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기기증원-한국인체조직기증원 올해 말 통합 앞두고 대립각

 

정부가 올해 말 뇌사자가 기증한 장기와 조직을 하나의 조직에서 운영할 수 있는 통합관리체계 구축을 선언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뇌사자가 기증한 장기는 한국장기기증원이, 인체조직은 한국인체조직기증원이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기증자가 장기와 인체조직을 기증하려면 기증절차를 각각 진행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전화번호조차 두 곳으로 나누어져 각기 따로 전화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장기나 조직기증 등을 하는 기증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두 기관 중심이라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겨우 기증 전화번호가 1577-1458로 통합됐지만 다른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다.  

"같은 일을 두 기관이…예산 낭비와 비효율의 극치"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기증된 장기나 조직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또 장기기증문화를 활성화하려면 이 두 기관이 통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슷한 업무를 서로 다른 두 조직이 하고 있어 예산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효율성조차 떨어지기 때문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같은 일을 두 조직에서 하는 비효율의 극치"라며 "장기기증을 위한 교육과 홍보에 두 기관이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효과가 떨어지고 있고, 두 기관만 비대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관계 얽혀 통합운영에 소극적, 주도권 싸움만…
“강제통합 불가능할듯…컨트롤타워 필요”

비용 낭비와 일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일각의 비판이 커지자 결국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와 두 기관이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MOU 내용은 지역사무소의 단계적 통합 운영, 장기·조직 기증의뢰 콜센터 통합운영, 뇌사 장기기증증진프로그램 공동운영, 뇌사장기·조직 동시 기증자 동의율 제고 등 통합의 디딤돌을 놓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장밋빛 상황은 여기까지였다. MOU 체결 이후 통합에 속도를 낼 것 같았던 두 기관은 그 이전보다 관계가 더 악화하는 것으로 보였다. 각기 자신들의 조직이 중심이 된 통합관리체계를 이끌어 가려는 주도권 싸움이 치열해진 것이다. 

조직기증원 측은 MOU 체결을 위해 자신들이 보유했던 전화번호까지 양보했는데 장기기증원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직기증원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갖고 있던 전화번호를 장기기증원의 1577-1458로 통합하는 데 협조했음에도 장기기증원은 실질적으로  MOU를 거의 진행하고 있지 않다"며 "지역 사무소의 단계적 통합운영에도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기기증원 측도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장기기증원 한 관계자는 콜센터(NRC 국가장기·조직 통합정보센터 1577-1458)로 조직기증을 한다고 연락 오는 수가 적다(주 10건 이내)고 말했다.

또 "국가장기·조직 통합정보센터 번호인 1577-1458은 복지부가 장기기증원이 운영해야 한다고 한 내용이다. 조직기증원이 병원에서 1577-1458 대신 개인 핸드폰을 사용하라는 등의 얘기를 하고 다니면서 과거보다 더 이원화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기기증원 입장에 대해 조직기증원 측은 통합정보센터 번호가 1577-1458로 일원화된 것은양기관의 공동 운영을 의미하는 것이지 장기기증원의 단독 운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장기기증원 측은 "현재 장기기증원에서는 통합정보센터의 단독 운영을 주장하면서 인체조직기증원의 접수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선택적인 정보만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사무실 통합 운영 등 MOU 체결 내용도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원 직원 1명이 한국장기기증원 NRC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고, 통합정보센터로 연락 오는 조직기증에 대한 문의 및 기증결정에 대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고 있다는 것. 

장기기증원 관계자는 "1주일에 1회 장기기증원과 조직기증원은 정기미팅을 통해 통합정보센터로 오는 기증자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장기기증원이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세팅한 DIP프로그램 공동운영을 위해 회의를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조직기증문제까지 협조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기증원 측 주장으로 기증 의사가 있는 환자 보호자에게 동시에 면담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지역사무소를 단계적 통합해 운영한다는 것은 MOU 안건에도 없던 것인데 갑자기 추가됐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직기증원 측은 다른 의견이다.

"보호자의 불편을 최소화 하면서 통합관리법 시행에 따른 장기와 조직 기증자 발굴기관의 통합을 대비해 양 기관에서 동시에 면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역사무소도 현재 광주 사무소 1개만 통합되었을 뿐 대전/대구/부산 사무소 통합은 전혀 진척이 없다"

DIP프로그램에 관해서는 공동운영임에도 사전 협의 없이 DIP 위원회 회의 일정을 인체조직기증원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DIP 입력 프로그램의 접근 권한 또한 인체조직기증원에 부여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러 갈등이 있음에도 조직기증원측은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기기증원 한 관계자는 "장기와 인체조직 기증 모두 중요하지만 두 기관이 서로 다르게 운영되고, 업무성과를 위해 노력하다보니 의료현장에서 느끼는 불편과 잡음도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는 장기와 조직을 하나로 통합해 운영되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래된 갈등, 깊어질 대로 깊어진 골

두 기관의 파열음은 이번 MOU 체결에서 처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갈등의 골은 깊어 보였다.

 

장기기증원은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병원교육 프로그램을 의무화하고, 이식을 위한 인체자원기증을 장기구득기관(OPO)에서 통합관리하도록 포괄적인 기증자관리체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내 장기구득기관 즉 장기기증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장기기증원 고위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장기와 조직을 모두 하나의 조직에서 구득 및 관리를 하고 있다"며 "통합된 장기구득기관이 있고 이 기관에서 장기분배(KONOS)와 조직채취 및 가공·보관(조직은행) 역할이 나뉘고 이후 이식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가족 관리의 일원화 및 체계화도 중요하다. 장기기증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증자 추모관 등 일관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 체계를 운영해왔다"고 장기기증원의 강점을 설명한다. 
장기기증원 측이 그리는 청사진에 조직기증원은 일부 의료인이 기득권을 고수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현재 인체유래물 기증은 의료적 행위로 인식돼 사용자인 의료인이 주도해 장기가 원자재로 전락했다는 것. 

조직기증원 한 고위 관계자는 "인체유래물 기증은 국민의 윤리적 의무가 될 수 있도록 의료적 행위(medical activity)를 넘어 공동체를 위한 국가적 우선사업(National Priority)이 되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인들은 기증된 인체유래물을 이용하는 수익자로 현재와 같은 관리자가 아닌 조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직기증원은 병원만이 안은행을 설립할 수 있고, 의사만이 각막을 채취할 수 있는 현행법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표현했다. 

한 관계자는 "공동체를 위해 무상 기증된 인체유래물의 관리주체가 정부인지 일부 의료인인지 알 수 없다"며 "국민이 아니라 장기기증원 중심의 일부 의대교수들의 지속적인 반대로 개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우유부단함으로 악화일로
두 기관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복지부는 통합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기증원과 조직기증원이 이분화돼 있어 기증자가 기증 신청서도 따로 써야 하고 담당자도 따로 만나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며 "두 기관의 갈등이 있다고 해서 통합을 늦추지는 않을 것이다. 방향은 정해졌다. 협력사업을 통해 양 기관의 통합 시 효과와 장점 등을 분석한 뒤 구체적 방안을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복지부가 조율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이렇게까지 끌고 온 것은 복지부의 무능함이라고 분석한다. 

의료계 한 전문가는 "두 기관이 이기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것도 있지만 상황을 지금까지 몰고 온 것은 복지부"라며 "초창기 아무 지식 없이 장기와 조직을 따로 분리해 운영하도록 한 것도 복지부고, 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제대로 운영조차 못 한 것도 복지부 책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역할이 겹치는 것 등으로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유부단하게 일처리를 해 두 기관을 조율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책임 지기 싫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통합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도 없다고 내다본다. 지금까지와 같이 두 기관의 논리에 이리저리 이끌려다닐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현재 상태에서 두 기관을 강제로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차리리 두 기관의 장점을 살리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두 기관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간단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두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며 "생명자원관리센터(가칭)나 장기기증원이 주장하는 국가생명기증원(가칭) 등을 만드는 것도 해결책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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