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본인 동의 없는 입원' 정신보건법 위헌심판 공개변론

최근 개봉한 영화 ‘날 보러 와요’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신병원으로의 강제입원 뿐만 아니라 약물투여 및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환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건 과연 타당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14일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 위헌제청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쟁점이 된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은 ‘정신병원 병원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으며 입원 등을 할 때 당해 보호의무자로부터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입원등의 동의서 및 보호의무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헌재 공개변혼은 정신질환자의 신체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정신질환자의 적시치료와 인권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먼저 위헌제청 신청인 측 변호인인 권오용 변호사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 조항은 보호의무자가 환자 본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정신질환자는 입원여부 결정에 관한 의사결정이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며 “보호의무자와 환자 본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심판대상 조항은 불법 감금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형사범죄자에게도 구속적부심 등 각종 구제절차가 보장되고 있음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절차조차 없는 것이 문제”라며 “부당한 보호입원에 대한 사후적 구제수단 및 안전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염형국 변호사도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 자신이 어떤 치료를 받을지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본인이 원치 않는 전기치료, 결박 등 비인권적 치료를 강제하고 있는 것은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해관계자인 보건복지부 측 서규영 변호사는 “이 조항은 보호의무자의 후견적 동의 하에 정신의료기관 등에 입원, 치료해 건강한 가정 및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도록 하려는 입법목적이 있다”며 “보호입원이 오남용이 있는 경우에는 형법상 감금죄에 해당돼 형사처벌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정신질환자의 적시치료와 환자 자신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 등 정신질환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조항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언제든지 환자나 보호자가 퇴원 신청할 수 있고, 의사가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는 이상 퇴원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양 측의 입장을 들은 재판관들은 정신보건법 상 강제입원에 대한 의문점과 우려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재판관이 보호자 입장에서 절실한 경우가 있어 보호입원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청구인 측 대리인은 “자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응급입원 등 조치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며 “정신질환자의 의사능력 여부 등을 고려하는 한편, 제3의 심사기관에서 판단하는 방책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판관이 현재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처가 지나치게 수용위주로 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복지부 측 대리인이 “20여년간 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재검토할 시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이어진 참고인 진술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안석모 사무총장과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강지언 수석부회장이 참석해 발언했다.

먼저 안 사무총장은 “정신장애인을 그 의사와 반해 비자발적 강제입원 시키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및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자신과 타인을 해할 우려가 있고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치료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부당하게 입원되는 사례가 없어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24조에 의한 입원절차에서 장애인 본인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청문절차,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이 주어지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며 “신체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인권이 침해됨에도 과잉금지원칙의 중요 내용인 침해최소성의 원칙에 대한 고려가 없고, 입원기준과 조건도 명확하지 않아 명확성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 “비자의 입원진단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청문제도 등을 포함한 적법절차조항이 강제입원절차에도 적용이 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강제입원시 사법부나 독립된 제3의 기관에서 이러한 방안들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심사를 거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부회장은 “보호입원되는 상당수의 환자는 중증정신질환자로 스스로 병을 인지하기 어려워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보호자가 설득해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이들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할 경우 정신질환이 악화될 수 있고, 국가기관도 환자에게 가족이 있는 한 개입하려 하지 않아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법 조항은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정신질환자를, 전문의·보호자의 판단에 따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규정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며 “환자의 신체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재는 이번 공개변론 내용을 참고해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의 위헌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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