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C형간염 유전자형 1b형 건강보험 적용 제외…학계 "닥순 강요하는 건가"

▲ 5월 급여적용이 확정된 차세대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하보니.

길리어드의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소포스부비르)와 하보니(소포스부비르/레디파스비르 고정용량복합제)가 국내 도입 7개월 만에 보험급여를 받게 됐다. 다나의원 사태에 힘입어 신속하게 급여화가 이뤄지긴 했는데, 그 실효성을 두고는 벌써부터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두 약제의 국내 도입 날짜는 각각 작년 9월과 10월로, 급여화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200여일 정도다.

소발디와 하보니의 급여화 논의는 지난해 11월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 이후 급속도로 이뤄졌다. 다나의원 사태 피해자의 치료비용이 4000~5000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소발디와 하보니의 보험등재가 시급하다며 급여적정성평가, 약가협상 등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위한 절차를 신속하게 밟아나갔고, 최종적으로 내달 1일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다나의원 피해자를 비롯한 C형간염 환자들의 약제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혜택을 보는 환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같은 이유로 급여화가 결정된 소발디와 하보니의 '약발'이 생각만큼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발디·하보니, 1b형 급여 제외

복지부는 21일 약제 급여목록 및 급여 상한 금액표를 개정 고시하고, 소발디와 하보니에 대한 보험급여 기준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하보니는 유전자형 1b형을 제외한 1형 만성 C형간염 환자 중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 또는 페그인터페론/리바비린, HCV 프로테아제 저해제+페그인터페론/리바비린 요법에 실패한 환자가 건보적용 대상이다.

소발디는 유전자형 1b형을 제외한 만성 C형간염 환자가 대상이 된다. 다만, 이전 치료에 실패한 환자는 건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유전자형 2형 만성 C형간염 환자 중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 HCV 프로테아제 저해제 치료경험이 없고, 이전 페그인터페론 알파 치료에 실패한 환자, 간이식 대기 중인 환자가 급여로 소발디를 처방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보험적용은 오는 5월 1일부터 시작된다.

종합하자면 두 약제 공히 유전자형 1b형 환자는 급여대상에서 제외했다. 약제 처방은 가능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니 그 비용은 지금과 같이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발디와 하보니 급여범위에서 1b형이 제외된 이유는 무엇일까?

복지부는 1b형에서 소발디와 하보니의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값)값이 높게 나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보니와 소발디가 기존 급여적용 대상인 닥순요법(다클라타스비르+아수나프레비르 병용요법)에 비해 비용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박지혜 사무관은 20일 전문기자협의회와의 대화에서 "치료효과, 복약편의성, 부작용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을 때 하보니와 소발디가 유전자형 1b형에서는 닥순요법에 비해 비용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면서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유전자형 1b형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급여범위, 환자 치료기회 박탈"

복지부는 이번 급여화 작업이 C형간염 완치율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자평했지만, 일선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급여기준이 제한적으로 설정되면서, 구멍이 생긴 탓이다.

첫째 닥순요법의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내성관련변이(RAV) 검사 양성 반응(Y93 또는 L31) 환자는 여전히 치료대안이 없다.

학계 한 관계자는 "유전자형 1b형에서도 하보니 또는 소발디 처방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며 "닥순요법에 내성이 있는 15%의 환자는 결국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월 APASL 2016에서 공개된 일본 야마가타의대 소화기내과 Hiroaki Haga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총 629명의 C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닥순요법을 투약하기에 앞서 RAV 검사를 실시한 결과, 22.9%(144명)가 양성 환자로 나타났다. 특히 문제가 되는 Y93, L31 단독 내성 환자는 각각 15.7%(99명), 1.4%(9명)로 조사됐다.

이 관계자는 "복지부의 급여범위에서 1b형이 통째로 제외되면서 닥순요법 처방을 위한 RAV검사에서 양성을 보인 환자도 하보니를 급여로 받을 수 없게 됐다"며 "RAV 양성 환자는 결국 기존 닥순요법도, 새 치료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답이 없기는 비대상성 간경병증 환자도 마찬가지다.

의료계 관계자는 "간학회에서는 안전성을 이유로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 닥순요법 처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한간학회가 2015년 발표한 C형간염 진료가이드라인에는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게 DAA(직접작용항바이러스제) 중 아수나프레비르를 처방하는 것은 유의한 혈중 농도 변화가 발생하기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의 치료 옵션으로는 하보니를 1차 치료제로 권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게 하보니가 치료옵션이 되고 있지만, 이번 급여기준에서는 이마저도 막아놓은 상태"라며 "특히 합병증을 동반한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는 치료가 시급히 필요한 이들이지만 급여범위를 제한함으로써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닥순요법 쓰라고 강요하는 건가"

▲ 위부터 다클린자정과 순베프라캡슐

일각에서는 이번 급여범위 설정이 'BMS와 닥순요법 밀어주기''닥순요법 강요하는 결정문'으로 보인다는 강도높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학계 한 관계자는 "급여기준을 보면, 하보니와 소발디를 유전자형 1b형에서 처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닥순요법을 처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닥순요법 내성환자는 DAA를 아예 처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유전자형 1b형 환자들은 새로운 DAA의 보험적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실은 닥순요법 처방을 강요하는 급여기준이 됐다"고 질타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소발디의 급여범위에 해당하는 유전자형 2형은 기존 치료법인 페그인터페론 알파 요법도 치료 효과가 좋고 다클린자와 소발디 병용요법 시 치료기간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유전자형 1b형 환자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급여범위는 소발디와 하보니에 대한 것인데 마치 닥순요법을 강요하는 결정문으로 보일 정도"라고 비판했다.

소발디와 하보니를 처방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는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국내 C형 간염 환자의 절반이상이 이번에 급여대상에서 빠진 1b형에 해당하는 까닭이다.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국내 C형간염 유병률은 1b형이 45%~59%, 2a형이 26%~51%로 두 유전자형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외에 1a, 2b형 등이 보고되고 있다.

학계 관계자는 "다나의원 사태로 유전자형 1a형 환자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사실 국내에서 1a형 환자는 전체 C형간염 환자의 1.5%에도 못 미치는 극소수"라며 "정부의 이 같은 급여기준은 국내에서 소발디와 하보니를 처방하지 말고 닥순요법을 처방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급여기준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은 복지부도 동의하고 있다. 다만 급여범위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급여기준대로라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것은 파악하고 있다"면서 "길리어드와 관련 단체에 근거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추후 논의를 통해 타당성이 있으면 급여 범위 확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길리어드 실속없는 선택? 숨은 이유는

또 다른 관심 포인트는 약가다. 복지부에 따르면 하보니의 급여 상한금액은 시판가의 65% 수준인 정당 35만 7142원, 소발디는 시판가의 60% 수준인 27만 656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A7 국가 중 최저수준이다.

제한적인 급여범위, 해외보다 저렴한 약가에도 불구하고 길리어드가 급여권 안착을 택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아시아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약평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정부는 길리어드에 소발디와 하보니의 약가를 공단부담금과 환자본인부담금을 합해 12주 기준 1500만원 수준으로 낮출 경우, 1b형까지 급여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길리어드가 이를 고사했고, 결국 비용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급여기준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축소됐다는 설명이다.

최종 결정된 하보니의 약가는 공단부담금과 환자부담금을 합산해 12주 기준 3000만원, 소발디는 2270만원 수준이다.

약평위 관계자는 “약평위에서 정부가 요구한 1500만원 선을 맞추지 못할 경우 보험급여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국 비용에 맞춰 급여기준을 축소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고 전했다.

이어 "두 약제의 값을 정부가 원하는 만큼 낮추게 되면 우리나라의 약가와 급여범위를 적극적으로 참고하는 중국과 대만 진출 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1b형에 대한 급여범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약가를 조금 밑지더라도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급여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본지는 이에 대한 길리어드의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연결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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