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수면의학회, 연령별 적정 수면 시간 가이드라인 발표

최근까지 발표된 연구들을 반영한 소아청소년 수면 가이드라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난 15일에 열린 미국수면학회(SLEEP) 연례학술대회에서 미국수면의학회(AASM)는 소아청소년에서 연령별 적정 수면 시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동시에 Journals of Clinical Sleep Medicine 6월 13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AASM은 수면 시간과 건강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다수 연구를 근거로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가이드라인에서 초점을 둔 부분은 '총 수면 시간'이다. 소아청소년에서 수면 시간이 부족해 나타나는 건강 문제가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어 충분한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연령에 따라 권고하는 적정 수면 시간은 낮잠을 포함해 하루 △ 4~12개월 영아는 12~16시간 △ 1~2세 어린이는 11~14시간 △ 3~5세 어린이는 10~13시간 △ 6~12세 어린이는 9~12시간 △ 13~18세 청소년은 8~10시간이었다. 

▲ 미국수면의학회(AASM)에서 권고한 연령에 따른 하루 적정 수면 시간

4개월 미만 영아는 수면 패턴과 시간의 변화 범위가 매우 넓어 수면 시간과 건강과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않아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소아청소년이 권고한 수면 시간을 꾸준히 지켜야 집중력, 행동, 학습, 기억, 감정 조절, 삶의 질, 정신건강 등이 향상되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수면 시간이 권고한 수면 시간보다 적을 경우 주의력과 행동, 학습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분석한 연구 중 한 연구에서는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갖지 못한 소아청소년에서 자해, 자살 생각, 자살 시도 위험이 증가한다고 나타나, 가이드라인에서는 수면 부족이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외에도 수면 시간이 부족할 경우 사고와 부상, 고혈압, 비만, 당뇨병, 우울증 위험이 증가하는 등 건강상에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한 수면 시간보다 더 많이 자도 괜찮을까? 가이드라인은 이 역시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권고한 수면 시간보다 오래 자도 고혈압, 당뇨병, 비만, 정신건강질환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부연했다.

과학적인 분석으로 개발한 공식 수면 가이드라인

소아청소년에서 최적 수면 시간을 권고한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발표는 근거 수준이 낮았고 주로 전문가 의견으로 구성된 권고안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엔 문제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2년 미국수면재단은 312개의 논문을 분석해 0~17세까지 연령별 최적 수면 시간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령에 따라 필요한 정확한 수면 시간을 기술하지 못했고, 통상적인 경험에 비춰 대략 어림짐작한 'rule-of-thumb' 방법으로 분석했다는 제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정확한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그간 발표됐던 연구들을 총괄적으로 정리해 개발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3명의 수면 전문가는 RAND 방법을 이용해 0~18세 소아청소년에서 건강을 위한 연령별 최적 수면 시간을 평가했다. RAND란 현재 확인 가능한 가장 과학적인 근거에 전문가들의 공통된 결정을 더해 적정성을 평가한 후 공식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총 864편의 논문을 문헌고찰해 수면 시간과 건강 간 연관성을 분석했고, 여러 번 투표를 진행한 끝에 최종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최적 수면'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최적 수면 상태를 위해선 수면 시간(sleep duration)보다 잠드는 시간(sleep timing)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었다. 수면 시간과 독립적으로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수면 습관이 신체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SLEEP 2011;34:1299-1307).

그럼에도 대부분 연구는 수면 시간에 무게를 두고 최적 수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됐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최적 수면'에 대한 초점을 '수면 시간'에 맞춰 발표했다는 점에서, 잠드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차의대 채규영 교수(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최적 수면 시간을 권고한 여러 발표가 있었지만 권고 수준이 낮았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은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들을 한데 모아 공식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큰 영향 없을 것… 충분한 수면 위한 시스템 마련 필요"

 

그렇다면 가이드라인 발표로,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짧다고 알려진 우리나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채 교수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충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청소년들은 아침 8시에 등교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한다. 게다가 하교 후에는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보단 학원에 다녀오고 귀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에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채 교수는 "청소년들이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가이드라인을 국내 임상에 적용하기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면 부족으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치료받고자 내원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부모에게 충분한 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절반 정도만이 수면 패턴을 교정하고 있다"면서 "잠을 충분히 자지 않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없다. 행복한 삶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잠"이라고 수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국외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이 잘 시행되려면 부모가 아이들의 수면을 돕는 롤모델 역할을 해야 하고, 청소년들도 생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여한 세인트루이스의대 Shalini Pruthi 교수는 "청소년들은 많은 활동을 하기 위해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것 보다 권고한 수면 시간 내에서 잠을 자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지지하면서 "아이들은 잠들 기 최소 30분 전 TV와 컴퓨터를 꺼야 하고, 규칙적인 시간에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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