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발생 드물고, 인종적 차이 고려 없어…'근거 부족해'

▲ 최근 ARB 계열 항고혈압 약물인 올메살탄에 '만성 흡수불량증 유사 장질환' 발생 이슈가 불거졌지만, 국내 학계는 "근거가 부족하고 가능성이 낮다"는 답변을 내놨다.

최근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 블록버스터 고혈압약인 올메살탄 메독소밀(olmesartan medoxomil, 이하 올메살탄)이 강풍을 만났다. 전 세계적으로 10년 넘게 처방돼 온 상황에서 올메살탄을 사용한 환자에서 만성흡수불량증(스프루, sprue) 유사 장질환 발생 이슈가 불어닥친 것이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프랑스 보건당국의 발표였다. 프랑스 당국은 오는 7월 3일부터 올메살탄의 급여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국내 식약처가 안전성 서한을 배포해 의약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전성 이슈가 갑자기 터져나온 것은 아니다. 소규모 증례보고 형식으로 장질환 위험이 보고되면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3년 7월 장질환 발생에 따른 이상반응을 주의사항에 기재토록 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2014년 3월부터 제품 설명서에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중증 장질환 이상사례'를 표기하고 처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

관건은 올메살탄이 속한 ARB 계열효과(class effect)에 대한 근거가 밝혀진 게 없다는 것이다. 라벨 변경을 포함해 이슈의 실마리가 된 주요 연구들을 짚어봤다.

1. 프랑스발 대규모 코호트 연구결과, 어땟길래?

2. 발생 드물고, 인종적 차이 고려 없어…'근거 부족해'

 

선공개 연구들 대부분 증례보고로 근거 부족

그렇다면 FDA의 부작용 보고체계 이외 연구들에선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들은 소규모 증례보고이거나 체계적 문헌고찰을 실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탈리아 가톨릭의대(로마 게멜리병원) 소화기내과 Ianiro G 교수팀의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는 FDA 라벨 변경 권고 후 Aliment Pharmacol Ther 2014년 5월 7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doi: 10.1111/apt.12780). 하지만 분석에 포함된 논문이나 증례보고(3건)가 적다는 데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결과에 따르면, 전체 54명의 증례 가운데 11명에서는 스프루 유사 장질환 증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체중감소를 동반한 만성설사를 호소했고, 정상혈구성(normocytic) 정상혈색소성(normochromic) 빈혈과 저알부민혈증이 흔하게 보고됐다. 또 98%의 환자에서 소장 융모 위축이 관찰됐고, 셀리악병 진단 항체검사에선 음성을 나타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장질환 이상반응이 올메살탄 투약을 중단하자 관련 증상과 징후가 모두 해소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지만, 연구 결과 올메살탄과 관련된 스프루 유사 장질환의 임상적 실체가 확인된 만큼, 향후 셀리악병의 혈청검사 등 감별진단이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메살탄 유발 장질환 실체 확인 어렵다"

약물 유발 설사에 초점을 맞춘 분석연구 결과에서도 올메살탄 관련 장질환이 거론됐다. 미국 메이오클리닉 면역내과 Marietta EV 박사팀의 '올메살탄이 유발하는 장질환에 대한 증례'가 Dig Dis 2015년 4월 22일자 온라인판에 실린 것이다(doi: 10.1159/000370205).

연구팀은 "이미 많은 약물이 장 운동성을 늘리고, 염증이나 장질환이 설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올메살탄과 마이코페놀산(제품명 셀셉트)은 일부 환자에서 염증반응과 장질환 발생을 늘려 만성 설사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고 배경을 밝혔다.

눈에 띄는 부분은 50세 이상의 백인, 비만 혹은 과체중인 이들에서 증세가 호발했다는 점이다. 또 올메살탄 투약기간이 1~2년인 경우, ARB 계열 약제인 이르베살탄(irbesartan)과 발살탄(valsartan)도 언급 됐다.

연구팀은 "올메살탄 관련 장질환의 조직학적인 특징은 소장 융모가 짧아지고 림프구가 침윤되는 등 유전병인 셀리악병과 유사했다"며 "이식환자에 처방되는 마이코페놀레이트 모페틸(MMF)에서도 이러한 약물 유발 장질환이 보고됐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이러한 장질환의 실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다(Arch Pathol Lab Med. doi: 10.5858/arpa.2015-0204-RA). 미국 미시간의대 병리학과 Choi EY 교수팀은 해당 장질환의 임상 및 조직학적 특징을 검토한 결과에서 "최근 ARB 계열인 올메살탄이 중증 장질환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나오지만,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고 일단 발생이 흔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셀리악병이나 기타 자가면역 장질환 등과 임상 및 조직학적 특징이 유사하다는 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HLA-DQ2/DQ8 마커 발견?

같이 언급되는 셀리악병과 비교해 임상적인 마커를 찾아본 연구 결과도 같은 달 22일자 Dig Liver Dis에 게재됐다(doi: 10.1016/j.dld.2015.09.014).

연구를 진행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대 소화기내과 Esteve M 교수팀(무투아드테라사대학병원)은 "이번 결과에서 올메살탄으로 인한 중증 장질환의 발생은 드물었으며, 보고된 환자에서도 자가면역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유전적 셀리악병을 경험하고, 셀리악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마커가 출현한 환자에선 하나의 소인(predisposing factors)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진행된 해당 연구에는 특징이 있다.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의 임상적인 특징과 잠재적인 자가면역질환 마커를 찾는 데 주력한 것.

스페인 보건자료에 등록된 올메살탄을 투약받은 후 장질환이 의심되는 20명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들 중 19명(95%)은 융모 위축을 경험했고 16명(80%)은 중증 장질환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환자들의 64%에서 HLA-DQ2/DQ8 마커가 양성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또 셀리악병의 가능성을 알리는 마커도 8명의 환자 중 4명에서 나타났다. 언급된 마커는 △ 항TG2 양성 △ CD3+감마델타+ 상피세포내 림프구의 증가와 침윤, CD3-은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ARB 계열효과 근거 부족, TGF-β억제해 면역반응 영향 추측

마지막 문제는 ARB 계열효과와 스프루 유사 장질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FDA의 약물안전성감시체계에 보고된 결과에선 "최소 2년 이상 노출된 경우 올메살탄 사용군에서 기타 다른 ARB 사용군보다 셀리악병 진단율이 높았지만, 매우 드물게 장질환이 발생했고 셀리악병으로 진단한 타당성도 확실치 않다"면서 "무엇보다 계열효과에 대한 근거가 없는데, 올메살탄 관련 스프루 유사 장질환이 오랜 잠복기를 가지기 때문에 발생기전이 불분명하다"고 답을 내놨다.

그동안 공개된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ARB 계열효과와 관련해 "TGF-β의 억제는 위장관 항상성의 중요 요소로, 해당 장질환의 발생기전에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며 "ARB가 TGF-β를 억제해 장관계 면역반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추가적으로 다른 ARB 계열 약제와 해당 질환의 연관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한고혈압학회 입장 표명, "국내 사례 없어, 인종적 차이 고려 가능성 낮아"

한편 지난 19일 고혈압학회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학회는 식약처의 의견 요청에 대해 "국내에서 올메살탄과 관련한 중증 장질환 사례는 아직 없었다"며 "이번 이슈는 인종적 차이로 한국인 환자에서 올메살탄 함유제제의 안전성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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