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별도산정불가 치료재료 수가보전 주장에 정부 "별도보상 검토 중"…상반기 중 논의 결과 발표

 

C형 간염 집단감염 사태가 잇달아 터지면서 의료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사건 발생의 원인으로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이 지목되면서, 의료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가 일회용 주사기, 주삿바늘 등과 같은 별도산정불가 치료재료에 대한 적정 수준의 수가가 보전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주목을 끌고 있다. 주사기, 주삿바늘 등 침습적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치료재료는 감염예방을 위해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행 수가체계는 치료재료에 대한 값조차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환자안전을 걱정한다면 의료계가 질 좋은 일회용 치료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가격적인 유인책을 마련,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이른바 '비양심'이 끼어들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치료재료비 개선 공론화 나선 의료계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문제가 잇달아 불거지자 정부와 국회는 강력한 처벌규정을 마련하고 나섰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다나의원, 한양정형외과의원 사태를 계기로 일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대표발의)을 통과시킨 바 있다.

복지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행정벌로 5년 이하의 징역 및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다나의원 사태 후속대책 마련을 위해 면허제도개선협의체를 운영하며 '동료평가제'를 포함한 의료인 면허 개선방안을 내놨다. 동료평가로 미흡한 사항이 발견되면 보수교육 이수 등을 통한 술기 향상을 유도하고, 신체적·정신적 문제 등 진료 적합성 여부를 진료행위 적절성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회용 주사기와 같은 치료재료 중 상당수가 행위료 안에 묶여 있어, 그 비용을 제대로 보전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처벌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추무진 회장은 지난 2월 "중요한 것은 현재 행위에 대한 치료재료의 수가 보전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일회용 치료재료 비용이 수가에 전액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수가를 개선하거나 의료행위 수가와 별도로 일회용 치료재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치료재료 사용할수록 손해
실제로 의협에 따르면 의료행위에 치료재료대가 포함돼 행위료로 치료재료 값을 보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상당수다.

일례로 침생검(심부-장기-편측)의 수가는 6만 1810원으로 책정돼 있으며 이 중 바늘(Needle, Boipsy, Kidney)에 할당된 수가는 9210원이지만, 실제 일회용 바늘은 약 3만 13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침생검 행위를 할 때마다 약 2만 2140원의 치료재료대 손실을 보는 셈이다.

절개술(안면과경부이외, 1~2cm 미만)도 책정된 수가 1만 2020원 가운데 치료재료인 VICRYL 3/0 SINGLE NEEDLE은 1634원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해당 치료재료의 실제 가격은 3725원으로 한 번 시행할 때마다 2091원가량 손해가 난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주사비용도 문제다. 실제로 100ml 이하의 정맥내 점적주사비용은 950원, 근육주사 비용은 1130원에 불과하다. 1000원 안팎의 주사비용 안에 주사기를 비롯해 주삿바늘·수액세트·소독액·소독솜·간호사인건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환자안전 지키려면 적정수가 보상돼야”
의료계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환자 안전'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는 이들 치료재료에 대한 별도보상을 통해 모든 의료기관에서 질 좋은 일회용 치료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치료재료대 중 실이나 거즈는 실제 사용량만큼 청구가 가능하지만, 주사기와 주삿바늘은 산정기준 자체가 없다"며 "정부에서는 행위료에 주사기와 주삿바늘의 값이 이미 포함돼 있다고는 하나 과거 소독수가 기준에서 더 나아간 게 없어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처럼 의사의 '손해'와 무조건적인 서비스만을 요구하는 구조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며 "일회용 치료재료는 일회용으로 사용하도록, 환자에게 보다 질이 좋은 일회용 치료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가격적인 유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환자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에 밀려, 치료재료 비용의 별도보상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조직검사에 필요한 내시경 '포셉' 비용이 그 것.

지난 2014년 일부 의료기관에서 일회용 포셉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고, 일회용 치료재료의 재사용이 단순히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일회용 치료재료대를 별도로 보상해주지 않는 현행 수가체계에 의한 것이라는 문제인식이 공론화됐다.

이후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수가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정부는 생검용 포셉을 상한금액 2만 2000원의 정액수가 품목, 즉 별도 보상품목으로 개정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일회용 치료재료를 사용하면 비용적으로 손해를 보기에 일부 의료기관에서 이를 재활용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손해를 보면서도 일회용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인의 양심을 요구하기 이전에 비양심이 끼어들 틈을 줄여야 한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지 않은 채 처벌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복지부도 문제의 발생 원인을 알고 있지만 돈을 쓰고 싶지 않으니 눈 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일회용 주사기 수가보상 고민 중

정부는 치료재료 별도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논의 중이며, 올해 상반기까지 논의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일부 치료재료는 행위료에 수가가 충분히 녹아있는 것도 있는 반면 감염에 대한 우려를 고려하지 못해 수가가 터무니없는 치료재료도 있다"면서 "현재 치료재료 별도산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논의 중이며, 좀 더 논의해 상반기 중에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치료재료 별도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중심에 '감염예방'과 '환자안전'을 둔다는 계획이다. 행위 상대가치점수에 포함해 보상한다는 기본원칙은 유지하면서 감염의 예방이나 환자안전에 필요한 경우에는, 별도 보상이 필요한 예외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식약처 허가 의료기기여야 하며 △적정보상이 반드시 필요하고 △행위 수가에 포함된 대체 치료재료와 비교할 때 환자 안전이 향상되거나 비용절감 효과가 확인되는 원칙을 모두 충족한 경우를 중심으로 별도산정이 필요한 치료재료를 검토 중이다.

아울러 감염관리 효과가 우수한 치료재료 보상 강화를 위한 '감염예방 치료재료 수가 별도보상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체액 또는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으로부터 의료진 환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치료재료 △감염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돼 사용이 권장되는 재료 △행위료에 포함된 가격에 비해 월등히 높아 현실적으로 사용이 곤란한 재료 등을 우선순위로 두고 검토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및 치료재료 보상방안의 핵심은 감염예방이나 환자 안전관리를 장려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회용 주사기나 주삿바늘 등은 기존 원칙대로 행위료에 포함해 보상할지, 별도산정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향이 서지 않은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일회용 주사기나 주삿바늘은 같은 비용을 지급하더라도 별도산정 치료재료로 관리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수가인상을 통해 행위료에 녹이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아직 방향성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에서 의료계와 의료기기 및 치료재료 업계의 건의사항을 통해 수집한 별도보상 치료재료 후보군 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이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먼저 진행하고, 나머지는 종합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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