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소용돌이 속 창간...의료계 투쟁의 현장을 함께 하다

메디칼업저버가 올해로 창간 15년을 맞았습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첫인사를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800호'가 넘는 신문을 선보였습니다. 돌아보면 길기도 짧기도 한 시간입니다. 메디칼업저버는 그간 세계 각국의 최신 학술지견을 소개하는 한편, 국내외 의약계 현장을 누비며 보건의료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15번째 생일을 맞아, 어느덧 누렇게 색이 바랜 창간호부터 차근차근 되짚어 봤습니다. 의약분업 대란부터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지난 15년 의약계의 역사가 작은 타블로이드판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도 역사의 증언자이자 객관적인 관찰자로, 때로는 속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가까운 동료로서 여러분 곁에 있을 것을 다짐해봅니다.
 

2001년 1월 8일 창간호 1면
- 고품격 의료전문지, 새 장을 열다

메디칼업저버는 의약분업의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2001년 겨울, 국내 유일 '고품격 의료정보-학술전문지'를 표방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의약계가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남으려면 최신의 의학지식과 법률, 경영, 보험 등 전문정보로 무장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창간호에서는 기초의학부터 임상의학까지 각국의 최신 연구동향을 소개하고, 의약분업 이후 혼란에 빠진 의약계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의약계가 갖춰야 할 최신의 전문 경영정보 등을 함께 담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최신의 의학정보와 생동감 넘치는 현장기사는 이후 메디칼업저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창간 15년, 주간으로 발행되는 지면 신문은 어느덧 지령 823호를 맞았다. 2003년엔 메디칼업저버 웹사이트인 MOnews 서비스, 2010년엔 MOnews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 보다 가깝게 독자를 찾아가고 있다.

2002년 1월 31일 58호 10면
- ‘의약분업 후유증 몸살’ 투쟁의 현장 전달

2000년 의약분업부터 2001~2002년 건보재정 파탄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는 의약계에 전무후무한 투쟁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2002년은 의약분업의 후유증이 극에 달한 시기다. 2002년 1월 27일 대한의사협회는 '실패한 의약분업 철폐와 국민건강 수호를 위한 전국의사결의대회'를 열었다. 대회가 열린 장충체육관에는 무려 1만 5000명의 의사가 운집했다. 

의료계의 분노는 2월 단행된 의료수가 인하로 더욱 극대화됐다. 의료수가가 인하된 것은 의료보험이 탄생된 이후 처음으로, 의약분업 이후 벌어진 건보재정 파탄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의료계 특히 개원가의 충격이 컸다.

의료계는 의약분업 실패에 초점을 맞춰 분업 철폐와 의약분업 재검토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의정 갈등은 막다른 길목을 달렸다.

본지는 투쟁의 현장에서 의료계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했다.

2003년 5월 19일 182호 5면
- 의료계 잠식한 불황의 그늘…대정부 투쟁 계속

의약분업 후유증은 2003년까지 이어졌다. 경쟁 과열에 따른 환자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의료시장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실제 당시 대한병원협회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병원당 평균 부채비율은 종합전문요양기관 191%, 종합병원 146%, 병원 252%로 이미 위험수위를 초과한 상황. 병원도산율도 9.6%에 이르러 전체산업부도율(0.23%)의 무려 40배에 달하는 수치를 보였다.

이는 개원시장도 마찬가지. 당시 의협에 따르면 의원의 휴폐업률은 2000년 6.9%, 2001년 6.8%, 2002년 8.2%로 꾸준히 증가했고, 2003년도는 상반기만 5.4%의 휴폐업률을 보였다. 

의약분업 이후 의원급 개원이 꾸준히 늘면서 의원 간 경쟁이 과열, 환자감소 현상이 발생한 탓이다. 이에 의료계는 의료시장 정상화를 촉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계속했다. 

본지는 생존을 위협받는 의료계의 현실과 투쟁의 목소리를 집중 조명했다. 

2004년 7월 5일 246호 1면
-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가 됐다’ 보라매병원 사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방조범이 됐다. 2004년 6월형이 확정된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얘기다.

사건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12월 한 남성이 낮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가 깨진 채로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환자는 장장 9시간 동안의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사달이 난 것은 그의 부인이 현장에 도착한 다음. 환자 부인은 병원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했다. 의료진은 "지금 퇴원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며 말렸지만 보호자의 의지는 완강했고, 결국 의사들은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퇴원을 승낙했다. 

환자는 구급차로 자택으로 이송된 후 곧 사망했고, 퇴원을 허가한 의료진들은 추후 '살인방조죄'를 확정받았다.

이 사건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의사들 사이에 "나도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번졌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존엄사'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호자가 무리한 퇴원을 요구한 이유가 병원비 부담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국가가 사회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병원이 떠안은 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2005년 2월 21일 276호 1면
- ‘의 vs 한방’ 의료계 발칵 뒤집은 두 장의 포스터

2005년 개원한의사협회가 내놓은 두 장의 포스터가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른바 '감기는 한방으로' 시리즈가 그 주인공. 당시 개원한의사협회는 '우리 가족 감기는 한방으로',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제목으로 모두 2만 5000부의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한의원에 배포했다. 개원한의사협회는 포스터 하단에 "한방은 부작용이 없어 임산부도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겁 많고 까다로운 아이들도 주사기의 두려움 없이 빠른 치료가 가능합니다"라고 적었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2004년 있었던 한의사 CT 허용판결(이는 2006년 고법 판결로 무효화 된다)로 한의계에 대한 의료계의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라,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특히 개원한의사협회가 내놓은 '한방은 부작용이 없다'는 문구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의료계는 한약 부작용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서 사회 이슈화시켰고 이로 인해 의·한 갈등이 그야말로 극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현재. 이번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의료계와 한의계가 첨예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1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의·한방 갈등, 역사는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2006년 5월 8일 335호 1면·7면
- “좋고 싼 약만 등재” 약제비 정책 30년 만의 대수술

2006년 복지부가 약제비 건보적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약제비 정책 대수술에 들어갔다. 무려 30년 만의 일이다. 이는 한미FTA 협상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한 해를 뜨겁게 달궜다.

'재정안정'과 '국민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취지의 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효과 좋고 경제적인 의약품을 선별등제 하는 것과 건보공단이 신약등재 여부와 가격협상 전면에 나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의약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제약업계는 실거래가상환제 하에서 약가협상은 이중 규제 성격이 크고, 선별등재에서 제외된 제품은 퇴출위기에 내몰린다고 지적했고 의사들은 처방권 침해 등 불만을 토로했다. 

본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부의 기본 방침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제도시행에 앞서 정부, 의료인, 업계가 최대공약수를 찾아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2007년 2월 5일 370호 3면·2월 12일 5면
- 의료법 전부개정안 상정에 10만 의사 과천벌로

2006년 30년 만에 약제비 정책에 손을 댄 정부가 2007년에는 34년 만에 의료법 전부개정을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의료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 편의를 증진시키겠다는 목표다. 개정안에는 의사의 질병·진료방법 설명의무 부과, 비보험 고가 진료비용 고지, 의료법인의 합병절차 신설 및 부대사업 확대, 외국인 환자 유인 등 총괄적인 내용이 다뤄졌다. 

이에 각 사안을 두고 의료계 각 직역단체들의 주장과 입장표명이 그 어느 사건보다 많았고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가 단결하게 된 계기가 됐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한국간호조무사협회 등 4개 단체를 중심으로 범의료 의료법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2월의 혹한 속에서도 전국 의사를 과천벌로 모여들게 했다. 결국 이들의 투쟁으로 개정안 처리는 다음 해로 미뤄졌다. 

본지는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 과천집회 현장에 함께 했으며 그들의 주장을 전했다. 이와 함께 투쟁 과정 중에 발생하는 잡음도 놓치지 않았다. 9차례에 걸친 비대위 회의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비판적 시각과 이해관계에 따른 결속력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메디칼업저버 홈페이지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2016년 7월 메디칼업저버는 홈페이지를 개편했습니다.
가독성을 높이고, 비주얼을 강화해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변화했습니다. 이슈가 되는 학술 콘텐츠를 강화하고, 의료계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 기획기사를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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