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아청법 개선 필요…엄하되 합리적으로”

 

지난달 31일 의료계를 옥죄는 대표적 악법으로 손꼽혀 온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졌다.

성범죄 의료인의 취업제한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10년'이라는 취업제한 기한을 죄의 경중도 따지지 않고 일괄 적용하는 것은 의사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헌재 입장이다.

“10년 취업제한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반”

아청법 위헌소송의 핵심은 △'성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부분 △10년간 취업제한에 대한 부분 △법 시행 이전의 성범죄에 대한 소급적용 부분이다.

먼저 헌재는 성인대상 성범죄에 대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성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청소년성보호법과 긴밀한 법적 연관성이 있는 성폭력특례법의 내용들도 성인 대상 성범죄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성인 대상 성범죄 부분은 불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10년 취업제한 부분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일정기간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건 입법 목적에 타당하지만, 10년이란 기간을 일률 적용하는 건 위헌이라는 입장이다.

헌재는 “아청법 법률조항은 성범죄 전력만으로 재범을 당연하게 보고, 10년이 경과되기 전에는 위험성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재범 위험성이 없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성범죄 죄질에 따른 다른 제재의 필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준래 변호사는 "아청법 위헌 결정은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자에 대해 취업제한을 하는 건 타당하지만, 제한 기간이 10년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장기간이어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재범의 위험성을 고려해 재범의 위험성이 없거나 적은 자, 10년 안에 재범의 위험성이 해소될 수 있는 자 등에게 10년이라는 기간은 취업제한의 정도가 지나쳐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개인의 재범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10년의 취업제한을 둔 것은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의미로, 장기간의 취업제한은 때로는 형벌보다도 더욱 가혹하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며 "헌재의 결정으로 의료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헌재는 취업제한이 아청법 조항 시행 후 형이 확정된 자로부터 적용하도록 하는 부칙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헌재는 "부칙조항은 성범죄를 범한 모든 사람에게 취업제한을 소급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 시행 이후 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자로 대상자를 한정하고 있다"며 "취업제한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취업제한의 대상자가 되는지 여부는 취업제한의 제약을 받는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10년은 가혹…범죄 경중 따져 처벌해야”

헌재는 위헌 결정을 내린 취업제한기간 ‘10년’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발안까지 제시했다. 성범죄 전과자의 취업제한에 있어서 재범 위험성의 존부와 정도에 관한 구체적인 심사 절차가 필요하며 10년이라는 현행 취업제한기간을 기간의 상한으로 두고 법관이 취업제한기간을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제안이다.

 

이는 아청법이라는 현행 제도를 합리적으로 교정한다면 얼마든지 합헌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로,이번 헌재 위헌결정은 아청법의 존속 자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전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도 "이번 헌재 위헌판결은 성범죄 경중을 따지지 않고 10년이라는 기간을 일괄처벌 하는 건 문제라는 데 있다"며 "앞으로 의료계는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세분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헌재의 해결방안과 가장 부합한 내용은 지난 2013년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내놓은 아청법 개정안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 박 의원은 아동·청소년 대상과 성인 대상의 성범죄를 구분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람에만 '10년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토록 하는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박 의원의 개정안은 아청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 이후에 논의하자며 미뤄져 있는 상황이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박 의원의 아청법 개정안이 합리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며 "박 의원의 개정안과 헌재의 위헌결정을 바탕으로 아청법 내의 불합리한 조항, 의료법과 상충되는 부분에 있어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진료 특수성 고려해 의료법에서 규제해야”

여기에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을 처벌하는 법안을 아청법이 아닌, 의료법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청법 위헌결정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기회에 아청법에서 분리해 의료법 개정안으로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강 부회장은 "의사 면허나 자격제한 기준에 대해서는 의료법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굳이 의료법으로 통제 가능한 자격권한을 아청법에서 다루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며 "의료법으로 규제하면 진료의 특수성 등을 이해하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가 될 것인데, 의료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편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란?

의료계에서 문제 삼는 아청법은 지난 2011년 당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영화 '도가니'로 아동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자 개정된 배경을 갖고 있다.

당시 개정된 아청법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의 취업제한 등을 규정한 제56조로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는 그 형 또는 치료감호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집행의 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 동안 가정을 방문해 아동·청소년에게 직접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으며 의료기관 등 시설·기관 또는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아동·청소년 성범죄만 규정됐는데 성인대상 성범죄까지 대상이 확대됐고, 성범죄자들의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에 의료기관도 포함됐다.

이렇게 개정된 아청법은 지난 2012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됐는데 리베이트 쌍벌제와 더불어 의협을 비롯한 많은 의료단체에서 성명서를 제기할 때 한번쯤은 언급하는, 의료계를 옭죄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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