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에 속아 수십억 환수처분 비일비재…스스로 사무장병원 여부 살펴봐야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에서는 근무하던 병원이 사무장병원인 줄 몰랐던 의사에게 요양급여비 환수처분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결이 나온 적이 있다.

의사 A씨는 지난 2004년 6월부터 1년간 모 병원에서 원장으로 재직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씨가 해당 기간 사무장인 B씨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2억 9000여만원의 요양급여비 환수처분을 내렸다.

사무장병원인 줄 몰랐다고 항변한 A씨에게 재판부는 “이 사건 병원 정도의 규모를 갖춘 병원에서 병원장의 진료 업무와 원무과의 행정업무가 구분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병원 운영방법이 비정상적인 운영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무장이 병원을 운영했다고 해도 A씨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A씨의 사례는 행운 또는 기적에 가깝다는 게 평이다. 왜냐하면 사무장병원에 연루된 수많은 의사들이 사무장병원임을 몰랐음을 주장하고 법원의 선처를 구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원의 태도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선임전문연구위원)는 “많은 의사들이 사무장병원임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형사처벌은 모면할 수 있어도, 환수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에선 통하지 않는다”며 “건보공단의 부당이득징수제도는 나가지 말아야할 요양급여비용을 원상회복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몰랐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패소한 의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의료법 제90조에 따른 형사처벌(300만원 이하의 벌금)과 행정처분(면허정지 3월)을 받을 수 있으며 사무장이 일정한 의료행위를 하게 되면 부정의료업자의 공범이 돼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 조치법에 따라 징역형 처벌과 함께 면허 취소의 대상이 된다.

면허 취소나 형사처벌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형사처벌, 행정처분이 내려진 직후, 건보공단에서 내리는 환수처분이 사무장병원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적법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의해 청구된 요양급여비용은 환수처분 대상이 되는데 이 액수가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사무장병원 관련 의사 중 상당수가 재기불능상태에 빠져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사무장병원 의사들이 공익을 해치고 국민건강권을 위협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의료계는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범죄의 질과 양에 따른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정부가 사무장병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다보니 사무장병원이 아닌 것처럼 의사 회원들에게 접근해 피해를 입힌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사무장병원인지 몰라서 근무하게 된 의사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법적 조치를 취한다면 사무장병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독버섯처럼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사무장에 대한 처벌조항이 약해 사무장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 사무장병원의 실질적 운영자인 사무장에게도 부당이득을 환수할 수 있는 ‘사무장병원 부당이득 환수법’이 마련됐지만, 사무장과 사무장병원 의사가 연대해 환수하라는 내용이어서 사무장이 잠적해버리면 모든 책임을 의사가 져야하는 상황이다.

김 대변인은 “사무장병원에 대한 폐해를 의사만 지게 된다면 사무장들은 앞으로도 피해를 덜 입는다는 생각에 사무장병원을 다른 곳에서 또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사무장병원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해 이에 따른 처벌을 내려야 사무장병원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무장병원 폐해, 스스로를 보호하라

그렇다면 사무장병원의 마수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병원에 취직하기에 앞서 몇 가지 사안만 주의하면 사무장병원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건보공단 김준래 변호사는 ‘사무장병원 징후 혹은 체크 포인트’로 ▲법인등기부등본 대표자와 실제 사장이 다른지 여부 ▲미수금 처리를 사무장이 감수하는지 여부 ▲대표의사의 월급이 고정적인지 수시로 변경되는지 여부 ▲수익금 귀속이 어디로 되는지 여부 등을 꼽았다.

 
먼저 김 변호사는 병원에 취직하기에 앞서 체크해야할 사안으로 ‘법인등기부등본’을 언급했다.

그는 “의료법인 같은 경우에는 등기부등본이 반드시 등재가 되고 누구라도 이를 떼어볼 수 있다”며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대표자가 누구인지, 엉뚱한 사람으로 돼 있으면 사무장병원임을 의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에 취직을 했다면 병원 미수금을 누가 관리하는지 여부도 눈여겨봐야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생병원이나 의외로 잘 안 되는 사무장병원이 있는데 이런 경우 병원에 자금이 부족하다”며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살펴봐야한다. 나와 계약을 체결한 대표원장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뛰어다니고 있다면 사무장병원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대표원장의 월급이 고정적인지, 수시로 변경되는지 여부도 사무장병원을 구분하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는 “상식적으로 병원이 어려우면 직원들 월급부터 챙기느라 대표원장은 자시 몫을 제대로 못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른 직원들은 월급을 못 받아가는데 대표원장이 매달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아간다면 이 또한 의심해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수익금 귀속 여부에 대해서는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이 들어오는데 대표원장이 아닌 비의료인에게 넘어간다면 사무장병원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4가지 경우만 주의하면 사무장병원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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