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심장학회(ACC) 저널 JACC 2016;68:92-125에 지질치료 체계의 변화를 시사하는 특별 기고문이 하나 발표됐다. ‘지질치료에서 비스타틴계 역할에 관한 전문가 합의문’ 제목의 성명을 내며 ACC는 에제티미브, PCSK9 억제제, 페노피브레이트 등으로 대변되는 비스타틴계 지질치료제의 임상적 역할과 가치를 인정했다. 지난 2013년 새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에서 스타틴의 심혈관 임상혜택만을 인정하며 근거 없다는 이유로 비스타틴계의 임상적용에 선을 그었던 ACC다.

비스타틴계에 좀처럼 길을 내줄 것 같지 않았던 미국 심장학계가 3년 만에 180도 입장을 선회하면서 변화도 점쳐진다. 스타틴만으로 외로운 싸움을 벌여 왔던 지질치료체계의 퍼즐이 비로소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상지질혈증 정복을 위한 스타틴의 행보에 러닝 메이트가 되어 줄 파트너 찾기가 성공함에 따라 에제티미브, PCSK9 억제제, 페노피브레이트 등이 퍼즐의 빈자리를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다. 궁극적으로는 스타틴과 비스타틴계 병용 또는 복합제 요법이 지질치료의 새 패러다임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스타틴의 고군분투
최근까지의 지질치료는 스타틴의 고군분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병태의 이상지질혈증에 포위된 전세(戰勢)에서 스타틴이 외로운 싸움을 벌여 왔다. 이 그림을 명확하게 묘사한 대표적 사례가 2013년 미국심장학회(ACC)·심장협회(AHA)의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이다.

양 학회는 “스타틴의 심혈관 임상혜택이 명백하다”며 스타틴 혜택 4개그룹을 선정하고 치료를 권고했다. ‘스타틴 이론(statin hypothesis)’에 근거한 것으로 지질치료에 있어 LDL 콜레스테롤 저하, 즉 얼마나 낮추느냐보다는 스타틴으로 낮춰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둔 것이다. 스타틴의, 스타틴에 의한, 스타틴을 위한 이상지질혈증 치료였다.

반면 비스타틴계 지질치료제와 관련해서는  “임상연구에서 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예방의 혜택이 입증된 바 없다”며 “임상적용 근거가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원군은 어디에?
하지만 아쉬웠던 사안은 스타틴 단독요법의 한계, 즉 최대내약용량으로도 LDL 콜레스테롤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의 대체 또는 보완요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는 점이다. 고중성지방혈증이나 저HDL콜레스테롤혈증을 커버하지 못하는 데 따른 잔여 심혈관질환 위험의 극복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가이드라인은 한편으로 “지질 목표치를 없애고 스타틴 강도에 따른 치료전략을 권고함으로써 비스타틴계 치료제의 사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에제티미브 병용요법의 심혈관 임상혜택을 입증한 IMPROVE-IT이 공개되면서 美 가이드라인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고, 이때부터 지질치료 전략에 대한 심장학계의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에제티미브
IMPROVE-IT은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RCT)를 통해 비스타틴계 지질치료제 에제티미브의 심혈관질환 예방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는 측면에서 비스타틴계의 국면전환용 카드로 손색이 없었다. 스타틴에 더해지는 비스타틴계 약물의 추가적인 심혈관사건 감소혜택을 명확히 입증해낸 첫 사례였다. 스타틴과 에제티미브의 병용을 통해 LDL 콜레스테롤을 기존보다 낮춰 54mg/dL까지 달성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심근경색증·뇌졸중·심혈관 원인 사망의 상대위험도가 유의하게 감소했다.

에제티미브는 이 연구를 통해 LDL 콜레스테롤을 최대한 낮추는 것 자체가 심혈관질환 예방을 담보한다는 ‘LDL 이론’을 되살렸다. ‘LDL 이론’을 받아 들이면, “어떤 치료제를 선택하든 LDL 콜레스테롤을 강하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명제 하에 스타틴과 비스타틴계의 병용요법까지 전략적 선택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된다.

가천의대 고광곤 교수(길병원 심장내과)의 설명에 따르면,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환자와 같이 LDL 콜레스테롤 70mg/dL 미만이 요구되는 초고위험군에서 스타틴으로도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 경우 스타틴 증량(double dose)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Rule of Six’ 법칙에 따라 초기용량에 더해지는 추가적인 LDL 콜레스테롤 조절효과는 용량을 2배 늘려도 6%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최근 제기된 당뇨병 위험 등 스타틴 고용량 적용 시 부작용의 문제 또한 고려돼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타틴 용량에 변화를 주지 않고 추가적으로 강력한 지질조절 효과를 더할 수 있는 비스타틴계 약물로 LDL 콜레스테롤을 더 낮추고, 이를 통해 심혈관사건 위험을 개선하는 새 전략이 필요하다.

비스타틴계 권고
ACC는 이 같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번에 새로운 합의문, 즉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질치료 시 비스타틴계 약물의 임상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큰 틀에서 최대용량의 스타틴 치료에도 기저치 대비 50% 이상의 LDL 콜레스테롤 감소가 없을 경우 비스타틴 전략을 고려하도록 권고했다. 비스타틴계 1차선택으로는 에제티미브를 내세웠다.

미국당뇨병학회(ADA)도 올해 초 고혈당 관리 가이드라인에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지질치료와 관련해 비스타틴계의 심혈관 임상혜택을 인정, 스타틴과 병용해 사용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ADA는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중강도 스타틴에 에제티미브를 추가하는 병용전략이 중강도 스타틴 단독요법과 비교해 부가적인 심혈관 혜택을 제공한다”며 “최근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을 경험한 환자 가운데 LDL 콜레스테롤이 50mg/dL 이상이거나 고강도 스타틴에 불내약성을 보이는 경우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권고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예전부터 지질치료에 비스타틴계 약물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고, 이를 계속 유지했다. 지침은 스타틴을 투여해도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 미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에제티미브(Class IIa, Level B), 니코틴산(IIb, C), 담즙산결합수지(IIb, C) 등 비스타틴계 약물을 병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PCSK9 억제제
강력한 LDL 콜레스테롤 강하기전의 PCSK9 억제제도 스타틴을 지원할 병용 또는 대체 파트너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국(EMA)의 승인을 받은 제제는 에볼로쿠맙과 알리로쿠맙으로, 적응증은 큰 틀에서 스타틴으로 관리되지 않는 환자다.

FDA는 에볼로쿠맙, 알리로쿠맙 모두 동형접합 및 이형접합성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또는 임상적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심장발작, 뇌졸중)이 있는 환자 중 생활습관개선, 최대용량 스타틴에 추가적인 치료전략이 필요한 이들에 사용하도록 했다. EMA 적응증도 비슷하다. 스타틴 적정용량으로 관리되지 않거나 스타틴을 적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 생활습관개선과 함께 투여하고, 스타틴만으로 지질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게도 추가로 투여할 수 있도록 했다.

12세 이상 동형접합성 가족성고콜레스테롤혈증(HoFH)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PCSK9 억제제는 스타틴 병용요법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은 물론 스타틴 불내약성 환자, 스타틴으로 관리되지 않는 환자,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에 대한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피브레이트
중성지방을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기전의 피브레이트 제제도 일정 부분 지질치료체계의 완성에 기여하고 있다. 임상연구를 통해 고중성지방·저HDL콜레스테롤 특성의 이상지질혈증 환자에서 심혈관 혜택을 보고하면서, 복합형 이상지질혈증의 특성을 나타내는 한국인 환자들에게 유용한 지질치료 전략으로 자리하고 있다.

‘스타틴 이론’만으로는 고중성지방, 저HDL콜레스테롤의 이상지질혈증 병태까지 커버하기 힘들다. 때문에 고LDL콜레스테롤까지 모두 갖춘 복합형 이상지질혈증(죽상동맥경화증 호발성 이상지질혈증) 환자의 경우 스타틴 치료에도 불구하고 잔여 심혈관질환 위험이 존재한다. 스타틴의 파트너로서 중성지방과 HDL 콜레스테롤 조절기전의 약제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인 이상지질혈증의 특성은 고LDL콜레스테롤혈증에 비해 고중성지방혈증과 저HDL콜레스테롤혈증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이다. 복합형 이상지질혈증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지질이상 양태를 모두 공략할 수 있는 병용 및 복합제 요법이 요구된다.

미국당뇨병학회(ADA)는 새 가이드라인에서 스타틴과 피브레이트 병용요법을 부분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ADA는 당뇨병 환자의 지질치료와 관련해 “중성지방이 204mg/dL 이상이면서 HDL 콜레스테롤이 34mg/dL 이하인 경우 스타틴과 페노피브레이트 병용요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며 환자의 임상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질치료를 주문했다.

스타틴도 혁신 중
스타틴은 지질치료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다. 지질치료에서 스타틴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현대의학의 강한 특성인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은 ‘스타틴 이론’을 만들어 냈고, 이상지질혈증 환자에서 스타틴 치료만이 명확한 심혈관 임상혜택을 나타낸다는 ‘스타틴 이론’은 최근까지 지질치료 체계를 지배해 왔다.

스타틴은 임상적용의 오랜 역사를 통해 심혈관질환 저·중·고위험군 모두에서 임상혜택을 검증받아 왔다. 대표적 스타틴 제제인 로수바스타틴은 심혈관질환 2차예방과 고위험군의 1차예방은 물론, JUPITER에서 HOPE-3에 이르기까지 심혈관질환 저·중등도 위험군에서 1차예방 효과를 검증받으면서 임상적용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다.

스타틴의 또 다른 강점은 유구한 임상경험으로 인해 장기적인 심혈관 임상혜택을 검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스타틴을 통한 이상지질혈증 치료의 레거시 효과(legacy effects)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토르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 등은 ASCOT-LLA, WOSCOPS 임상연구를 통해 10년 이상 장기적인 심혈관사건 감소혜택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스타틴 & 비스타틴계
아토르바스타틴, 로수바스타틴,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 등에 에제티미브나 페노피브레이트를 더하는 병용·복합제 전략이 지질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불변의 1차선택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으나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스타틴에, 근거 없음을 반박하며 새로운 근거를 들고 나온 비스타틴계 전략이 지원군이자 파트너로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제 임상의들은 스타틴과 비스타틴계 지질치료제로 채워진 퍼즐, 즉 완성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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