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제 나의 가족들을 소개하며 나의 얘기들을 마무리하려 한다.
 
1935년 경성의전 졸업식 때 나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맨 앞줄에는 교수님들과 일본인 고위 관료들이 의자에 앉고 그 뒤에 학형들과 졸업생들이 순
서없이 섰는데 큼직한 한 장의 사진에는 200여명이 빼곡이 찍혔다.
 
졸업기념이라고 나눠준 빈약하고 볼품 없는 사진이지만 어머님이 보관하시어 남으로 내려오
실 때 간직하셨던 것이었다. 1946년 봄 마른 명태를 사서 목선을 몰래 타고 탈출하다시피 월
남하느라 반듯한 사진 한 장 없는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다.
 
이 사진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졸업식을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러 밖으로 나오는데 백인제 교수님께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오늘의 졸업식은 젠(全)군을 위한 것처럼 돼 버렸다.
 
졸업장에다가 상품을 받으랴, 답사를 하랴 교장이 있는 단상 앞에 세 번이나 나가지 않았는
가. 그런데 오늘 젠군의 어머니를 보니 젠군 보다는 그 어머니가 더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키가 크신 어머니는 인물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미인이셨다.
 
그러나 아버님이 금융조합에서 빌린 돈 때문에 집을 빼앗기면서부터 시작해 행방불명이 된 남
편을 찾으러 러시아를 돌아다니시며 온갖 고생을 하셨던 어머니. 거기에 시부모 모시느라 여
러 난관을 극복하셨다.

고마운 아내
 
나의 아내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없는 집으로 시집 와서 딸 일곱, 아들 하나 낳고 월급쟁
이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평생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다.
 
내가 크게 학자가 되려 한 것도 아니지만, 학업을 계속해야 어떻게든 내 뜻을 펴 세상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렇게 해야 자식들의 앞날에도 희망이 있을 것으로 생각돼 오로지 내
일에만 매달려 노력하느라 아내의 고생은 아예 무시한 나는 너무나 무심한 남편이었다고 자책
을 해본다.
 
그래도 그 아들 딸들이 큰 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제짝을 찾아 각기 제 구
실을 하도록 한 것을 보면 집사람의 자리가 얼마나 컸었는지 느껴진다.
 
아내가 85살이 되던 어느 날 밤 미국에 가 있던 아들이 학술관계 업무로 일시 귀국했다가 다
시 돌아가기 전날 저녁에 인사를 하러 우리 부부가 사는 집에 들렀다. 그때 아내는 "요즘 들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바른쪽 갈비 아랫부분이 묵직한 감이 들고 가끔 아프기도 하다"고 하자
아들이 진찰을 했다.
 
그리고는 결막에 황달이 이미 와 있고 간 아래 부분도 만져진다며 곧 입원을 하자고 서둘렀
다. 앰뷸런스를 불러 강남성모병원에 입원을 시킨 아들은 "췌담관 부분의 악성종양이 의심된
다"며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들의 의심은 다음날 틀림이 없이 적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간신히 추스르고 어
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지만 수술을 할 경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저 아픔과 괴
로움이 덜하도록 주치의에게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아들이 학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질병이 그 어머니에게 발생했는지 우연이라
고 하기에는 너무나 허망한 우연이어서 괴로움이 더했다.

주치의인 동료의 배려로 가끔 아내의 병실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큰 괴로움을 표현하지 않았
다고 생각된다. 날이 갈수록 식사를 멀리하고 쇠약해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병실을 찾아간 나를 힘없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묻는 말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딸들의 권유로 허탈감을 억누르며 다음날 아침 다시 오겠다고 나간 것이 아내와의 생
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밤새 임종을 한 것이다.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평화롭게 눈을 감은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며 어제저녁 쳐다보던
눈길이 "저 먼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릴테니 올 준비를 하시오"라고 한 것 같았다. 지금도 그 눈
길이 생생하게 떠올라 나도 이제 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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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의학공부를 했으면서도 아마 국내에서는 제일 기나긴 기간을 의학교육에 종사했다고
생각된다.

많은 분들이 어질고 겸손하시어서 나의 진로를 열어주었다. 감사하고 기쁘고 흐뭇하지만 그
분들께 보답할 길이 없어서 시원치 못함을 알면서도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 조금이
나마 감사를 표시하는 바이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고마움의 표현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라며 모든 분들 건강하고
늘 기쁨으로 지내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주위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변변치 않은 글을 실어준 메디칼업
저버와 정리하여주느리 애쓰신 권광도 국장, 노영수 주간,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리·
권광도 기자 kdkwon@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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