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합의 인지해야…보호자와 합의시 대리권 증빙서류 필요

의료사고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병원-환자간 소송이 예년에 피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법정까지 소송을 끌고 가지 않고 당사자간 합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는데, 과연 병원과 환자간 합의가 진행될 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의료사고를 내고 환자 보호자와 서둘러 합의를 진행한 병원에 대해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병원 측에게 5억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병원은 의료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환자 A씨에 대한 치료비 중간정산을 독촉하며, 환자 보호자에게 C씨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6100만원을 지급할 테니, 모든 민사·형사·행정상 권리를 포기하고, 민원제기, 언론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호소, 면담강요, 집회·시위 등의 행위를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세 차례에 걸친 수술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환자 보호자는 보관하고 있던 A씨의 인감과 신분증으로 병원 측과 합의했고, 병원 측은 합의금에서 진료비 2582만 8930원을 공제한 나머지 3517만 1070원을 지급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A씨는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의 보호자는 퇴원 직전까지 합의사실을 말하지 않아 A씨는 합의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며 “합의 당시 A씨에게 장애가 있거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장애인이 된 것에 때문에 병원에 쳐들어가겠다고 하는 등 병원 측에 적개심을 표출했기 때문에 합의내용을 알았다면 A씨는 합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호자는 위임장 등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오지 않았고, B병원은 합의에 관해 A씨에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점을 비춰보면 보호자가 합의와 관련해 A씨를 대리할 권한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환자 보호자와 합의를 진행했다가 낭패를 본 사건이 또 있다. 예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사건의 경우, 병원이 환자의 남편과 합의를 진행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환자 B씨는 의사 C씨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필러를 양쪽 코 옆 골주름 부위에 주입해 팔자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받았다. 시술을 받은 이후, 코 오른쪽 상처부위가 변색되는 등 부작용이 생기자 C씨는 필러를 제거했지만 결국 A씨는 타 병원에서 코 재건수술까지 받아야만 했다.

B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C씨는 B씨의 남편이 ‘시술로 입은 피해와 관련해 보상 및 합의금으로 517만원을 수령하고 앞으로 어떤 법적 조치 및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을 아내와 합의했다’는 확인서를 보냈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C씨에게 확인서를 교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B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거나 합의서 작성을 위임했다는 증거가 없고, 확인서 내용이 B씨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다”며 “C씨는 B씨의 남편이 정당한 대리권을 가지고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합의의 효력이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남편이 대리권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선고했다.

 

이번 사건처럼 병원과 환자간 합의를 하려면 환자 본인과 해야한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환자 보호자가 대리할 경우에는 2가지 조건이 전제되는데 하나는 혼수상태나 정신적 질환 등 환자가 합의를 진행하기 위한 정상적인 사고가 어렵다는 객관적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합의를 보호자가 대리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빙하는 서류 등을 구비해야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 환자 본인과 합의를 한 경우에 있어서는 법원은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합의 이후에 환자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는 기각판결을 내리고 있다.

일례로 눈미백술시술을 받고 부작용이 생긴 환자가 의사와 합의를 한 이후,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부제소 합의에 위반해 제기된 것이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므로 각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심까지 진행됐지만 기각됐다.

또 환자가 의사와 합의를 한 이후, 소송을 제기했다가 1, 2심 모두 패소한 사건이 있다. 환자 D씨가 치아 치료를 받다가 잇몸이 손상됐는데, 의사 E씨는 진료비를 모두 환불할 테니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제안했다.

이에 D씨는 환불 대신 환불액수 상당액의 진료를 받겠다고 수정 제안을 했고 E씨는 이를 받아들여 1년 1개월 동안 계속 무상치료를 했다.

문제는 이후였는데, D씨가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신청을 한 것. 소비자원은 E씨에게 700만원을 지급하고 합의할 것을 권고했지만 E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D씨는 E씨를 업무상과실치상협의로 고소를 했고, 검찰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혐의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D씨는 손해배상청구까지 진행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700만원 상당의 진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이 사건 기간 동안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이 성립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환자의 의사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약정채권으로 전환됐고, 의사는 약정을 이행했기 때문에 환자의 약정에 기한 채권은 소멸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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