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지원 감소는 복지부 한계 넘어서는 문제... 과제평가하는 방식은 패착

 

정부가 2013년 글로벌수준의 연구중심병원 육성을 목표로 야심 차게 시작했던 연구중심병원이 실행과정에서 비전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중심병원은 병원별 중심연구분야 R&D 지원, HT혁신 병목용인 해소를 위한 공공인프라 구축, 연구협력네트워크 구축이 애초 추진전략이었다. 또 R&D 플랫폼을 통해 기초연구와 중개임상, 의료현장, 의료기술개발 등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한다는 비전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진행되는 경과를 보면 처음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다.

대폭 감소된 연구비

우선 보건복지부가 연구중심병원에 처음에 약속했던 연구비가 대폭 감소해 병원과 연구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지정된 연구중심병원은 길병원, 경북대병원, 고대구로병원, 고대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분당차병원 등 10곳.

시작 당시 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 사업 예산을 총 2조 3966억원으로 제안했고, 정부가 9763억원을, 의료기관이 1조4170억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와 병원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었기에 출발 당시 대부분의 병원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2016년 3월 말 현재 복지부로부터 R&D 지원 예산을 받은 곳은 10곳 중 6개 병원뿐이다. 연구중심병원 예산은 2014년 100억원, 2015년 170억원, 2016년 262억 5000만원 수준에 그쳤고, 병원에 지원된 실제액은 425억원 수준이다.

고대구로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3년 동안 한 푼의 연구비도 지원받지 못했다.
고대구로병원 한 관계자는 "병원이 정부 지원을 떠나 궁극적으로 연구중심병원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받은 병원들 모두 지원이 절박하다. 제대로 지원이 안 되는 상황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구 지원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고 차레대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암병원이 받았고, 구로병원이 조금 늦게 됐다"며 "앞으로 고대구로병원도 받게될 것으로 본다"고 희망했다.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가 처음에 약속한 금액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단순하게 혹평하는 것은 내부 사정을 모르는 비판이라고 지적한다.

2개 유닛을 신청해 50억원을 지원받은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만족도도 높은 것은 아니었다.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반응이었다. 세브란스병원 한 관계자는 "우리 병원 일년 전체 연구비가 약 1000억을 넘는다. 그런 상황에서50억원 지원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연구비 59억원으로 병원의 연구중심이 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연구비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자 그동안 잠재된 불만들도 하나둘 터져 나왔다.
모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이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받기 위해 인력, 시설, 제도,시스템 등을 바꿨다. 변혁에 가까울 정도로 변화를 주고 비용을 들였다"며 "그런데도 정부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연구지원금까지 줄어들면서 허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잘못인듯 잘못 아닌듯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연구중심병원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세브란스병원 송시영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 소화기내과). 송 처장은 연구비 지원 문제는 복지부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연구중심병원 지원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복지부에 묻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며 "연구중심병원 지원은 복지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재정부 등 다양한 부서와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라 복지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복지부 한 관계자는 "매년 예산반영을 요구했지만 잘 안 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서울아산과 고대 구로병원의 경우 3년간 예산을 전혀 지원하지 못한 꼴이 됐다"며 "우리도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복지부가 다른 영역에서까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사업추진과정에서 각 연구중심병원에 과제중심으로 일을 운영해 원래 청사진을 망가뜨렸다는 지적이다.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국내 대학병원은 긍정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겪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학병원들이 연구중심병원 요건에 맞도록 시설, 인력,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함으로써 기존과는 전혀 다른 체질을 갖게 됐다는 것.

그는 "병원들의 눈높이가 기존과는 달라졌고,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는 등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며 "병원 연구자의 Unmet medical needs에 입각한 창의적인 연구 추진을 통해 보건의료문제 극복 기술 개발한다는 원래 목적대로 갔다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과제평가 방식은 패착

복지부 패착으로 그는 각 연구중심병원이 융합되는 큰 그림을 버리고, 각 연구중심병원에 과제평가를 하는 형식으로 운영한 점을 꼽는다. 병원의 축적된 진료경험을 과학적으로 활용해 극대화할 수 있는 역방향연구(Bedside to Bench)와 순방향연구(Bench to Bedside)가 균형을 이루고, 병원 인프라를 개방형 HT R&D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메디클러스터의 허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그는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매우 개인적이다. 다른 분야와 융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연구중심병원에서 연구, 기술, 파이낸스 등을 연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복지부가 과제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뺏는 것은 물론 다른 병원과 융합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또 "과제형식을 고집하지 말고 연구중심병원들이 자체평가를 통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세게 시장을 봐야 한다. 그러려면 병원 혼자 공략하기는 힘들다. 연구중심병원 플랫폼에서 함께 연구하고, 자금을 지원할 기업을 참여하게 해 대박 아이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중심병원들이 하나로 뭉쳐 글로벌 헬스시장을 내다보며 R&D를 하고, 산업과 연계하는 등의 연구를 하면 할 것이 너무 많다"며 "헬스케어산업 전반을 꿰뚫어보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연구중심병원이 지금은 주춤하지만 전망은 어둡지 않다고 내다본다. R&D 투자 부족과 대학병원 교수가 진료에 집중하는 문제, 투자를 유인할 제도가 없는 점, 중개연구 취약 등 헬스케어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맹렬히 진행되고 있어 연구중심병원은 여전히 희망적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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