적응해 나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담당 영업사원들은 김영란법에 의해 의사와 영업사원은 물론 의사와 환자 간에도 변화가 일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국공립병원은 조금 더 경직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영란법과 다소 무관한 개원가는 어떨까?

개원의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와 '일단 조심하자'로 양분되는 모습이다.

국내사 한 영업사원은 "김영란법에 무덤덤한 개원의도 있지만 약사법에서 허용하는 1만원 이하 판촉물조차 받지 않으려는 의사들도 있다"며 "비거래처는 만남을 거부해 신규 거래는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 담당자와 개원가 담당자의 접대비용은 차이가 있지만 법인 카드 사용 사전 결제 및 증빙 등에 대한 기준은 같다"며 "점점 까다로워지고 내사도 잦아져 영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캐쥬얼 등장...제품·질환 테스트로 인센티브 지급

김영란법은 제약사의 내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사 한 곳은 정장이 아닌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병원을 방문토록 했다. 해당 제약사 직원은 "제약영업이 잘못도 아닌데, 굳이 옷차림까지 바꿔가며 병원을 방문해야 하나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거래처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분위기 쇄신과 함께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다국적사는 인센티브 지급 기준 중 테스트 부분을 강화했다. 영업이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에서 개인 실적보다 제품 및 질환에 대한 지식 등 테스트로 직원들의 노력을 보상하겠다는 의도다.

국내사 한 임원은 "김영란법 시행 전후로 수 차례 공청회와 설명회 등이 있었지만 법조계에서도 확답을 하지 못했고, 회사도 확실한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며 "영업방식의 변화가 일시적일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시행 초기에는 몸을 사리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영란법이 낡은 접대 문화를 몰아내고 투명 사회로 발전 계기를 다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업 직종에서는 덮어놓고 환영할 만한 제도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더불어 시행 초기 혼선을 야기하는 모호한 기준과 과도한 해석 등이 하루빨리 명확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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