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학회 가이드라인서도 강력 권고 의료계 “RAV 검사 재심사…신의료기술로 인정해야”

 

닥순요법(다클라타스비르+아수나프레비르 병용요법)의 선행검사인 ‘내성관련변이검사(RAV)’를 두고 두 정부기관 사이에 '불통(不通)'이 발생하면서 사각지대에 처한 환자가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소속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는 RAV 검사가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공식화한 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RAV 검사가 선행되지 않은 닥순요법 처방은 삭감대상이라고 말한다.

RAV 검사를 두고 한 기관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또 다른 기관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등 전문성을 내세운 두 의료 관련 정부 기관의 불통으로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두 기관이 전문성을 이유로 서로 자신이 옳다고 결정 내리면서 그 사이에 낀 환자들 중에는 치료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RAV 검사 왜 필요한가?
심평원과 보의연, 두 정부기관의 엇박자를 빚어낸 내성관련변이검사, 이른바 'RAV 검사'는 왜 필요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C형간염 환자의 치료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닥순요법은 내성반응(Y93 또는 L31)이 치료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처방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는데, 닥순요법 처방 전 RAV 검사를 선행함으로써 이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없앤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일본 야마가타의대 소화기내과 Hiroaki Haga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RAV 검사를 통해 걸러진 환자들에서의 치료 결과는 기존 효과를 뛰어 넘은 95%에 육박했다.

교수팀이 닥순요법 투약 전 RAV 검사를 실시한 뒤 투약 4주째, 12주째, 치료 종료 시에 대한 치료 효과를 각각 판정한 결과, 치료가 적합한, RAV 검사 음성인 환자에서 4주차 지속바이러스반응(SVR)은 72.5%, 12주차 95.4%, 치료 종료 후에는 93.1%로 높은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내성변이 발현 유무에 따라 치료 효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 2월 열린 2016 APASL에서 발표된 '기저시점에서 각국 NS5A의 L31F/I/M/V 사이트 또는 Y93H 사이트에 내성발현율'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성변이가 없는 환자군의 SVR12는 95.6%에 달했지만, 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39.5%에 불과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구팀은 "치료 전 RAV 검사를 하는 것은 닥순요법의 치료 효과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보면, 닥순요법의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RAV 검사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셈이다.

두 의료 관련 정부기관의 불협화음
닥순요법 처방 전 필수 검사로 여겨지는 RAV 검사. 하지만 국내 의료관련 두 정부기관은 RAV 검사를 두고 엇박자를 빚고 있다.

먼저 새롭게 도입되는 의료기술이 국민에게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이하 사업본부)는 RAV 검사의 유용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RAV 검사를 통해 발견된 Y93 또는 L31과 같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실제로 닥순요법에 대한 내성을 유발하는지 여부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사업본부 관계자는 "RAV 검사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에서의 핵심은 돌연변이 유전자 양성이 약제 내성을 발현시키는지를 입증하는 것이었다"면서 "평가결과 유전자 돌연변이와 약제 내성 사이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RAV 검사는 신의료기술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진료의 적정성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심평원은 RAV 검사가 선행되지 않은 닥순요법 처방은 삭감 대상이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진다. 공식적으로 삭감 대상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의료계 측에 'RAV 검사를 선행하지 않은 닥순요법 처방은 삭감'이라고 구두로 고지했다는 전언.

대한간학회 김형준 보험이사는 "심평원에서 학회 측에 RAV 검사를 하지 않은 채 닥순요법을 처방할 경우 삭감하겠다고 구두로 공지했었다"며 "다클린자나 순베프라 급여기준 어디에도 삭감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학회 측에 따르면 이미 삭감사례도 나오고 있다.

김 보험이사는 "어느 의료기관인지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지난해 8월 닥순요법이 급여로 전환된 이후 RAV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닥순요법 처방에 대한 삭감사례가 몇몇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학회는 심평원 측에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편법 조장하는 정부”
이 같은 두 정부기관의 엇박자를 두고 의료계는 정부가 나서 편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심평원에서도 RAV 검사를 선행하지 않을 경우 삭감하겠다 하고, 간학회 가이드라인에서도 RAV 검사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지만, 보건의료연구원이 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 상태"라며 "결국 정부는 의료계에 편법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대한간학회가 발간한 'C형간염 진료가이드라인'에는 유전자형 1b형 만성 C형간염 및 대상성 간경변증에서 닥순요법을 24주간 매일 경구 투여하되, 치료 전 내성관련변이(RAV)검사를 시행하고, 변이가 검출될 경우 다른 약제로 치료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진료가이드라인에서는 이를 강력권고(A1)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학회 진료가이드라인과 심평원의 구두 고지에 따라 RAV 검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신의료기술로 지정받지 못한 임의비급여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며 "의료계는 닥순요법을 처방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NECA와 심평원 어느 한 기관도 이 같은 문제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고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까지 양산하고 있지만 모두들 모른척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환자들
심평원과 사업본부, 두 정부기관의 “내 결정이 옳다”는 식의 엇박자 때문에 사이에 낀 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먼저 RA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15%의 환자들은 닥순요법의 효과가 미미함에도 의미 없는 치료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닥순요법은 약제 내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 95%에 육박하는 효과를 보이지만,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서는 40%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기존 페그인터페론 요법이 70%대의 효과를 보이는 것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로, 닥순요법을 통한 치료에 의미가 없어지는 수준이다.

연세의대 안상훈 교수(내과학교실)는 "진료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데 정부가 정확한 진단을 위한 도구를 막아놓은 꼴"이라며 "이 때문에 닥순요법을 통한 C형간염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가 발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RAV 검사 양성 반응 환자 가운데 페그인터페론 치료에 실패한 환자의 경우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b형 C형간염을 앓고 있는 환자 A씨는 닥순요법을 처방받기 위해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은 의료기술임에도 RAV 검사를 받았지만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닥순요법을 통한 치료가 무의미해졌다.

이에 소발디(소포스부비르)와 하보니(소포스부비르/레디파스비르 고정용량복합제)가 차선책이 됐지만, 최근 급여기준 결정 과정에서 1b형은 통째로 제외되면서 처방이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다시금 페그인터페론 요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환자 A씨가 이미 페그인터페론 요법에 실패한 환자였다면? 결국 A씨는 우리나라에서 C형간염을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안 교수는 "RAV 검사 양성 반응 환자이면서 인터페론을 사용하기 힘든 간경화 환자, 고령 환자, 치료실패 환자들은 치료받을 방법이 없어진다"며 "RAV 양성 환자는 결국 닥순요법도, 새 치료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정부는 현장 목소리 들어야"
의료계는 이 같은 의료 관련 두 정부기관의 엇박자로 발생하는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 교수는 "작금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RAV 검사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재심사가 최선의 대안"이라며 "임상에서 RAV 검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학회 진료가이드라인에서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부는 신의료기술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신의료기술 인정 여부는 복지부 산하의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를 포함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업본부 측은 자신들의 권한이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사업본부 관계자는 "신의료기술 인정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은 전문가로 구성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전문가 의견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우리 측에서 인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사업본부는 신의료기술 인정 평가를 위한 근거를 수집하는 기관일 뿐 인정 결정은 권한 밖이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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