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동네 의원 살려라…원가에 근접한 수가 필요” VS 공단 “의료전달체계·보장성 강화 등 재정 투입 먼저”

 

올해도 어김없이 수가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6개 공급자단체는 오는 5월부터 한 달간의 협상을 진행할 협상단을 매조지 했다. 특히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사태와 사상 최대의 건강보험 재정 흑자 등 지난해와 또 달라진 협상판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고 있다.

세부적인 수가협상 일정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2017년 수가협상을 앞두고 보험자와 공급자는 각각 진지를 구축하고 협상 카드 개발에 한창이다. 아직 서로의 눈치를 보는 단계인 현재 구체적인 수치는 비밀에 부친 상태지만, 올해 수가협상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공단 “기대하는 만큼의 수가 인상은 힘들어”

먼저 건강보험 재정 상황은 현재까지는 풍요롭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건강보험 재정은 4조 1728억원 흑자를 봤다. 이에 따른 누적 흑자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까지 약 16조 8721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사상 최대의 누적 흑자를 기록한 건보재정을 두고 가입자와 공급자는 흑자분을 '써야 한다'라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 종착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선 공급자단체 측은 사상 최대의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두고 한껏 기대가 높아진 상황.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 김주형 단장은 "동네의원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동네의원이 몰락하기 전 정부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그 방안 중 하나는 원가에 근접한 수가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1년 46조 2379억원에서 2015년 57조 9593억원으로 최근 5년 사이 11조 7214억원(25.3%) 늘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 증가율은 4.3%에 그쳤다.

아울러 같은 기간 동안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 점유율은 21.6%에서 20.3%로 감소했다. 특히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으로 진료비 점유율이 떨어졌다.

약계 역시 단기적으로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 장기적으로는 약국 신규개소 감소 등을 가입자 측에 호소할 예정이다.

대한약사회 수가협상단 이영민 단장은 "올해 수가협상에서는 메르스와 같은 사건사고가 많았던 만큼 약국 특성을 살려 건보공단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며 "특히 현재 신규약국 개설은 정체상태인 점을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보공단에 따르면 전체 요양기관 수는 2011년 8만 2948개에서 2015년 8만 8163개로 최근 5년 사이 5.3% 늘었다. 반면 약국은 같은 기간 동안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단장은 "최근 약국으로 들어오는 처방전 수가 감소하고 있고, 환자 방문 횟수도 줄고 있다"며 "특히 전반적으로 신규 약국 개설이 감소하고 있다. 개국 상황이 좋았다면 절대 개체 수 정체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공급자 측은 건강보험 흑자분이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가입자 생각은 다르다. 사상 최대의 누적 흑자를 기록한 건강보험 재정은 의료전달체계 개편, 보장성 강화 등 국민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 투입돼야 한다는 입장.

최근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복귀한 조재국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 5년간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당기흑자도 4조원을 넘어섰지만, 보장성 강화와 미래를 준비해야 할 재정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이를 즉각 수가에 반영하긴 어렵다"면서 "공급자단체가 기대하는 만큼 흑자분을 고려한 수가인상은 곤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는 "가입자를 위해 공급자를 옥죄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가입자와 공급자, 그리고 국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년과 같은 협상 반복될 듯

17조원이라는 건강보험 사상 최대 흑자를 두고, 의료계 현장에서는 그 흑자분이 수가에 반영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의협 한 관계자는 "환산지수 연구의 틀이나 수가계약 방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협상판이 개선될 여지는 없다"며 "되레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이 실시한 2016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보고서에는 의료업에 종사하는 모든 유형의 사업체에서 평균 매출액이 평균 영업비용보다 높은 상태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기관당 영업이익은 평균 1억 6400만원으로 나타났고, 흑자를 기록한 기관 비중은 98.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보고서는 "종합병원과 일반병원은 영업이익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일반의원은 상황이 유지되거나 호전됐다"며 "특히 일반의원은 기관당 매출액이 영업비용보다 현저하게 높다"고 밝혔다.

지난해 환산지수 연구가 이 같은 결과를 보인 만큼 공급자의 주장이 보험자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의미이다.

의협 관계자는 "건보공단에서는 진료비연동제, ABC 원가 제출 등 다양한 요구를 하며 예년과 같이 반복적인 협상을 이어갈 것 같다"며 "가입자는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적인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수장들 변수될까

지난해와 달라진 또 하나의 변수는 가입자와 공급자 단체의 수장 변화다. 먼저 건보공단은 협상을 좌우할 급여상임이사를 새롭게 임명했고, 공급자 단체들 대다수도 협상단 구성에 있어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먼저 공급자 단체들은 협상에 능숙한 전문가들을 재배치하며, 건강보험 흑자분이 조금이라도 더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의협은 김주형 전라북도의사회장을 단장으로 신창록 개원의협의회 부회장, 김동석 전 기획이사, 임익강 보험이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일찌감치 협상단을 꾸렸다. 아울러 각 진료과별로 전문가들을 배치하고 근거자료를 토대로 건보공단을 압박해나갈 계획이다.

약사회는 전년도 우수한 성적을 냈던 점을 감안, 이영민 보험정책연구원장을 앞세운 협상단 구성을 완료했다. 약사회는 이 연구원장을 필두로 이모세 보험위원장, 조양연 보험위원장, 이용화 보험위원장이 협상위원으로 올해 수가협상에 투입될 예정이다.

약사회는 약국의 인건비 및 임대료 상승, 불합리한 카드수수료 등 경영비용 증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수가 인상방안을 마련하는 등 성공적인 수가계약 체결을 위해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한병원협회는 오는 5월 13일 신임 회장 선거를 앞두고 집행부의 변화가 예상되면서 사실상 수가협상 준비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이 같은 일정 탓에 내부 연구용역은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협상단은 꾸려지지 않은 상태다.

병협 관계자는 "병협 회장선거와 일정이 맞물린 상황이라 협상 전략에 대해 아직까지 공개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다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선거 전이라도 수가협상단을 꾸리고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공급자 단체들이 수가협상을 앞두고 건보공단을 압박할 카드를 발굴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건보공단은 수가협상을 이끌 신임 급여상임이사에 장미승 씨를 임명했다. 장 신임 이사는 수가협상에서 보험자 협상 단장을 맡아 협상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수가협상은 이해당사자 간의 조정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경력을 볼 때 조정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라며 "특히 수가협상 실무는 관련 실장과 부장 선에서 이뤄지고 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기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산지수 연구 완료 후 본격 협상

한편, 건보공단은 최근 원주 신사옥에서 공급자 단체 실무진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수가협상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2017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가 진행 중인 만큼 연구가 끝나면 본격적인 협상 일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입자 단체들과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며 협상에 임할 예정이지만, 환산지수 조정률은 우리와 입장차가 있어 단언할 수 없다"며 "다만, 5월 초 환산지수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입자와 공급자 각자가 내년도 살림살이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5월 말일을 기점으로 2주간 집중적으로 진행될 올해 수가협상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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