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 “융통성 없는 전산심사, 의사 자율권 침해” VS 심평원 "지식기반 심사 고도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심사의 전산화와 과학화를 이유로 '전산심사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인 가운데 의료계가 보다 효율적인 심사를 위해서는 심사 기준에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심평원은 건강보험 지출관리 강화와 심사인력 부족, 그리고 보다 정확한 심사기준을 통한 일관된 심사를 위해서는 전산심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행정편의주의라는 반발과 함께 융통성 없는 전산심사에 따른 삭감으로 인해 '전산심사가 알파고냐'라는 비아냥까지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의 편의를 위한 의료행위가 삭감대상이 되면서 전산심사가 환자의 불편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보다 융통성 있는 전산심사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심평원 "전산심사, 앞으로도 확대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전산심사 대상을 확대해온 심평원은 올해도 전산심사의 비율과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평원 손명세 원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요양급여비용 심사의 전산화와 과학화를 위해 전산심사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평원은 전산심사 대상과 비율을 해마다 꾸준히 확대해온 바 있다. 

1996년 10월 의과 분야 점검부터 시작된 기준전산심사는 2012년 1289항목, 20113년 1413항목, 2014년 1567항목, 2015년 1732항목으로 그 대상이 꾸준히 증가했다. 

질환전산심사도 2012년 206개, 2013년 240개, 2014년 253개, 2015년 263개로 증가했고, 가장 최근인 2011년부터 시작된 약제전산심사도 2012년 1687품목, 2013년 3001품목, 2014년 5093품목, 2015년 9165품목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이에 따른 전산심사 비율도 증가해 같은 기간 동안 64%에서 70.5%로 증가했다. 

심평원은 전산심사를 앞으로도 계속 확대할 방침이다. 심평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전산심사 대상을 1896항목, 질환전산심사 271개, 약제전산심사 1만 4280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 현재 70.4%에 이르는 전산심사 비율을 올해 71.4%까지 늘릴 예정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한 전산심사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손 원장은 "심사의 전산화와 과학화를 위해 ICT 기술을 융합, 심사기준을 보다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며 "보다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인공지능 전산심사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 "전산심사가 알파고냐"

 

의료계는 전산심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획일적이고 인간적이지 못한 전산심사로 급여 삭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의사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는데 예외 없이 삭감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그동안 문제없이 처방해오던 약제도 실수로 상병을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감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과거 처방 이력만 봐도 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과 없이 삭감조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은수훈 공보이사는 "환자가 전산심사 기준에 맞게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환자가 심사기준에 맞지 않는 날에 왔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면서 "전산심사에서 삭감될까 두려워 환자를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은 이사는 "심평원의 전산심사 확대 의도와 방향성은 십분 이해된다"면서도 "결국 융통성 없는 전산심사는 환자의 불편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의료계 일각에서는 최근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로 화제를 모았던 알파고를 전산심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개별적인 전산심사 삭감 사례는 그동안 항상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전산심사가 알파고도 아니고 의사의 자율권을 융통성 없는 잣대로 옥죄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전산심사 삭감의 유구한 역사
의료계의 주장이 너무한 걸까? 하지만 심평원이 전산심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급여 삭감 논란을 되짚어보면 의료계의 비아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거 의료계는 리보트릴(클로나제팜)과 레보투스(레보드로프로피진) 사태로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3월 리보트릴이 약제전산심사 대상에 추가되면서 정신과 의원들은 무더기 삭감사태를 겪었다. 리보트릴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항간전제로 허가를 받은 상태였지만, 정신과 의원에서는 허가초과사용, 이른바 오프라벨로 불안증상 치료에 사용해왔는데 전산심사 추가와 동시에 일괄 삭감됐던 것이다. 

또 레보투스 시럽도 만성기관지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돼 있어 기침에 사용하지 못한다며 무더기 삭감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일례로는 지난해 12월부터 있었던 비뇨기과의 퀴놀론계(Quinolones) 항생제 삭감 사태다. 

퀴놀론계 항생제는 비뇨기과에서 항생제로, 대표적인 약물인 시프로플록사신과 레보플록사신은 만성전립선염이나 신우신염의 1차 치료제로 쓰인다. 

하지만 1차 치료제로 처방한 경우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 모두 삭감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평원의 전산심사는 국회에서도 지적받은 바 있다. 전산심사 과정에서 전산 운영 착오에 따른 요양급여 삭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이목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착오발생 건수 중 절반 이상은 전산운영 오류에 의한 것으로 2009년에는 총 착오발생 건수 6만건 중 69%에 해당하는 4만 1249건이, 2010년에는 6만 9999건 중 53%인 3만 7075건, 2011년에는 1만 9567건의 61%인 1만 2030건이 전산운영 오류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융통성 발휘해야" vs "기반 흔들어선 안돼"
의료계는 심평원이 전산심사를 확대하려는 방침이 현장에서 수용 가능하려면, 보다 융통성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로 잰 듯 자동으로 삭감하는 획일적인 방식을 유지한다면, 의료계의 혼란과 부작용만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외국에서는 대표심사를 한 후 허위가 발견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추세인데 비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전액심사를 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전산심사의 문제가 더 커질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개선이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개원내과의사회 은수훈 이사는 "전산심사에서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약제 처방에 관한 사항은 물론 행위에 대한 전산심사에서도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심평원은 전산심사의 심사 기준에 유동성을 두는 것은 '심사 기준'이라는 심평원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심사 기준에서 어긋난 청구는 기계가 심사를 했든 사람이 심사를 했든 삭감되긴 마찬가지"라며 "전산심사와 일반심사 모두 심사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전산심사의 융통성 부재로 인한 요양급여 삭감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산심사에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융통성이라는 게 심사기준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심사기준을 변경해야 하는 수준의 업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의료계와 논의를 통해 개별 사안에 대한 급여 기준을 변경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심평원은 올해 안에 감염내과 및 비뇨기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아 퀴놀론계 항생제를 비뇨기과에서 사용할 경우 특정 사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퀴놀론계 항생제는 예전부터 문제로 많이 지적돼 왔던 사안"이라며 "최근 전문가 자문을 받는 등 논의를 거듭했고, 올해 안으로 비뇨기과 심부장기 감염환자에게 특정 사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전산심사에서 삭감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산심사로 인한 삭감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프라벨 처방을 하거나 업코딩을 하는 것은 엄연한 심사기준 위반"이라며 "개별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