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병협 정책연구소, 인력·예산 부족으로 제 역할하기 어려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에는 각 협회의 정책 근거를 마련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연구소가 있다. 그런데 이들 연구소가 구조적인 문제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협회가 연구소에 원하는 역할은 '싱크탱크'지만 재정이나 인력 등 지원이 턱없이 적어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의협은 의료정책연구소를, 병협은 의료경영연구소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 주도의 의료정책 환경에서 의료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능동적인 대안 제시를 위해 지난 1991년 설립됐다.

연구소는 또 이론적 연구와 실증적 분석 등을 토대로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지난 1999년에 만들어진 병협의 병원 경영연구소의 목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의료정책연구소 20명…정부 인력 3분의 1

두 기관의 연구소는 수가협상을 할 때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개원가와 병원들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협상의 대상은 정부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두 연구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연구 인력과 지원으로 무장하고 있다. 매년 수가협상에서 근거와 논리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 인력은 연구소장과 연구조정실장 등을 포함해 20여 명이다. 병원경영연구소의 인력은 더 상황이 열악하다. 연구실장을 포함해 6명이 고작이다. 대학병원장이 원장(소장)으로 임명되지만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건보공단과 심평원 연구소 규모에 비하면 우리는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그야말로 소형연구소"라며 "연구원 1인당, 연구숫자, 연고보고서, 논문 등은 타 연구소에 비해 2배 많다. 연구원들에게 미안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또 "연구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인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예산도 부족하고 다른 어려운 점도 많아 중형 연구소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금만 규모가 커지고 지원이 확대된다면 더 괜찮은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의료경영연구소 이용균 실장도 인력 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실장은 "연구원이 4명이다 보니 혼자 해야 할 연구가 너무 많다. 상황이 열악하니까 우수한 연구원 확보도 어렵고 결국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호소했다.

예산도 부족…"정부 정책적 지원 필요"
예산문제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의료정책연구소는 2015년 31억 4700만원이 예산으로 책정됐다. 이 중 회비 수입이 25억 4400만원을 차지했다.

최 연구소장은 "매년 예산을 받아야 하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연히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정책연구소가 지속 가능하고, 국민 모두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독립적, 자율적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협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곳이 병원경영연구소다. 의료경영연구소는 병협으로부터 연구용역으로 3억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 그것도 병협이 연구용역을 발주하면 연구소가 연구를 맡아 진행해야 예산이 나오는 형식이다.

 

일부 전문가는 병협 내부에서 갑과 을 관계를 만들어 연구소 활동을 위축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병협 직원이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퀄리티 컨트롤 또한 사무국 직원이 직접 하는 것은 고려해봐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연구원들의 전문성이나 자율성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역량 있는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병원 내부의 위원회 등에서 이를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는 형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병원경영연구소가 이처럼 재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병원들이 병상당 책정된 연구비를 납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상당 연구비는 2000원이다. 중소병원 정도면 약 30만원이고 대형병원은 300만원 정도 된다.

이 실장은 "대형병원은 연구소가 제공하는 정도의 정보는 병원 자체적으로 언제든지 만들 수 있고 또 자체 정보력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며 "연구소의 존재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어 연구소의 재정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연구비를 낸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병원경영연구소는 자체적으로 대형병원이나 의료원 등에 컨설팅 업무를 하는 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인력부족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협회장 바뀔 때마다 '흔들'

연구소 자체의 안정성이 탄탄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병원경영연구소의 불안정성은 더욱 그렇다. 2년마다 병협의 집행부가 바뀌면 회장의 성향에 따라 연구소도 흔들린다. 연구소가 싱크탱크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회장이 취임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재정자립을 요구하는 회장이 등장하면 연구소의 존재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게 된다.

이 실장은 "연구소는 2년마다 늘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다. 왜 적자가 났느냐를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말해야 한다"며 "연구소 자체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정적인 뒷받침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병협에 비해 조직이 크게 바뀌지 않는 시스템이다. 최 소장은 "기본적으로 집행부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으면 일정 부분 보조를 맞춰야 하지만 연구소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구조적으로 그게 안 되도록 돼 있다"며 "회원들이 회비를 낼 때 연구소비로 따로 낸다. 그건 별도 예산으로 잡혀 집행부 예산이 아닌 연구소 예산으로 직접 들어온다. 예산에서 분리돼 있다"고 설명한다. 또 "처음 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독립성, 자율성이 훼손될까 우려해 이 같은 체계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연구소장도 회장도 회장 직속으로 발령을 낸다. 연구소의 전체적인 계획, 예산, 운영은 연구소의 인사위원회, 운영위원회, 재무위원회 세 개의 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그 위원회는 시도의사회와 대의원회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로 구성한다. 집행부에서 총무, 재무이사가 참여하지만 대다수는 시도의사회, 대의원회 소속 위원들이 하기 때문에 집행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돼 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