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 막을 방패 ‘PrEP'
HIV 감염 막을 방패 ‘PrEP'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6.07.04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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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에이즈관련 학회들 주목
국내 가이드라인 곧 나올 예정
▲ 에이즈 예방 캠패인의 상징물인 빨간 리본

최근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슈가 있다. 바로 PrEP(pre-exposure prophylaxis)이다. 한국말로 풀면 '노출 전 예방요법'으로 HIV 감염인과 접촉해도 노출 전 약물요법을 시행하면 감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지난 2010년 NEJM에 첫 기념비적인 연구가 실린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잘만 활용하면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률(또는 에이즈 환자 발생률)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감에서다.

올해 2월 미국에서 열린 레트로바이러스 및 기회감염컨퍼런스(CROI)와 5월 홍콩서 열린 아태평양에이즈 및 동반감염학회(APACC)에서는 HIV 감염이 사회적 문제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PrEP 요법의 관심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마침 국내에서도 해당요법이 내년 상반기경 허가 될 것으로 보이고 이에 앞서 관련 가이드도 나올 것으로 예고 되면서 학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한내과학회 저널에 관련 지견이 실린 데 이어 대한에이즈학회도 이달 열리는 연수강좌에서 PrEP을 핫토픽으로 선정했다.

성접촉은 에이즈 감염 전파 90% 차지 콘돔 권고

남녀노소 불문 성접촉을 통한 HIV 감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감염 경로이다. 따라서 HIV 감염자와 비감염자 간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있는 방법은 원천적으로 성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HIV 감염자가 본인의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절제하지 않는 이상 비감염자에 전파할 확률은 여전히 높다. 간혹 뉴스에 HIV 감염자가 사회에 반감을 품고 성매매를 했다거나 HIV 감염 사실을 숨겨온 채 무분별한 성행위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 사회는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HIV 감염 노출 위험이 높은 비감염군은 스스로 예방노력을 해야 한다. 사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통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콘돔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예방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감염 예방을 떠나 통상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면 사회의 HIV 감염률을 38%까지 낮출 수 있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로 그 효과는 막강하다.

당연히 HIV 감염자와 비감염자 사이에 콘돔을 사용한 경우 HIV와 다른 성매개 감염 질환의 발생도 줄어든다. 하지만 콘돔도 한계는 있다.

연세의대 최준용 교수(감염내과)는 "피임 목적으로 콘돔을 사용할 때 약 10%에서 피임에 실패하는 것처럼 콘돔 사용이 HIV 감염을 100% 예방하는 것은 아니며 콘돔을 사용했지만 콘돔을 불규칙적으로 사용했거나 감염자의 HIV 감염 상태가 진행하고 있었던 경우, 그리고 비감염자인 배우자에 생식기 감염 질환이 있는 경우는 HIV 감염의 전파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법은 포경수술이다. 포경수술은 단면 연구와 관찰연구에서 예방효과가 증명됐고 2007년부터는 무작위 연구까지 잇달아 나오면서 예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연구를 보면, 비포경수술자 대비 포경수술자는 HIV 감염 위험을 50%가량 낮춘다. 연구자들은 포피 안쪽 점막에는 Langerhans 세포, CD4+ T 세포 등 HIV 감염의 표적이 되는 세포가 자궁 경부에 비해 9배 이상 많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포경 수술이 HIV 감염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출 후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치료

약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HIV 감염 환자의 활성화된 바이러스 수치를 낮추기 위해 강력한 항레트로바이러스제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HIV 감염자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조기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하면 대부분은 막을 수 있다. 이른바 조기치료법이자 노출 후 치료요법이다. 이를 입증한 연구가 2011년에 발표된 HPTN052 연구이다.

이는 총 1793쌍의 HIV 감염자/비감염자 커플을 즉시 치료를 시작한 군과 CD4+ T세포수가 250 미만으로 감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를 시작하는 군으로 나눠, 감염자로부터 비감염자에게 HIV가 전파되는지 여부를 전향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높은 CD4+ T세포수에 조기 치료를 시작한 군이 낮은 CD4+ T세포수까지 기다렸다 치료를 시작한 지연 치료군에 비해 비감염자에게 HIV를 전파시킬 위험이 95% 낮았다.

그는 "HPTN052 연구는 HIV 감염자를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환자 개인에게 이득이 될 뿐 아니라, 공중보건학적으로 HIV 감염의 전파를 예방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을 입증했다"면서 "이를 근거로 모든 HIV 감염자는 CD4+T세포수와 관계없이 일찍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침이 마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출 전 예방요법도 대규모 연구서 효과 입증

노출 후 요법과 반대 개념인 노출 전 예방요법(PrEP)도 있다. PrEP은 말 그대로 HIV 감염 위험에 노출 우려가 큰 사람이 강력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일찌감치 복용함으로써 감염 침투 위험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다.

관찰연구와 소규모 연구를 통해 가설로만 제기됐던 내용이 대규모 연구인 iPrEx를 통해 입증했고, 그 결과가 지난 2010년 NEJM에 실린 이후로 에이즈 예방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HIV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성접촉을 했을 때, HIV 감염자로부터 전달된 수많은 바이러스 중에서 소수의 바이러스가 감염을 유발하는데,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전파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founder virus)의 증식을 억제하고, 면역에 의해 전달된 바이러스를 사멸시켜서 감염의 전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rEP 약물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유일

현재 PrEP에 사용하는 유일한 약물은 에이즈 환자 치료의 백본(NRTI)으로 사용되는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푸마레이트(emtricitabine/tenofovir disoproxil fumarate, 제품명 트루바다)이다. 지난 2012년 미국 FDA는 iPrEx 연구를 토대로 트루바다에 PrEP 적응증을 추가했다.

iPrEx 연구는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태국 등의 여러 나라에서 2499명의 HIV에 감염되지 않은 동성애 남성(MSM)에게 하루 한 번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 또는 위약을 투여해 HI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지 전향적으로 평가한 연구이다.

▲ PrEP 요법의 효과,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순응도가 높을 수도록 더 높은 예방효과를 보인다.

모두 6개월 이내에 HIV 감염자나 HIV 감염 상태를 모르는 파트너와 항문 성교를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을 모집단으로 정의해 총 3324명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HIV 감염자가 시험군에는 36명이 발생했고, 대조군에는 64명이 발생해, 통계적으로 위약 대비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가 HIV 감염을 44%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N Engl J Med 2010; 363:2587-2599.)

이어 나온 the Partners PrEP 연구는 케냐와 우간다에서 모집된 4758명의 이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이 연구에서는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뿐만 아니라 테노포비르 단독요법으로도 HIV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을 입증했다.

결과적으로 테노포비르 단독요법을 PrEP 요법으로 썼을 때 상대적 HIV 감염률을 67% 낮출 수 있었으며,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로 쓰면 75%까지 추가적인 위험감소 효과가 있다(N Engl J Med 2012; 367:399-410). 중요한 점은 단독이든 복합제든 모두 PrEP 요법으로서 HIV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4알만으로도 효과적인 온-디맨드 요법

최근에는 필요할 때마다 먹는 온 디맨드(On-Demand) 요법으로도 HIV 감염을 낮출 수 있다.

앞서 iPrEx 연구는 감염 노출을 대비해 미리 복용하는 방법이고 노출 이후에도 계속 복용하는 데 비해 온-디맨드는 위험 노출 전 24시간 내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 2알을 로딩도즈로 복용하고, 노출 발생 후 24시간 간격으로 2알을 복용함으로써 총 4알만으로도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한 연구가 ANRS IPERGAY 연구이다. 최종 401명을 분석한 결과, 에이즈 발생건수는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복합제군에서 2건이었고, 위약군에서는 14건으로 나타나, 약물군에서 상대적 HIV 감염 발생률을 86%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N Engl J Med 2015; 373:2237-2246).

이 밖에도 각국의 다양한 연구에서 PrEP 요법의 유용성이 입증되자 지난 2015년 9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경구용 PrEP 요법을 HIV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약물요법은 콘돔과 포경처럼 남성이 주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빠르게 확산될 조짐이다.

 

아울러 각국의 허가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2012년 미국 허가를 계기로, 현재 남아프리카, 프랑스, 케냐, 캐나다, 이스라엘 , 페루, 스위스, 호주 등이 허가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보테그라비르의 지속형 주사제 버전도 곧 나올 것으로 보여 PrEP의 옵션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환자 급증…예방책 골몰

2012년 유엔에이즈(UNAIDS, Joint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가 발표한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250만명의 새로운 에이즈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PrEP의 확대는 이러한 에이즈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콘돔 사용이라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 있음에도 PrEP요법이 요구되는 이유는 사용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즈 감염문제가 심각한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는 문화적, 사회적 이유로 콘돔 사용률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적다. 따라서 약물요법의 예방 전략을 통한 확산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에이즈 환자가 많은 미국은 PrEP 요법의 강력한 근거를 등에 업고 처방률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4~2015년 사이 PrEP 요법을 시작하는 환자가 332%나 증가했고, 처방률도 39%가 늘어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세계보건기구가 PrEP 요법에 대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이 요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에이즈 환자는 9615명으로 해마다 20~30대 젊은 환자가 늘고 있다.

서울의대 방지환 교수는 "에이즈 전파 경로는 남성 간 성관계를 맺는 MSM(men who have sex with men)이고, 이들이 다시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바이섹슈얼인데 이 중 상당수가 젊은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준용 교수는 "아직 국내에서 진행된 임상 연구는 없지만 수학적 모델을 활용한 분석 결과, PrEP이 국내 MSM간의 HIV 감염 전파를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를 토대로 PrEP을 국내에도 도입하면 유용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예방효과 맹신하다 역효과 날 수도”

다만 문제는 비용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나서서 건강보험영역 내에서 해결해 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자발적 부담을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투약금액에 따라 확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은 다양한 PrEP 프로그램을 운영해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점은 예방 효과를 맹신해 과감한 성행위를 하다가 오히려 HIV 감염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 교수는 "PrEP 요법이 HIV 감염 위험을 낮춰주지만 100%는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예방요법이 있다는 이유로 더욱 과감한 성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에이즈학회가 오는 하반기 추계학회에 PrEP 가이드라인을 제정 발표한다. 진료지침위원장을 맡은 최 교수는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맞춰 어떤 사람에게 권고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등 간단한 내용이 담긴 PrEP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PrEP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제시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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