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전공의들이 나누는 세대공감 토크(2)

의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인 직업이지만 사회로부터 잦은 비난을 받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의료계는 부당한 의료수가 체계가 부당한 의료행위를 만드는 주된 이유라 하고, 사회는 의사들의 지나친 영리 추구나 도덕성 하락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MO 창간 15주년을 맞아 선후배 의사들이 모여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는 어떤지, 좋은 의사는 어떤 모습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토론을 통해 짚어봤다.

1. 우리는 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되었나?

2. 의사도 멘토, 멘티가 필요하다

3.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전공의특별법 시행 후 의국 분위기는?

▶김홍래: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전과 이후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는 1년차가 하는 것을 2년차가 봐주고, 2년차 일을 3년차가 봐주는 등 보이지 않는 시스템 혹은 위계질서가 가동됐다. 그런데 전공의특별법으로 80시간 수련이 정해지면서 의국 내 관계가 달라졌다. 서로의 관계가 조금 냉랭해졌다고 해야 할까. 과거에는 아랫년차가 병동을 커버하고, 윗년차가 수술실을 맡는 식으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연차 간의 역할분담이 어려워졌다. 과거 의국에서 4년차는 '빛나는 치프'였는데, 지금은 ‘내가 치프로서 하는 일이 무언가’ 하는 낭패스런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날개가 잘렸다고 해야 할까(웃음).

▶임차미: 김홍래 선생님 말에 100% 동감한다. 4년차가 수련의 꽃인데, 80시간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까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우리 병원은 과거부터 연차 간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꿨다. 그래서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전공의들 간의 끈끈한 무엇도 약해졌다. 과거에는 수련을 받다 도망가면 며칠 있다 잡으러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조차 없다. 좋은 ‘서전’이 되려면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점점 수술할 기회가 줄고, 펠로우가 돼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여자 서전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를 생각하면 이것저것 고민이 많다.

▶김대하: 1년차 때는 힘든 와중에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새벽까지 지키다 동이 틀 때 가슴에 뿌듯한 것이 느껴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만족감도 있어서 열심히 했다.

▶고윤석: 전공의들은 교수보다 윗년차에게 배우는 게 훨씬 더 많다. 병원에서 도제제도는 변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아무리 잘 발달해 있다고 하더라도 윗년차가 한번 알려주는 것보다 못할 것이다. 또 수술장에서 의사가 이것 한번 해봐라 하는 등의 실습이고, 응급실에서 아랫년차가 당황하고 있을 때 윗년차가 한번 조언해주는 게 수련일 수 있다.

멘토·멘티가 필요하다

▶고윤석: 수련 과정동안 고민하는 것은 어떤 점들인가? 나의 경우 수련 후 진로에 대해 고심했다.

▶송명제 : 나는 두 가지 고민이 있다. 공적인 고민은 전공의특별법을 만들 때 관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고민 아닌 고민이다. 당시 이 법을 제정할 때 원한 것은 의료 시스템의 사회적 재정립이었다. 막상 어렵게 통과시켜놨더니 일선 전공의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도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공의특별법으로 인해 각 전공의 간 구조가 수평적으로 됐다. 결국 가야 할 방향이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전공의협의회장으로서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가려 한다. 군대의 도제식 병영문화가 외부의 중재로 인해 개선됐다. 병원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과도기라 어수선하고 정리돼 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립되고 안정적으로 될 것이라 본다.

개인적인 고민은 진로문제다. 사람들이 응급의학과가 인기과라 전공의협의회장을 하느냐고 물어본다. 전혀 아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걱정이다. 내년에 군대에 가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할까 차근차근 생각할 계획이다.

 

▶송명제: 사회적 트렌드가 경직된 것에서 부드러운 분위기로 가고 있다. 의사와 의사 관계, 교수와 수련의, 전공의와 전공의 관계 등 이제 모든 관계는 달라져야 한다. 최근 일본 전공의협의회장을 만났는데, 일본은 상호존중시스템을 유지하되, 토론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고 했다. 의료가 가장 보수적이고, 도제식이던 일본이 변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변해야 한다.

▶김대하: 전공의는 병원에 고용된 직원이면서 수련 받는 교육생이다. 과거에는 도제식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좋은 점도 많았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그래서 전공의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교수와 전공의의 관계는 달라질 것이다. 실제 교수들이 "과거에는 전공의들이 사고(?)치면 교수들이 제자라 생각해 덮어주고 보호해주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직접 말한다.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과도기다. 전공의의 권리가 강조되다보니 현장의 분위기가 이전과 비교하여 다소 건조하고 사무적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기간이 지나면 적정한 선에서 균형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

▶고윤석: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걱정되는 것이 있다. 근무시간이 제한되고, 병원은 경영 효율화를 외치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걱정이다. 병원이 재원일수 감소 등 효율을 강조하면서 의사를 단순한 기술자로 만들 것이다. 전공의들이 좋은 실력에 더해 좋은 인품을 가진 의사가 돼야 하는데 걱정이다. 직업윤리가 없으면 전문가라 할 수 없다. 의료시스템에서 전공의들이 희생되지 말아야 한다.

 

▶임차미: 나는 과거 전통적인 스승과 제자 관계가 더 좋다. 교수는 스승이어야 하고, 멘토여야 한다고 본다. 외과는 책을 보면서 수술을 배울 수 없어 도제식 수업이 필수적이다. 스승과 제자 관계가 잘 형성되면 병원에서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고윤석: 옛날에는 교수가 4년차를, 4년차가 3년차를 가르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앞으로는 다를 수 있다. 연차 간의 업무 특히 내과는 1~4년차까지 비슷하게 될 수 있다. 수련시간이 모자라 원치 않는 전임의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년차가 당직을 서야 하는 일도 생겼다. 전공의들이 태도를 바꿔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전공의들 간의 우정이나 끈끈한 무엇 등은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적응해야 할 부분인 듯하다. 교수 입장에서도 섭섭한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회진을 돌다 커피도 한잔 하고, 어려운 점은 없는지 얘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그렇게 못하고 있다.

▶김홍래: 나도 전통적인 관계가 좋지만, 제자를 대하는 교수들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공의특별법을 계기로 교수들이 집단의 리더로서 후배들의 상황도 고려해주고, 변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윤석: 전공의 시절은 말랑말랑한 찰흙 같은 시기다. 그래서 전공의들이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공의 끝나고 전문의로 사회에 진출하면 생각이 굳어져 바꾸기 어렵다. 좋은 스승이 지식에 대해 알려주고, 진료도 도와주고, 의사로서의 자리매김도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전공의들에게 좋은 의사 혹은 의사로서의 자리매김 등에 얘기하면 다들 "바쁜데 무슨 소리야"하는 반응들이다. 나는 전공의와 교수 사이에 멘토 멘티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서둘러 전공의 2년차 정도쯤 자신이 지도받고 싶은 멘토를 정하고, 그 선생 밑에서 세부전공을 안 하더라도 '의사 됨'을 배우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멘토를 자주 못 만나더라도 고민을 공유하고, 인성지도 등을 받으며 훌륭한 의사가 되는 바탕을 쌓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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