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의료분쟁조정제도 어떻게 달라지나...의료계 "조정신청 남발, 방어진료 양산" 반발

의료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골자로 하는 신해철법 도입을 두고 대립해 온 시민사회와 의료계가, 개정 법률의 효과를 두고도 전혀 다른 예상을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는 환자의 권리보장 차원에서 의미있으나 기대했던 것보다는 효과가 미흡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는 반면, 의료계는 중증환자 기피현상 등 의료현장 전반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19일 본회의를 열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에 관한 법률' 이른바 신해철·예강이법을 의결했다. 

개정 법률의 핵심은 '사망'과 '중상해' 사건으로 의료분쟁조정신청이 제기된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의료분쟁조정제도의 도입에도 불구, 주로 의료인인 피신청인의 거부로 조정이 성립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한 만큼 현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환자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담보하자는 취지다.

실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2년 4월 제도도입 이후 중재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총 5487건이며, 이 가운데 피신청인의 동의를 얻어 조정절차가 개시된 비율은 43.2%(2342건) 정도다.

의료분쟁조정제도, 어떻게 달라지나


▲의료분쟁조정절차 모식도(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소송을 보완할 피해구제 절차로서 2012년 4월 처음으로 도입됐다. 의료소송의 경우 비용과 시간 소모가 큰 만큼, 조정과 중재를 통해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제도는 임의적 조정절차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피신청인이 조정절차 참여의사를 밝히면 조정절차가 개시되며, 반대로 피신청인이 참여거부 의사를 밝히면 조정이 각하되는 방식이다.

피신청인이 조정에 동의할 경우에는 중재원 주도로 의료사고에 대한 감정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조정작업이 이뤄진다. 조정의 결과는 당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합의(쌍방합의)나 조정결정성립(쌍방동의/재판상 화해 효력), 조정불성립 등으로 맺어질 수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조정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은 불성립으로 사건이 종결되며, 조정이 불성립한 경우에는 일반절차에 따라 별도로 의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피신청인이 조정절차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거나 거부하면, 해당 사건은 '각하'로 종결 처리된다. 신해철법이 작동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조정신청이 사망이나 중상해 사건에 속한다면, '피신청인의 선택'을 배제하고 조정절차를 자동개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의 절차는 전자와 동일하다. 중재원 감정부의 의료사고 조사와 감정 절차가 이뤄지며, 이를 바탕으로 한 합의와 조정의 과정을 거쳐 합의나 조정, 쌍방간 의견 대립시 조정불성립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 

사망-중상해 사건, 피신청인 동의없이 조정절차 자동개시

당초 국회에 제안된 법안은 모든 의료분쟁에 대해 사실상 조정절차 강제개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했으나(오제세-김정록 의원안), 국회 논의과정에서 그 적용범위가 다소 축소됐다.

복지위 논의과정에서 조정신청의 남발을 우려해 그 대상을 사망사건과 중상해 사건으로 축소했고, 추가로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중상해 사건의 범위 또한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더 구체화했다.

현행 법률상 장애 1급에 해당하는 경우는 ▲두 팔이나 두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뇌병변 장애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시각장애 ▲지능지수가 35미만인 지적장애 ▲안정시에도 심부전이나 협심증증상 등이 나타나 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심장장애 ▲24시간 인공호흡기 생활을 해야 하는 호흡기 장애 등.

자동개시가 적용되는 장애등급 기준은 추후 후속입법 과정에서 다시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해, 그 범위가 현행 유지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중재원에 접수된 사망 또는 장애관련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모두 966건, 249건이며 실제 조정절차가 진행된 사건은 4년여간 각각 348건(36%), 98건(39.4%)으로 집계됐다. 이 중 현재까지 합의나 조정이 성립된 사례는 사망 92건, 장애 75건이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1급 기준

신해철법 파장은? 의료계 "소극진료 만연...환자에 되레 피해"

법 개정의 효과, 파장에 대한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분쟁절차에 휘말릴 것을 우려, 소극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건'을 맞닥뜨릴 위험이 큰 중증-고위험환자 진료과목에서 이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3일에는 자신을 외상외과 전문의라고 소개한 한 의사의 글이, SNS상에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생존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중증외상환자를 주로 다루며, 1년 동안 대략 5~10명의 사망환자를 본다"며 "신해철법에 따라 모든 사망환자가 의료분쟁조정신청을 한다면 1년 내내 자료를 준비하고, 진료보다는 저 절차에 얽매여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포괄수가제 시행 후 충수돌기염이 조금만 심해도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전원되어 오곤 했다"며 "법이 시행되면 모든 중증이 의심되거나 중중인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보내질 것이며, 그렇게 모여든 환자들로 병원이 가득차 (오히려 환자들이 제 때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개정 법률로 한사람의 회원이라도 피해를 입는다면, 위헌소송도 검토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시민사회 "자동개시 명문화 의미, 적용대상 축소로 실효성은..."

반면 시민사회는 의료분쟁 자동개시 절차가 명문화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법 적용을 받는 분쟁의 범위가 크게 줄어들어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당초 법안은 모든 의료분쟁 사건에 대해 분쟁조정절차를 자동적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했으나, 법안 논의과정에서 그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며 "자동개시에 '조건'이 붙게 돼, 당초 기대보다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평했다.

조정신청 남발과 이로 인해 방어진료가 만연할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우라고 말했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의료계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조정신청의 남발로 방어진료가 이어질 것이라고 하나 조정절차는 말 그대로 합의와 조정을 이끌어내는 절차로, 어느 한쪽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과를 강제할 수 없다"며 "중재원에 감정부가 있다는 점을 빼면, 현재 소비자보호원이 진행하고 있는 조정제도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가 없는데도 제도를 악용한다면 반대로 환자측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며 "모든 사망, 중상해 사건에 대해 무분별하게 조정신청이 남발되고 이로 인해 중증환자 기피현상과 의료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의료계의 과도한 걱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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