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망상 동반돼도 공격성 드러내는 경우 적어

최근 서울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피의자로 지목된 김모 씨(34)는 급성기 악화 조현병 환자로 여성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이상행동을 넘어 물리적 형태의 공격성으로 인한 극단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와의 프로파일러 면담 내용을 요약하면 김 씨는 진술 전반에서 "2년 전부터 여성들이 나를 견제하고 뒤에서 험담한다"고 말하며 여성에 대한 반감과 피해망상을 드러냈다. 이에 경찰은 김 씨의 범행이 단순히 여성혐오에서 나온 증오범죄(헤이트크라임)가 아닌 정신건강질환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단순히 피해망상을 동반한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 짓기에는 몇 가지 '팩트 체크(Fact Check)'가 필요하다.

<기획-상>'강남역 묻지마 살인' 비극 왜 "조현병 약물치료 중단 시 악화"
<기획-하>조현병 환자 범죄를 일으킬 만큼 위협적일까?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국내 매스컴에서 집중 보도되는 조현병 환자의 피해망상, 환각 등의 증상이 범죄를 일으킬 만큼 매우 위협적인 요인으로 치부될 수 있냐는 문제다.

 

피의자 김 씨는 2년 전부터 피해망상, 환각 증상이 심해졌다. 프로파일러 면담에서 모르는 여자가 자신에게 담배꽁초를 버리는 등 여성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어머니에게 누가 자기 욕을 하는 게 들린다고 말하며 집 근처 대문을 부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자기장애, 망상, 환각, 비논리적이고 혼란스러운 언어(빈번한 탈선, 지리멸렬)와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망상은 그 종류가 다양한데 △누군가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히고 피해를 주려 한다는 '피해망상' △자신이 대단한 능력을 갖춘 위대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주변의 사건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신과 특정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관계망상' △누군가 몰래 자신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감시망상'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는 '사고전파' 등이 있다.

실제 외부 자극이 없는 데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을 통해 어떠한 자극을 지각하는 '환각' 역시 환청이 가장 흔하며 심하면 환청이 지시하는 내용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청이나 망상을 동반한 환자가 물리적 형태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조기치료로 충분히 예방하고 개선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성균관의대 신영철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환자가 게을러졌다고 오해하거나 우울해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환자는 주관적으로 우울감을 호소하지 않거나 점차 어떠한 사회적 활동에도 무관심해져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행동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어 "이들 환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의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거나 말하고자 하는 초점을 잃고 말하는 도중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멍한 모습을 흔히 보여 적절한 급성기 치료 및 유지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기치료로 개선 가능…클로자핀 효과적

조현병은 분명 치료가 까다로운 질환은 맞지만, 모든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적절한 약물치료를 비롯한 조기치료로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는 질환으로, 증상 발생 후 1~3개월 후에 치료를 시작하면 예후가 현저히 나빠지기 때문에 치료를 빨리 받을수록 개선율이 높아지고 뇌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실례로 2010년 호주 연구팀이 초발 조현병 환자 374명을 7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조기치료를 할 경우 정신병적 증상이 약 50% 소실됐고, 사회적 및 직업적 기능도 22% 이상 회복됐다. 기능회복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 장보기, 돈 계산, 취직 또는 학업 등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조현병 환자 치료법은 가장 기본적으로 약물치료, 정신치료, 가족치료, 입원치료로 이뤄진다. 특히 급성기 조현병은 물론 이미 만성으로 접어든 조현병 환자에서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형 조현병 치료지침과 미국 텍사스주의 대학과 공공기관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지침서(Texas Medication Algorithm Project)에서는 치료의 처음 두 단계에서 항정신병약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세 번째 단계에서 클로자핀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만약 단독요법에도 반응하지 않은 환자라면 병용요법을 시도해볼 것을 지침서들은 권했다. 2012년 세계생물정신의학회(WSBF)에서 발간한 지침서의 경우 클로자핀과 리스페리돈 병용요법은 아직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경험적으로 효과를 기대하는 치료법으로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히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클로자핀은 조현병 관련 증상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자살 위험도를 감소시키고, 지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빈도수를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항우울제인 SSRI(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역시 증상을 개선하고 자살을 예방하는 데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입원치료는 진단적 목적, 약물 관련 이슈, 타인이나 본인에 위험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존재하거나, 실제 생활이 어려울 때 고려토록 했다. 최근 경향은 무의미한 장기 입원을 피하고 가능한 지역사회로 빨리 복귀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약 환자가 입원하면 담당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자세히 모니터링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치료는 조현병 환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상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질환의 이해도를 높여 환자에게 지지적이고 협조적인 환경을 조성해 재발률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 부딪했을 때 적절한 대처방안을 찾아 위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울의대 김의태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조현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기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보통 개선도가 좋은 환자들 가운데, 본인의 병이 완벽히 나았다는 착각으로 치료를 자의적으로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는 재발의 악순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치료의 저항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전문의들의 조기 치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환자의 집중관리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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