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고용량 복용 시 우울증·자살시도 등 부작용

전홍진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지난달 수면제의 위험성을 지적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악마의 속삭임' 편의 반향이 크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면제인 '졸피뎀(Zolpidem)'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고, 유명 연예인의 자살 역시 졸피뎀 때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수면제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방송에 나온 것처럼 '밤중에 폭식을 한다'든가 '나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했다'고 호소하고,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자살 충동이 심해지는 증상을 경험했다'고 하면 해당 환자가 복용 중인 약물 중 수면제 부작용이 원인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약물 '졸피뎀'은 뇌 안의 GABA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inhibitory neurotransmitter)을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 이 약은 반감기가 매우 짧아 2~3시간 정도이다.

많은 용량을 복용한 뒤에는 혈중 약물농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GABA 억제가 오히려 줄어들어 역설적인 탈(脫)억제(paradoxical disinhibition)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충동성이 커져 야간식욕증상(night eating syndrome)이 발생해 식욕이 늘고, 본인이 기억을 못하는 사이 음식을 먹는 경우도 생긴다. 전향성 기억상실(antegrade amnesia)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마치 술을 먹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1~2시간가량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건강질환 초기 불면증 호소하는 경우 많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불면증 환자가 수면제를 복용할 때 우울증과 자살 생각 또는 자살 행동이 악화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임상 시험에서 불면증 환자에게 3주 동안 수면제를 투여한 결과 102명 중 2명에서 우울증이 발생했고 1명은 탈억제(disinhibition)가 동반됐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미국 메이요클리닉이 발표한 대규모 연구 결과에서도 졸피뎀의 위험성이 잘 드러난다.
자살로 사망하거나 자살시도를 한 2199명과 정상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 우울증 등 정신건강질환 요인을 보정한 후에도 졸피뎀 복용이 자살이나 자살시도 위험을 약 2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복용량이 증가할수록 위험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 스탠포드대학 수면센터 오하욘(Ohayon) 교수는 불면증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가 동반되며, 이 문제를 치료해 불면증을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공황장애, 알코올중독 등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가 처음 시작되는 환자들 중에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건강전문의 정확한 진단·치료 선행돼야

하지만 단순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이유로 정확한 진단 없이 수면제만 처방하는 것은 마치 고열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해열제만 주는 것처럼 위험할 수 있다.

또 FDA 보고처럼 수면제 복용자 중 약 1~2%는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는 중 우울증이나 충동성, 자살생각, 야간식욕증상, 기억력저하, 알코올남용 등의 증상이 나타날 경우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3.2%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자살시도자 중 약물을 사용한 이의 절반가량이 "수면제를 사용해 자살시도를 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정신건강질환 치료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우울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신체적인 문제로 판단하는 신체화 경향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수면제만 복용하고 있는 우울증 환자나 알코올중독 환자가 많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심각한 정신건강 실태를 고려할 때 수면제와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중요하며, 이에 관한 대규모 연구 또한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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