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건정심 개편 가능할까? ⓵] 갈등 되풀이…“중립적이지 않은 구조 탓”
사실 8:8:8 형태의 건정심 논의 구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덜 내면서 더 많은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고, 의약계는 보험료와 수가가 인상되길 바라는 상황 안에서 양자가 각자의 근거를 들며 수가 인상 폭을 제시하고, 여기에 정부가 양자의 주장과 근거를 비교해 그 차이를 적절하게 조율한다면 이처럼 이상적인 구조는 없다.
실제로 건정심이 대내외적으로 명실공히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점, 그리고 수가 및 보장성, 보험료 등 건강보험 관련 제반 제도 개선에 대한 최종 의결기구로서 우리나라 의료보장 체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성과는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정부가 그 조율 역할을 충실히 해왔냐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결 권한의 과도한 집중 △결정사항에 대한 책임구조 결여 △가입자와 공급자 간 갈등 사안에 대한 조정기전 미흡 △건정심 위원 구성의 중립성 및 절차성 등 여러 가지 한계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0여년 전인 2004년 감사원은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이 정부의 의도대로 결정되도록 복지부가 공익대표를 임명 또는 위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익대표 위원을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위촉하도록 권고했다.
이와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2년 보고서를 통해 건정심 의사결정 구조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구조적인 문제로 정부안이 그대로 관철되지만, 명목상 건정심을 통과했기 때문에 결정의 원칙이나 근거에 대한 설명 의무가 불명확하다"며 "국가 책임 아래 결정돼야 할 많은 안건이 건정심을 통과하는 구조 안에서 설명과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은 책무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건정심을 구성하는 위원이 정부 측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4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의사, 즉 공급자의 참여율이 높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익단체 대표가 정책결정기구에 참여,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는 잘못된 구조라는 것이다.
보사연은 "건정심 위원 구성이 중립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의약계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거부권과 재심의 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변경,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건정심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정심, 갈등과 반목의 역사
의료계와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받는 건정심의 논의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써왔다.
앞서 건정심의 객관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의협은 지난 2003년 정부가 발표한 수가인상률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건정심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2010~2011년에는 2년에 걸쳐 가입자와 공급자 모두가 당시 건정심 결정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안과의사회는 건정심의 포괄수가제 도입에 따른 백내장 수술 수가인하 조치에 불만을 제기하며 상대가치점수 인하고시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대한병원협회가 건정심의 영상장비 수가 인하 방침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신청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가입자를 대표하는 경실련도 건정심 구성 과정에서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경실련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가입자단체를 임의 변경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상초유의 사태가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5월 의협은 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정심이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정부가 전문가 단체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묵인하는 도구로 사용해왔다며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공익단체에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 정부 측 인사들이 포진돼 있어 건정심의 모든 결정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게 당시 이들의 주장이었다.
의사를 대표하는 위원은 25명 중 3인에 불과해 표결로 결정하는 경우 전문가단체의 의견은 묵살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