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운전면허 취득 기준에서 뇌전증은 결격사유…환자들 기본권 보장 필요

▲ 대한뇌전증학회는 '교통사고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뇌전증의 대책'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달 31일 해운대 교통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뇌전증' 때문일 것이라 추측되면서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취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에 대한뇌전증학회(회장 홍승봉)는 5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1년 내 발작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 위험도는 낮다"며 "사회적으로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낙인이 뇌전증 환자를 공격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홍승봉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뇌전증 환자의 최소 무증상 기간이 1년 이하일 경우 운전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일부는 무증상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의사 소견서를 따르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운전면허 취득 기준에 뇌전증이 결격사유로 돼 있어, 환자들의 기본권 보장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외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뇌전증 환자가 다른 집단에 비해 교통 사고율이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먼저 2015년에 일본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심각한 교통사고의 상대적 위험도는 1년 동안 발작이 없었던 뇌전증 환자군보다 70세 이상 고령군이 약 2배, 20대 남성 운전자군이 50%가량 더 높았다. 또 60세 이상의 정상인에서도 그 위험도가 높았다.

벨기에 연구 결과에서는 뇌전증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최대 상대위험도는 1.8이었으며, 이는 25세 미만의 운전자가 7.0인 경우와 비교했을 때 많이 낮은 수준이었고 생리기간인 여성의 상대위험도인 1.6과 비슷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뇌전증 등 정신건강질환으로 6개월 이상 입원한 경우 교통청에서 수시 적성검사를 시행하도록 돼 있다"며 "선진국의 연구와 사례를 토대로 국내 뇌전증 환자들도 6개월에서 1년 내 발작이 없다면 담당 주치의 소견서를 제출하는 방침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주마다 운전면허 기준이 다르지만, 뇌전증 환자의 경우 3개월, 6개월 길게는 1년간 증상이 없다면 또는 의사 소견서에 따라 운전면허 취득을 허가하고 있다. 3개월, 6개월, 1년간 운전을 금지했을 때 사고율 차이가 없었고, 환자들이 뇌전증 관리 규칙만 잘 지킨다면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단 홍 교수는 △1년 이상 수면 중 발작이 확인된 경우 △경미한 단순부분발작으로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은 경우는 예외조항으로 두었다. 면허 소지자에서 증상이 재발할 경우에는 6개월간 면허 정지 후 적성검사로 면허회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제한했다.

학회 제안에 대해 조우종 계장(경찰청 면허계)은 "환자가 운전 가능한지에 대해 의료인이 신고해주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국내 여건상 환자 비밀 유지와 개인정보 문제 등의 제약이 있다"며 "의료계와의 협의를 통해 질환 심각도에 따라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고, 질환이 심각할 경우 적성검사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인석 박사(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뇌전증이 수치상으로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원인일 위험은 낮았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뇌전증으로 6개월 미만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 중인 환자들은 위험하지 않은가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이 우선돼야 하며, 6개월이란 기준이 적정한가에 대해서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덧붙여 "특정 질환이 있거나 약물 치료 기간일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잠정적으로 정지시키고, 안전하다고 판정되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운전면허를 회복하는 '잠정면허 정지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홍 회장은 "기존에 면허를 취득한 뇌전증 환자들은 적성검사 시 별도로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받을 수 있도록 자료개발 및 교육강화 방안을 경찰청 교통국과 협의해 추진 예정"이며 "환자들의 안전교육뿐만 아니라 뇌전증을 진료하는 의사들에게도 안전교육을 포함한 진료지침을 개발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교통사고가 뇌전증과 연관됐을 가능성에 대해 그는 "운전자의 경우 당뇨병, 고혈압 등 여러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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