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연구자들은 아직도 여성의 질환·건강과 관련 ‘비키니 접근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유방과 생식계통에 관한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요여성심장클리닉의 샤론느 헤이즈(Sharonne Hayes) 박사가 던진 이 화두는 질병관리에 있어 여성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비키니 방식’ 못벗어나는 여성질환 관리
통계에 따르면, 임상연구에서 여성 환자의 비율은 27%가량으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에서 다발하는 특정질환의 연구를 제외하면 비중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질병연구들이 여성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상현장에서 여성의 유병특성은 무시된 채 남성을 치료하는 방식이 그대로 적용돼 왔다. 하지만 병태생리학적으로 여성의 질병은 남성의 유병특성과는 차이를 보이며, 이를 고려한 맞춤형 관리전략이 계속 요구돼 왔다.

수명증가로 폐경 후의 삶이 길어진 여성에서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급증하면서 ‘성별 간 질병패턴의 차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망원인 1위가 심혈관질환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 여성의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남성을 앞선다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여성의 폐경 후 호르몬 변화와 심혈관질환의 밀접한 연관성에 관한 연구들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고령·폐경과 밀접한 연관
우리나라 통계청의 ‘2008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가 인구 10만명 당 각각 58.3명과 43.6명으로 남성(54.7명, 43.1명)을 앞선다. 여성 사망원인 2·3·6위를 차지한 뇌혈관질환·심장질환·고혈압성질환을 합하면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가 114.6명으로 1위인 암(101.9명)을 추월한다.

고령층 여성의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급증한다는 것이 문제다. 복지부의 ‘2012년 국민건강통계’에서 여성은 30~39세와 40~49세까지는 남성에 비해 크게 낮은 고혈압 유병률(남 15.5%와 26.9% vs 여 3.2%와 18.1%)이 50대 이후부터 늘기 시작해 70세 이상에서는 남성보다 높은 수치로 급등한다(남 58.1% vs 여 71.6%). 당뇨병 역시 40~49세에서 5.8%에 머물렀던 유병률이 60~69세에 15.5%, 70세 이상에서 21.5%로 급증한다. 고콜레스테롤혈증은 2005~2012년까지 여성의 유병률이 남성을 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 중 하나를 폐경에서 찾고 있다. 폐경 전 에스트로겐의 장기보호 효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성질환 유병률이 폐경 후 호르몬 결핍 및 노화현상으로 인해 급증한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이 약 30년간을 폐경 후 상태로 살아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남성 대비 심근경색증 조기에 발생…사망률 더 높아
최근 미국심장협회(AHA)가 보고한 여성건강 관련 성명에는 여성 만성질환의 관리에 대한 허와 실이 고스란히 요약돼 있다. ‘당뇨병 환자에서 성별에 따른 심혈관질환 위험’ 제목으로 Circulation 2015;132:2424-2447에 게재된 이 성명은 여성의 심혈관질환 유병특성이 남성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데,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성별에 따른 심혈관 위험인자의 차이를 볼 필요가 있다. 성명에 따르면 여성, 특히 폐경 후 여성에서 남성과 비교해 비만의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폐경 후 여성에서 고혈압 유병률 역시 남성보다 높다. 특히 여성 당뇨병 환자에서는 혈관기능의 장애, 죽상동맥경화성 이상지질혈증 위험증가, 혈전 위험증가, 높은 대사증후군 유병률 등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심혈관질환 위험요인에 노출된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당뇨병 여성의 관상동맥질환 발생위험이 남성보다 2배가량 높다. 심근경색증의 경우도 남성보다 조기에 발생하며, 이로 인한 사망률 또한 높다는 지적이다. 뇌졸중 역시 마찬가지다.

지질조절제·항고혈압제
이처럼 고령층에서 남성 대비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명에서는 남성과 비교해 여성의 고혈당 또는 고혈압 치료율과 조절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남성에 비해 여성에서 지질저하제(스타틴), 항혈소판제(아스피린), 항고혈압제(베타차단제, RAS 억제제)의 처방빈도가 낮은 것으로 나온다.

성명은 스타틴과 관련해 “일부 연구에서 스타틴 치료에 의한 죽상종 퇴행과 지질저하 효과가 남성보다 우수하게 나타난다”며 여성의 심혈관질환 1·2차예방에도 지질저하제를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또 다른 지질조절제인 페노피브레이트에 대해서는 FIELD 연구를 예로 들며, “남성 대비 여성에서 지질저하 효과와 심혈관질환 위험감소의 폭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성명은 또 “여성의 심부전 발생위험이 남성보다 높다”며 “남·여 모두에서 심부전 치료에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베타차단제, 스피로놀락톤의 사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스피린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아스피린 치료와 관련해서는 남·여 연령과 위험도에 따라 권고를 달리 했다. 당뇨병 환자에서 10년내 심혈관질환 위험이 10% 이상이면서 출혈위험이 높지 않고 추가적인 심혈관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 남성은 50세, 여성은 60세 이상부터 저용량 아스피린(75~162mg/dL)을 1차예방 전략으로 고려하도록 권고했다. 반면 심혈관질환 저위험군이면서 추가적인 심혈관 위험인자 없는 경우 남성 50세, 여성은 60세 미만에서 아스피린의 사용을 권고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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