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talk] 전달체계 붕괴·저수가로 개원가 벼랑 끝...양심 지킬 수 있는 의료환경 만들어야

개원의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문지기이자 한국 의료체계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개원가는 주변 대형병원과의 무한경쟁, 어려워진 진료환경으로 적지 않은 곤란을 겪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궁지로 내몰았을까? 이들이 정부와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개원의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개원의사들과의 '소주(소중한 주장) 톡'은 각 진료과목별로 진행한다. 다섯 번째 만남은 가정의학과 개원의다.“문지기 역할 하라더니 지원은 전무 책임감 없는 정부 탓 크다”“의료계 모두 한배 탄 운명 상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자”

유태욱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연세모아의원 원장):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료계는 한배를 탔다는 점이다. 의료체계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의료가 살려면 가정의학과만 살아서 될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체계 전반을 조망하고, 그 안에서 가정의학과의 역할을 짚어보려 한다.

송한승 나눔의원 원장: 가정의학과 현안도 현안이지만 전체 의료계, 개원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의료계는 하나이고, 전체 의료계가 같이 살 수 있도록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계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그 안에서 국민건강도 지키고 나라 경제에도 이바지해야 할 텐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상황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 의료전달체계 붕괴와 저수가 절벽으로 내몰리는 개원의들

사회·고신정 메디칼업저버 취재부 기자: 원칙대로라면 1차 의료, 특히 가정의학과는 의료전달체계에 있어 문지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미비 등으로 현장에서는 고민과 혼란이 많다고 하더라.

유태욱: 1차 의료, 개원가 얘기를 하자면 의료전달체계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3차 의료기관에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환자실 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돼 있다 보니, 병원에서는 운영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대학병원들은 이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외래진료에 눈을 돌리고, 이 때문에 의원과 병원, 대형병원이 외래환자를 놓고 무한경쟁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김세헌 성모가정의학과의원 원장: 1차 의원-2차 병원-3차 대형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료법 제3조에 의하면 의원은 주로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은 주로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형병원이 외래진료를 계속 늘리며 동네의원과 경쟁을 하고 있다. 의사들이 무한경쟁에 내몰리면서 의사로서의 소신, 자존심을 가지고 진료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의사가 자신의 의학적 판단에 기반해, 그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면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송한승: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왜곡이 맞물리면서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유태욱: 의원 운영은 전적으로 의사의 책임이다. 지금의 수가 안에서 의원을 운영하려면 적어도 하루에 환자를 70명은 봐야 한다. 그래도 임대료, 인건비, 4대 보험료, 운영비를 내고 나면 의사가 가져가는 것은 몇 푼 안 된다. 의원의 도산을 막기 위한 지원책은 전무하고,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그때뿐이지 은퇴 후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도 오로지 의사 몫이다. 의사답게 자존심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하고, 거기서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의사가 제도와 법을 준수하면서, 어지간한 숫자의 보험환자를 진료해서는 생존이 안 된다. 하물며 중소, 영세기업에도 금리 등의 혜택이 있는데 의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송한승: 개원가는 의사 1명이 곧 자본이고,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정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 나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의사 스스로 절박해지고, 소신을 지키며 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 의뢰-회송수가 시범사업, 실패 불 보듯 

사회: 정부도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그 실행 방안의 하나로 의뢰-회송 수가 시범사업을 내놓기도 했는데.

유태욱: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3차 병원이 외래환자로 돈을 벌어 손실을 메우는 지금의 구조가 유지된다면, 그 어떤 개선책도 백약이 무효다. 핵심은 3차 병원에 있다. 일단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가를 대폭 올려 큰 병원들이 중증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3차 병원이 제기능만 해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외래환자를 많이 보면 패널티를 주는 강력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송한승: 최근 문제가 된 것처럼 환자가 사전에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간 경우에만 3차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일단 환자를 진료한 뒤 동네의원에 가서 진료의뢰서를 받게 하는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실정법 위반이다. 의원 입장에서는 진료의뢰서를 써주지 않으면 환자를 빼앗기거나 항의를 받게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에 동참하기도 한다.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3차 병원이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시작되는 문제다. 진료의뢰서 편법발급은 그래서 더 나쁘다. 이를 요구하는 3차 병원은 가차없이 처벌받아야 한다.

유태욱: 운영이 가능하다면 양심을 팔겠나.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올바른 것을 지키기가 힘들어진다.

송한승: 지금은 의사가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생존에 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유태욱: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3차 기관에 지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3차 기관이 교육과 연구, 중환자 진료 등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줘도 된다. 의뢰-회송 수가를 올려준다고 하지만, 3차 병원 입장에서는 검사 몇 번 돌리면 수십만 원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몇 만원 수가를 더 받겠다고 환자를 다시 회송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송한승: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대책이 아니다.

김세헌: 1차 외래-2차 병원-3차 대형병원으로 원칙을 만들었다면 정부가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지원해서 체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당장 돈 들어갈 걱정만 하고 있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의료를 경제논리로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료계를 몰아붙이고 있다.

유태욱: 3차 병원이 3차 의료의 기능만 했을 때도 조직이 생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운영이 가능하다면 그 누구도 양심을 팔지 않는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올바른 것을 지키기도 힘들어진다.

# 가정의학과 역할 왜 사문화됐나

사회: 가정의학과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혼란이 적지 않다. 적지 않은 환자가 여전히 가정의학과의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여타 전문과목 의사가 '○○의원’의 형태로 개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유사한 형태로 진료를 보는 사례도 많다.

유태욱: 의학의 세분화로 인해 여러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각각의 전문의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는 불편을 느끼게 됐고, 이에 1960년대 미국에서는 환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전문과목으로 가정의학과를 신설했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 가정의학을 도입, 23번째 전문과목으로 인정받았다. 질병의 종류, 환자의 연령 등에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1차 의료기관 가운데서도 문지기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 정작 가정의학과가 문지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지원은 지난 30년간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다. 가정의학과의 역할을 사문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정부다.

송한승: 가정의학과는 다방면의 진료가 가능하므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포괄진료를 받을 수 있고, 정책적으로는 비용효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책개발이 충분치 않다 보니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 책임은 상당 부분 정부에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의료계를 폄훼하면서 국민과 의사의 신뢰가 깨졌고, 국가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철학, 동네의원이나 가정의학과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겠다는 목표나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땜질처방만 이어가다 보니 혼란만 생겼다. 그럼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회: 주치의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으나, 의료계 내부의 반대여론이 있다.

 

김세헌: 의사들이 주치의제도를 반대한다?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치의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장하는, 정부가 만들려고 하는 주치의제도를 반대하는 것이다. 환자의 건강이 아닌 비용절약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주치의제도라고 볼 수 없다. 만일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의사들과 상의하고 의사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적정수가, 적정진료의 주치의제도를 만들려 한다면 이를 반대할 의사가 있겠나.

유태욱: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주치의제도 도입 논의가 매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논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노인인구의 의료비 점유율도 매해 증가하고 있다. 복잡하고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노인질환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서 노인인구에 한해서라도 주치의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지속발전이냐 파멸이냐

송한승: 의료시장의 왜곡이 한계에 다달았다. 우리는 지금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갈 것인지, 파멸의 길로 갈 것인지 사실상 마지막 기로에 서 있다.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대변되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그 핵심은 의사가 의사답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다. 1차 의료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2차 의료기관과 3차 의료기관 또한 제자리에 맞는 역할, 진료만 해도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김세헌: 기본이 안 지켜지는 사회, 의사가 의사다울 수 없는 의료환경이 된 지 이미 너무 오래다. 전달체계 개편이나 저수가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기 싫을 정도로 곪을 대로 곪았다. 이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의료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유태욱: 근시안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한국의료의 먼 장래, 앞으로의 20년, 10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올바른 정책을 만들려면 정책 입안자와 의료계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의 모습은 어떤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의사를 매도하거나, 의사를 처벌하는 정책은 만드는 데 힘을 쏟아서는 절대 바람직한 보건의료정책, 환경을 만들 수 없다. 의료전문가와 정부가 함께 건강한 의료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