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자동개시 대상 두고 환자단체 반발...의료계도 우려 목소리 커져

정부가 이른바 ‘신해철법’의 국회 통과에 따라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대상 기준을 명확히 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제도의 진일보라는 평가도 있는 반면 자동개시를 위한 장애등급 1급이라는 기준 때문에 입법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1급 기준을 준용하되, 정신장애는 제외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두 팔이나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뇌병변 장애 ▲좋은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시각장애 ▲지능지수가 35미만인 지적장애 ▲안정 시에도 심부전이나 협심증 증상 등이 발현, 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심장 장애 ▲24시간 인공호흡기 생활을 해야 하는 호흡기 장애 등이다.
 
다만, 의료사고와 장애가 발생한 시기, 부위 등이 무관한 경우와 장애등급 1급이 아닌 기존 장애가 있던 환자가 다른 부위에 의료행위 결과 장애등급 1급이 아닌 장애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장애등급 1급을 판정받은 경우는 예외로 분류됐다. 
 
복지부는 해당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대해 이달 31일까지 의견조회를 거쳐 제정, 공포할 예정이다. 
 
긴 장애등급 판정시간...“입법취지 무색”
이처럼 복지부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위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나섰지만, 환자들의 목소리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장애등급 1급이라는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위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 데는 환영하지만, 장애등급 판정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 환자들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모든 의료분쟁에 대해 자동개시가 되도록 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현재와 같은 자동개시 대상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장애등급을 판정받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할 때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에 따르면 장애등급 판정까지 대략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의료분쟁 과정에서 환자가 의료사고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 장애등급 판정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료사고를 당한 와중에 여러 복잡한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차라리 중재원보다 소비자원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동개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청각장애의 경우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가 장애등급 2급으로, 1급에 해당하는 경우가 없다. 이처럼 복지부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현재와 같이 진행된다면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라도 2급에 해당하면 조정신청이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입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그는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세부적으로 정해질 예정이지만, 여전히 불편한 환자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醫 "자동개시 부담 떠안고 산다"
의료계도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기준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자동개시 대상 기준에 따라 중증환자를 기피할 우려가 높다”며 “의료계 입장에서는 억울한 사연이 분명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장애등급 1급이 예상되는 심각한 뇌상성 뇌손상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에게 의료인이 성실히 의료행위를 했다고 가정했을 때 환자 측에서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하면 자동으로 개시가 된다. 
 
이 관계자는 “의료인들은 중증환자가 내원했을 때는 무조건 자동개시 요건을 염두에 두고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중중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현상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기존 장애등급 3급을 갖고 있는 환자를 상대로 의료행위를 했다고 쳤을 때 결과적으로 환자가 장애등급 1급이 된다면 의료인의 기여도에 비해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의료기관이 피해를 입게 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우려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환자, 의료계 모두가 의료분쟁 자동개시 대상 기준을 문제 삼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입법예고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은 장애등급 1급의 세부 기준을 나열한 것일 뿐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지적하는 내용은 국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관계자는 “국회에서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를 명시해 통과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해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통해 세부적인 대상 기준을 명시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장애등급 1급 판정 기간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국회를 통해 가능한 일”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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