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5.4% 특정공포증 경험

▲ 전홍진성균관의대 교수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영화 '터널'의 주인공 정수(하정우 분)는 운전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속에 홀로 갇힌다. 주위는 콘크리트 더미로 가득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곤 좁은 차 안과 환풍기 속이 전부다.

영화 속에서처럼 꿈쩍하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며칠 동안 갇힌다면 누구나 심한 두려움과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터널을 통과할 때 심한 두려움과 호흡곤란,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극장이나 지하철처럼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증상을 느끼고, "편하게 숨을 쉬고 싶다"며 도중에 뛰쳐나오듯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터널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터널공포증(tunnel phobia)이라 한다.

의학적으로는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의 일종이다. 특정공포증은 불안 유발 원인에 따라 동물형(거미·벌레 등), 자연환경형(고소공포증), 혈액·주사·손상형, 상황형 등으로 나뉜다.

불안 심해지면 공황장애 일으켜

터널공포증은 이 중 '상황형'에 해당하는데, 터널 이외에도 비행기·엘리베이터·지하철·버스·백화점, MRI·CT 촬영 등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앞뒤로 차가 꽉 막히는 상황에서 터널 안에 있다면 더 극심한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다. 불안이 심해지면 '공황장애(panic disorder)'를 동반하는데,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목이 조이는 느낌, 불안, 심박동 증가, 발한(發汗) 등의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발생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심한 경우 응급실을 방문하기도 한다.

특정공포증의 원인은 '뇌'다. 뇌에서 두려움을 담당하는 부위인 '편도체(amygdala)'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교감신경계가 흥분돼 공포 증상이 발생한다.

흥분이 매우 심해지면 공황장애로 이어지고, 증상이 나아진 뒤에도 재발할지 모른다는 '예기불안(豫期不安)'을 겪을 수 있다. 또 특정공포증은 공황장애 이외에 우울증, 불면증, 범불안장애 등 정신건강의학적 문제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특정공포증이 극소수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5.4%가 특정공포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노르웨이 연구 결과, 성인의 0.3%가 터널공포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터널 안에서 공포심을 느낀다는 말이다. 터널공포증을 앓는 이들이 터널에 진입하거나 통과하는 중 공황 증상이 발생하면 사고로 연결될 수 있고, 반대로 운전이나 터널을 통한 이동을 피하는 등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증상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전문의 도움 받아야

공포증이나 이로 인한 공황장애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 회피보다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좋다. 외출을 하지 않거나 터널을 피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휴식을 하고 긴장을 푼 상태에서 터널을 지나는 것이다. 여러 차례 반복해 긴장이 점점 줄면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도 편해진다.

운전 중 커피를 과하게 마시는 것도 피해야 한다. 카페인은 공황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하면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불면증이나 신경과민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터널공포증이나 공황장애 소인이 있는데, 커피를 과하게 마시면 오히려 공황장애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공황증상으로 숨이 답답하다고 호흡을 급하게 하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 좋다. 터널공포증으로 불안 증상이 심하거나 공황증상이 발생하는 경우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신의 증상을 가볍게 여기거나 회피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직면하고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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