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장의날 기념 투석기획

지난 3월 10일은 세계 신장의 날이었다. '세계신장학회'와 '국제신장재단연맹'이 신장 질환에 대한 예방과 교육 및 홍보를 위해 3월 둘째 주 목요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5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질병에 대해 국제적 기념일이 있다는 것은 해당 질환에 대한 중요성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가 늘면서 덩달아 만성신장병(또는 만성콩팥병)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신장은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 신장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면 투석 또는 이식을 해야 한다. 이를 신대체요법(Renal Replacement Therapy)이라고 한다.

신대체요법에는 혈액투석, 복막투석, 그리고 신장이식이 있다. 이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환자들이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삶의 질을 중시하는 치료로 변화하면서 복막투석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왜 어떤 이유로 복막투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지 그 배경을 살펴봤다.

고혈압•당뇨병 증가로 만성신부전 환자 급증

고혈압과 당뇨병의 증가로 만성신부전 환자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대한신장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말기신부전 환자의 절반은 당뇨병 때문이다. 또 20% 가량은 고혈압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미세혈관이 손상되고 결국 이러한 혈관이 밀집돼 있는 신장도 손상을 받게 된다. 심해질 경우 더 이상 보존적 치료는 어려워지기 때문에 투석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이어나가야 한다.

만성콩팥병 환자에서 신장 기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사구체 여과율이 30mL/min/1.73㎡ 이하로 감소되는 경우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되고 기능이 더 떨어질 경우 투석 준비도 이뤄진다. 이후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그리고 신장이식을 통한 치료가 가능하다.

다만 투석을 시작하는 최적의 시점이 언제인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인데 지난 2012년 국제신장병 진료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KDIGO가 식욕 저하, 오심, 구토 및 가려움증과 같은 요독증의 증상, 요독성 심낭염, 심한 대사성 산증 및 고칼륨혈증, 해결되지 않는 체액량 과다,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및 인지 장애가 나타난 경우로 제시하면서 어느 정도 정립돼 있다.

2014년 대한내과학회지에 따르면, 이러한 증상은 사구체 여과율이 5~10mL/min/1.73㎡로 저하될 때 나타난다. 단 사구체여과율이 떨어져도 증상이 없는 경우 투석을 일찍 시작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는 연구도 있다.

국내 환자 10명 중 7명 혈액투석

▲ 국내 신대체요법 비율
어쨌든 투석이 결정되면 방식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환자 대부분은 혈액투석을 선택하고 있다.

2014년 대한신장학회가 발표한 '우리나라 신대체 요법의 현황'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약 8만 204명의 환자가 신대체 요법을 받고 있다. 이 중 혈액투석 5만 7256명(71%), 복막투석 7423명(9%), 신이식 1만 5995명(20%) 등이며 매년 1만여 명의 환자들이 새로 투석치료를 시작하고 있다.

혈액투석은 병원에 있는 기계 장치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기계는 투석막, 혈액전달장치, 투석액 조성 및 정수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체외로 혈액을 빼 기계를 거쳐 걸러진 혈액이 다시 주입되는 원리다. 이를 통해 혈액내 요독 물질과 체액 제거를 통해 신장 기능의 고유한 기능인 세포 내액과 외액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거의 원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료진들의 철저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매번 병원 스케줄에 맞춰 일주일에 3번 가량 방문해야 한다는 점과 이에 따른 철저한 식이요법도 요구된다. 잦은 내원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며 여행 등을 가기가 어려워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복막투석은 10명 중 1명만 받아

또 다른 방식인 복막투석은 말 그대로 체내 복막을 이용한 투석법이다. 복막은 표면적이 약 2㎡에 달하는 장막으로서 장측과 복측 복막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사이의 공간을 복강이라고 부른다.

삽입한 복막투석 도관을 통해 복강 내로 주입된 투석액은 모세혈관 네트워크를 통해 혈액과 접촉하게 되며, 복막 모세혈관 내의 저류 수막(fluid films), 내피세포층(0.5㎛), 모세혈관의 기저막(0.2~0.5㎛), 복막의 간질(interstitium, 0.1~100㎛), 중피세포층(mesothelial layer, 0.9㎛), 복강 내 수막 등의 장벽을 경유해 혈액과 투석액 사이의 물질교환이 일어나게 된다.

복막투석의 기본 원리는 반투과성 막인 복막을 경계로 농도의 차이에 의해 용질이 이동하는 확산 현상과 용매의 이동에 동반해 작은 크기의 용질이 이동하는 대류현상, 삼투압 차이에 의해 수분이 이동하는 한외여과(ultrafiltration) 현상으로 요약된다.

종류는 두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지속성 외래 복막투석(continuous ambulatory peritoneal dialysis, CAPD)은 대개 낮 동안 3회, 밤 동안 1회 투석액 교환을 수동으로 시행하는 방법이다. 일명 손투석이라고 부른다.

또 기계를 이용하는 자동복막투석(automated peritoneal dialysis, APD)도 있다. 취침 전 설정하면 수면시간 동안 기계가 3~6차례 투석액을 교환해 준다. 따라서 낮에 투석을 중단할 수 있고, 혹은 낮에도 장시간의 투석액 저류를 유지(continuous cyclic peritoneal dialysis, CCPD)하는 등의 형태로 변형해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 혈액투석 선택하는 이유는 ‘인지도’

이처럼 두 가지의 투석법이 있지만 국내에서 혈액투석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 배경은 최초의 투석이 기계투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많은 급성신부전 환자가 발생하자 미군이 신부전 센터를 설립하고 혈액투석을 포함한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국내 민간 의료기관에서 사용한 것은 1967년 대구 동산병원이 최초다. Kolff사로부터 직접 인공신장기(Kolff quad coil형) 1대를 기증받아 급성 신부전 환자에게 최초로 혈액투석을 시행했고, 1976년 이후 의료보험이 적용되면서 혈액투석의 보급률이 증가했다.

이렇게 시작된 혈액투석 환자는 각 거주 지역에서 관리받게 됐고, 이러한 패턴이 오랜 시간 이어져 혈액투석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 일반화되었다.

혈액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병의원이 늘어나면서 혈액투석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반면 복막투석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보 취득이나 접근이 어려운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이로 인하여 환자들의 복막투석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고 급기야 의사들조차도 복막투석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편하고 예후 좋아 복막투석 환자들 꾸준히 증가

하지만 최근 들어 복막투석 환자가 서서히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환자중심 치료 패턴 변화, 편의성, 환자예후 등이 있다.

편의성 측면에서 복막투석은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복강에 관을 삽입하기 위해 2~3주 전에 병원에 가야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가정 내에서 직접 관리가 가능하다. 교환수액은 처방을 받아 미리미리 보충해두었다가 투석스케줄에 맞춰 진행하면 된다.

무엇보다 스케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으며 투석장소의 제약이 적어 계획된 여행도 가능하다. 반면 혈액투석은 일주일에 3회가량 내원해야 하기 때문에 출장 등에 제약이 많다. 이러한 편의성에 생존율 개선효과도 뒤지지 않는다.

▲ 미국신장환자등록시스템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존율 결과
2013 미국신장환자등록시스템(United States Renal Data System, USRDS) 분석 결과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복막투석환자들의 생존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복막투석에서 증가율이 눈에 띈다.

복막투석의 3년 생존율은 2000년 52.8%였으나 5년 2008년에는 66.4%로 증가했다. 또 5년 생존율도 2000년 37.3%에 불과했으나, 2008년에는 50.3%로 시간이 갈수록 생존율이 개선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혈액투석은 3년 생존율의 경우 50.1%(2000년)와 54.7%(2008년)이며 5년 생존율도 34.5%(2000년)와 40.2%(2008년)로, 복막투석보다도 낮은 생존율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화된 미국 시스템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복막투석도 좋은 예후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내에도 있다. 이화여대 류동열 교수팀(이대목동병원 신장내과)이 2005년 1월부터 2008년 12월 31일까지 복막투석을 시작한 3만 2357명을 관찰한 결과 환자의 생존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좋아졌으며, 특히 복막투석 환자의 생존율 상승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확인됐다.

또 2013년 PLOS ONE에 실린 전국 규모의 말기신부전 임상연구센터(CRC for ESRD)에 등록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복막투석은 혈액투석보다 사망 위험을 51% 가량 낮춰주는 것으로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류 교수는 "국내에서 복막투석에 대한 연구가 긍정적으로 나온 배경은 경험이 많은 진료팀이 철저하게 환자를 관리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중요한 것은 복막투석도 혈액투석 못지않은 예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젊은 환자일수록 복막투석의 예후는 더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인 혜택은 신장이식 시 예후가 더 좋다는 점이다. 투석 환자들은 신장이식 기회가 왔을 때도 예후가 중요한데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혈액투석보다 복막투석이 예후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12년 미국신장학회저널인 Clin J Am Soc Nephrol에 1만 4500여 명의 투석환자들을 분석한 대규모 국가 코호트 연구 결과가 실렸는데 복막투석을 했던 환자들은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이 혈액투석보다 43% 감소했고, 심혈관 사망률도 66%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doi: 10.2215/CJN.07110711.)

이런 분위기에 맞춰 최근 대학병원에서는 복막투석 환자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젊은 환자들이 예후가 특히 좋게 나타나면서 선택하고 있으며, 이식을 앞둔 환자들도 많다는 게 의료진의 전언이다.

▲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의 장단점
“복막염 우려 있지만 발생률 낮아”

다만 복막투석도 약점은 있다. 복막투석에서 발생하는 합병증은 비감염성과 감염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감염성은 도관을 통한 배액 장애, 도관 주위로의 투석액 누출, 복압 상승으로 인한 탈장이나 흉수로의 누출 등은 비교적 흔하게 경험하는 합병증이다. 감염성 합병증은 복막염이 대표적인데 전체 복막투석 환자의 사망 원인 중 약 16%를 차지하며, 환자들이 복막투석을 중단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 밖에도 매일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상 스케줄에 투석 일정을 포함해야 하며, 가정에 투석공간 및 물품을 보관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환자들의 관심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복막투석학회를 이끌었던 경북의대 김용림 교수(신장내과)는 "보통 3~4년에 1회 정도 발생할 정도로 발생률이 낮다. 또한 발생하더라도 보통 항생제로 2~3일 정도 치료하면 증세가 완화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며 합병증이 복막투석을 꺼리는 요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관리수가 급여 제한에 발목

이처럼 복막투석이 간편하고 예후도 좋지만 여전히 늘어나지 않는 배경은 급여제한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복막투석을 하는 배경이 활동성인 만큼 야간투석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한 기계가 필요하다. 현재 기계사용에 들어가는 소모품에 대해서는 환자부담이 큰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복막투석 환자 관리에 대한 수가도 아직은 인정되지 않고 있어 의료진들이 복막투석에 적극성을 보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류 교수는 "복막투석의 장점은 자율성과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복막투석을 시행하는 의사와 병원에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향후 많은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류 교수는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환자에서 임상결과와 비용을 파악하는 연구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연구 과제로 진행하고 있어 이 결과에 따라 투석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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