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건정심 개편 가능할까? ⓵] 갈등 되풀이…“중립적이지 않은 구조 탓”

 
2002년 건강보험 재정적자 조기해소와 재정 건전화 달성을 목표로 야심차게 출범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강보험료와 요양급여비용, 건강보험 관련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의결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이지만, 이해당사자들이 건강보험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는 구성 취지와 달리 그동안 가입자와 공급자들은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되풀이해왔다.건강보험료와 요양급여비용 조정이라는 건정심의 역할을 볼 때 이들의 이해상충은 어쩌면 당연한 일.하지만 이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공익대표의 역할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가입자대표 일부는 건강보험 정책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공익대표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지는 거수기에 불과했던 상황이다.이에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출범 후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선되지 못했던 건정심 논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각자가 생각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건정심이 '잘못된 의사결정 구조'라는 문제의식은 같다. [창간특집-⓵건정심 개편 가능할까?]갈등 되풀이…“중립적이지 않은 구조 탓”[창간특집-⓶건정심 개편 가능할까?]위원 구성·역할 개선 목소리 커져[창간특집-⓷건정심 개편 가능할까?]논란이든 논의든 ‘계속된다’‘뜨거운 감자’ 건정심이 뭐길래건정심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요양급여 기준, 비용, 보험료 등을 정하는 기구로, 국민건강보험법 제4조에 근거해 설치·운영 중이다. 건정심이 중요한 까닭은 4대 보험으로 불리며 소득이 있는 국민 대부분이 납입 의무를 가지는 건강보험료, 그리고 의사들이 받는 의료수가가 바로 건정심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건정심의 구성을 살펴보면, 위원장(보건복지부차관)을 비롯해 가입자대표 8인, 공급자대표 8인, 공익대표 8인 등 총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좀 더 자세히 보면, 가입자대표에는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 추천자 각 2인, 시민단체·소비자단체·농업인단체·자영업자단체 추천자 각 1인 등으로 구성되며, 공급자대표는 대한의사협회 추천자 2인,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간호협회·대한약사회·한국제약협회 추천자 각각 1인으로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공익대표는 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중앙행정부처의 국장급 공무원 2인,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 임원 2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인, 대학교수와 같은 민간전문가 3인 등이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가운데 공익대표 8인은 이름은 공익대표라고 붙어 있지만, 구성을 살펴보면 사실 정부 측 인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복지부, 기재부, 건보공단, 심평원 등 4명은 아예 정부 측 관계자고, 전문가 4인도 결국 정부가 추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결국 위원장을 제외하면 정부가 8인, 의약계가 8인, 그리고 건강보험 가입자들, 즉 보험료를 내고 그 수혜를 받는 국민들이 8인의 지분을 갖는 셈이다.“건정심, 정부 입장 그대로 관철시키는 의결 구조”
 

사실 8:8:8 형태의 건정심 논의 구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덜 내면서 더 많은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고, 의약계는 보험료와 수가가 인상되길 바라는 상황 안에서 양자가 각자의 근거를 들며 수가 인상 폭을 제시하고, 여기에 정부가 양자의 주장과 근거를 비교해 그 차이를 적절하게 조율한다면 이처럼 이상적인 구조는 없다. 

실제로 건정심이 대내외적으로 명실공히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점, 그리고 수가 및 보장성, 보험료 등 건강보험 관련 제반 제도 개선에 대한 최종 의결기구로서 우리나라 의료보장 체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성과는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정부가 그 조율 역할을 충실히 해왔냐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결 권한의 과도한 집중 △결정사항에 대한 책임구조 결여 △가입자와 공급자 간 갈등 사안에 대한 조정기전 미흡 △건정심 위원 구성의 중립성 및 절차성 등 여러 가지 한계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0여년 전인 2004년 감사원은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이 정부의 의도대로 결정되도록 복지부가 공익대표를 임명 또는 위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익대표 위원을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위촉하도록 권고했다. 

이와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2년 보고서를 통해 건정심 의사결정 구조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구조적인 문제로 정부안이 그대로 관철되지만, 명목상 건정심을 통과했기 때문에 결정의 원칙이나 근거에 대한 설명 의무가 불명확하다"며 "국가 책임 아래 결정돼야 할 많은 안건이 건정심을 통과하는 구조 안에서 설명과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은 책무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건정심을 구성하는 위원이 정부 측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4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의사, 즉 공급자의 참여율이 높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익단체 대표가 정책결정기구에 참여,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는 잘못된 구조라는 것이다. 

보사연은 "건정심 위원 구성이 중립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의약계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거부권과 재심의 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변경,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건정심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정심, 갈등과 반목의 역사 

 

의료계와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받는 건정심의 논의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써왔다. 

앞서 건정심의 객관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의협은 지난 2003년 정부가 발표한 수가인상률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건정심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2010~2011년에는 2년에 걸쳐 가입자와 공급자 모두가 당시 건정심 결정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안과의사회는 건정심의 포괄수가제 도입에 따른 백내장 수술 수가인하 조치에 불만을 제기하며 상대가치점수 인하고시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대한병원협회가 건정심의 영상장비 수가 인하 방침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신청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가입자를 대표하는 경실련도 건정심 구성 과정에서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경실련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가입자단체를 임의 변경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상초유의 사태가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5월 의협은 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정심이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정부가 전문가 단체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묵인하는 도구로 사용해왔다며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공익단체에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 정부 측 인사들이 포진돼 있어 건정심의 모든 결정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게  당시 이들의 주장이었다. 

의사를 대표하는 위원은 25명 중 3인에 불과해 표결로 결정하는 경우 전문가단체의 의견은 묵살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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