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제보 많아 경각심 필요...매출부진해도 CP팀 역할 강화돼야

작년부터 이어지는 P제약사의 리베이트 조사, 올 초 진행된 다국적사 수사확대 우려 등 또다시 업계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 당국의 타이트한 압수수색, 제약협회의 무기명 투표 공개 결정 등 불법영업을 향한 경고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말뿐인 공정경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윤리경영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를 인지하듯 제약업계에도 CP(Compliance Program) 강화 바람이 일고 있다. 특히 글로벌 진출을 겨냥하고 있는 지금이 윤리경영을 확립하기에 적기라는 의견이다. 요원해 보였던 제약업계 CP문화 확산이 가능할지 진단해 보자. 틈새 노린 불법 영업은 ‘독이 든 성배’작년 10월 P제약사는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일정 금액의 의약품 처방을 약속받은 후 처방액의 15~30%까지 일시불로 제공하거나 매월 처방금액 대비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불법영업을 저지르다 된서리를 맞았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회사는 물론 이를 받아 챙긴 의사들에게도 제재가 가해졌다.P사의 리베이트 이슈로 불법 영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금도 처방액의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영업정책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지역 또는 동문 단위의 모임을 만들어 한 명의 대표자가 처방대가를 받아 나눠 갖는 네트워크 형태 리베이트도 생기고 있으며 영업사원의 활동비를 올려주면서 영업비용으로 사용하라는 압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협회 이행명 이사장은 지난달 26일 이사회에서 "대다수 회사가 리베이트 근절 다짐을 실천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버젓이 리베이트 영업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면서 "이 같은 행태는 법을 지키고 리베이트 영업을 하지 않기 위해 불이익까지 감수하고 있는 다수의 경쟁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물론 선량한 이익까지 가로채는 불법적인 처사"라고 지적했다.

국내 제약사 한 임원도 "틈새를 노린 불법 리베이트 영업은 당장 매출에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약가인하, 품목 허가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어 자칫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할 수 있다"며 "독이 든 성배와 같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리베이트 영업에 대한 경고 수위가 높아지면서 정상범주에서 영업마케팅 활동을 검열할 수 있는 CP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이미 CP문화가 정착된 한미약품은 사전 모니터링을 1285건 진행했으며 녹십자는 사전 검열을 통해 354건의 활동 계획을 반려했다. 영업마케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CP조직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CP팀 영향력 확대…부서 개편 눈길

최근에는 업계 전반적에 걸쳐 CP가 강화되는 추세다. 상위사 위주로 운영됐던 CP팀이 중소제약으로도 확대되고 있으며 체계적인 업무를 위해 인원보강 및 부서개편도 이뤄지고 있는 것.  

대웅제약은 지난달 CP 강화 선포식을 갖고 적용 범위를 대웅, 한올바이오파마, 대웅바이오 등 전 그룹사까지 확대시켰다. 일동제약은 올 초 CP조직을 사장 직속부서로 격상시키고 변호사, 약사 등으로 구성된 CP관리실과 CP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CP팀으로 개편했다

CJ헬스케어는 CP관리팀 증원을 계획하고 있으며 대원제약은 준법경영실을 신설했다. 한림제약은 기획팀 소속에서 조직개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휴온스는 기존 전략운영팀에서 감사실로 CP업무를 이관시켰다. 이 밖에도 JW중외제약, 한독, 동화약품, 보령제약, 삼일제약, 삼진제약, 안국약품, 유한양행, 종근당, 코오롱제약 등이 CP조직을 두고 있으며 서울제약, 영진약품 등은 CP팀 구성을 준비 중이다.

국내 상위사 CP팀 임원은 "윤리경영은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필수조건이며 회사 생존 문제로 직결되기도 한다"며 "그만큼 CP팀 역할도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뢰도 제고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부여하는 CP등급 획득에 도전하는 회사도 눈에 띄는데 녹십자와 종근당, 동화약품 등이 올해 CP평가를 받을 예정이며 대웅제약은 재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강력한 컴플라이언스 운용이 CP문화 정착을 위한 필수조건인데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가공인 등급평가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제약협회도 CP문화 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제약기업 현황을 정확하게 점검 및 반영할 수 있는 등급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협회 측은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의지와 시스템 구축 등 형식보다는 세부적인 내용이 중요하다"며 "제약기업 고유의 특성을 파악해 영업활동에 도움을 주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규제만으론 정착 안 돼…소통·포상도 중요”

사실,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CP팀을 조직했지만 운영방향과 실효성에 대해 고민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지난해 CP등급평가에서 AA를 받은 동아ST의 CP관리실 소순종 상무는 제약협회에서 개최한 제약산업 윤리경영 워크숍에서 제약업계 CP문화 확산에 기여하길 바란다며 길라잡이 역할을 자처, 구체적인 운영현황을 소개했다.

동아ST는 규모면에서도 제약업계 최대 CP 조직임을 자부한다. 자문변호사를 포함해 CP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교육하는 'CP운영팀'과 모니터링을 전담하는 'CP지원팀', 각 부서별 자율준수 실태를 점검하는 자율준수담당자까지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특히 대표이사를 자율준수관리자로 임명함으로써 윤리경영 의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동아ST CP팀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모니터링이다. 14개 세부항목별로 모니터링을 실시하는데, 영업부에서 작성한 기안서는 반드시 CP팀의 결재를 받아야 실행할 수 있다. 서류가 미비하거나 당위성이 부족한 경우 금전적인 배상 책임도 묻고 있다.

사후모니터링에서는 회계전표 전수조사와 현장실사도 진행한다. 즉, 각 영업지점의 경영지원팀이 보관 중인 회계마감 자료를 살피고 대규모 마케팅, 심포지엄, CP 위반 예상 거래처는 현장실사도 나가는 것이다. 거래처 판촉물은 회사 내부 구매사이트를 통해 승인 후 배포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최근에는 영업·마케팅뿐 아니라 연구개발부서 등까지 CP 적용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각 부서별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을 설명한 자료를 제작 배포했으며 온라인 교육 콘텐츠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CSO, CRO, 유통업체 등 협력관계에 있는 파트너사에 대한 관리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일방적인 규제만으로 CP문화가 정착될 수 없다. 동아ST가 꺼내 든 카드는 소통과 포상이다. 회사는 자율준수관리자와 1대 1 면담을 진행하고 게시판도 운영하고 있다. 자율준수 관리자 대화 게시판은 월평균 10~15건의 글이 꾸준히 올라올 정도로 활성화됐으며 게재된 내용을 회사 정책에도 반영해 업무 개선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내부 평가기준을 통해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소순종 상무는 "영업회의 등에 참석하면 매출부진과 CP의 상관관계 때문에 가시방석에 있는 것 같지만 윤리경영은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라며 "다행인 점은 대표이사가 자율준수관리자로 있어 효과적이고 빠르게 CP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복지부 "경쟁사 제보 많아…경각심 필요"

제약사들의 CP문화 확산을 가속화한 사건을 꼽자면 올해 초 진행된 서울서부지검의 다국적사 압수수색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제약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고 지금도 수사 확대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이고은 사무관은 제약산업 윤리경영 워크숍에서 "경쟁사로부터 리베이트 관련 제보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며 "암암리에 진행한다 하더라도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복지부와 산하 심평원, 공단, 식약처는 물론 검경과 국세청 등 관련 유관기관이 모여 보다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작년 3월에는 서울서부지검에 식품의약조사부가 신설돼 의약품 불공정거래행위를 전담해 상시수사하는 체계가 구축됐다. 때문에 제약업계를 둘러싼 전방위 압박은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다.

판매촉진 범위 넓게 해석될 수 있어 주의

이와 함께 제3자를 통한 불법 리베이트도 검경에서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며 리베이트 판단 근거가 되는 판매촉진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게 해석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 사무관은 "의약품 처방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판매촉진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방량 감소폭을 최소화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향후 처방권 결정에 대한 재량이 생겼을 때 고려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판매촉진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제3자의 불법영업도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제약사에게 일부 책임이 있어 관계사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인 영업마케팅 활동을 제재하려는 건 아니지만 상식을 벗어난 수준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문제가 있다. 운이 좋아 지금은 넘어가더라도 향후 문제가 될 여지가 된다"면서 "제약산업이 신성장동력산업으로 꼽히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정권에서도 그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사 CP팀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윤리경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경영자층이 가장 먼저 CP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경영활동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CP팀은 경영자층 의지가 반영된 준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임직원들이 지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 및 교육을 진행하고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명확한 조치를 취한 후 이를 반영해 CP운용체계를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한다"며 "CP는 원활한 경영활동을 규제하려는 수단이 아니라 제약사들이 성장해 가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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