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어쩔 수 없이 회비 인상 ... 병협, 회원 범위 늘려 체질 개선

대한민국 의사를 대변하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회비 부족으로 휘청이고 있다. 병원을 대표하는 대한병원협회 사정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두 단체가 문제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의협이다.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몇 년 전부터 흘러나왔지만 최근 상황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회비 납부율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어 재정 파산 상태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의협 회비납부율은 10여년 전 80%에 가까웠지만 2012년 65%로 떨어졌고, 지난해 59.9%로 떨어졌다. 올해도 60% 정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추측이다.  

“회비에만 의존 말고 수익사업 구상해야”
미국의사협회, 저널 출판•보험 사업 등으로 재정 80% 충당

의협 회비 인상 움직임…회원들 회의적

회비가 덜 걷히면서 의협은 2012년 13억원 적자, 2013년 7800만원 적자, 2014년 2억 2000만원 적자를 기록하면서 기금 총액이 마이너스 2억 8000만원이 됐다. 지난해 의협 감사단도 회비 납부 감소로 인해 의협이 자본잠식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의협이 꺼낸 카드는 회비 인상이다.

회원들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자구책인 셈이다. 최근 의협은 상임이사회에서 △회비기준 조정(2010년 수준으로 환원) △회원 종별 조정(군의관을 하나로 통합해 회원 '다'로 통합분류) △감액회원 및 면제회원 조정(65세 이상→70세이상) 및 면제회원 기준 조정(70세 이상→75세 이상) △연구소 회계 회비수입 중 일부 고유회계로 전환(연구소 회비수입 중 3만원을 3년기간 한시적으로 고유사업으로 편입) △구독료 인상 등을 검토했다.

 

의협이 2010년 수준으로 회비를 환원한다고 했지만 결론은 회비 인상이다. 가군(개원의) 33만원, 나군(중령 이상, 봉직의) 24만 2000원, 다군(무급조교, 소령, 대위, 인턴, 레지던트, 전공의) 13만 7000원, 라군(공보의, 중위 이하) 10만 5000원이다.

의협 안양수 총무이사는 "집행부가 현재 어려우니까 과거에 인하했던 회비를 복구하려는 것이다. 현재 집행부 안으로 대의원총회에 상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며 "의료법상에서 회원은 강제조항인데 법적으로 강구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회비를 확보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비 인상이 논의되자 예상했던 대로 개원의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의협이 자신들이 써야 할 재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회비만 올린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2014년 대의원총회를 통해 2년 동안 한방대책특별기금 1만원과 투쟁회비 1~2만원을 걷어 놓고는 이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개원의는 의협이 회비를 인상하거나 수익사업을 하는 것은 회비 부족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 비뇨기과의사는 "의협이 개원의들을 위해 제대로 싸워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고 노력한다면 회비가 문제겠냐"고 반문하며 "의협 집행부가 의협의 존재 이유에 대해 더 치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협, 노무서비스•카드단말기 사업 구상중

지난해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수익사업 개발을 통한 재정확보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미국의사협회는 전체 의사의 약 18.9%만 회원으로 가입된 상황에서도, 전체 수익 14%만 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또 협회의 전체 수익의 80% 이상은 미국의사협회지(JAMA)를 포함한 각종 저널 및 미디어, 도서 판매, 각종 협회 라이선스, 데이터 판매, CPT 판매, 보험사업 운영을 통한 수익 등이 포함돼 있다

의협도 회비에만 의존하지 말고 미국 의협처럼 협회의 전문성을 살려 출판 및 기타 고유사업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협도 회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마냥 회비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의협은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회비 납부율을 높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노무서비스 제공이다. 회원들이 주로 하는 말 중 "의협이 나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냐"라는 지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의협이 회원들에게 인사•노무•급여 등에 대한 전문적인 노무 상담 및 컨설팅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의협은 최근 노무법인 유앤과 대회원 노무서비스 협약 체결을 준비 중이고, 2월 중순 의협 법제팀 검토를 완료한 상태다.

카드단말기사업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총무이사는 "시도의사회에서 시도하는 사업과 겹치는 측면이 조금 있지만 카드단말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대행사에서 단말기를 주고 건당 얼마씩 가맹점에 비용을 조금씩 준 것인데, 단말기 제공을 리베이트로 보기 때문에 이쪽으로 사업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또 "의협이 진행하는 사업은 단말기를 아이패드처럼 키워 그 단말기에 광고를 띄우는 것이다.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게 될 것"이라며 "특화된 환자별로 광고할 수 있어 제약사에서 관심이 높다. 지금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협회가 광고수익을 잡는 것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병협 “보건의료관련 종사자 아우르는 단체로”

의협이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게 문제라면 병협은 회원 및 가입자격이 제한돼 있 회원 수 자체가 적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전국 3000여 개 병원 중 병협에 가입돼 있는 병원은 950개 정도다. 회비는 지난 2012년 41억 7900만원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2013년 40억 6900만원, 2014년 41억 2800만원, 2015년 40억 8500만원으로 주춤한 상태다.

이에 대해 병협 관계자는 "해에 따라 조금씩 회비의 변동폭이 있지만 감소하고 있지는 않다"며 "회원 병원을 더 확보하기 위해 병원 방문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병협은 근본적인 체질을 바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회장이 모든 업무를 책임지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사장과 회장이 운영을 나눠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회원 자격에도 변화를 줘 회원 확대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병협 회원은 병원장들이다. 숫자에서 한정돼 있어 확장성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 회원을 확대하고 회비는 물론 병원 자체의 힘도 키우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병협 관계자는 "병협이 원장들만의 단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와의 협상에서 의사들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며 "회원 확대를 위해 병원의 대표뿐 아니라 간호사, 방사선사 등 병원 관련 직업 및 사업을 하는 개인 또는 법인단체 등을 준회원으로 받을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또 "미국병원협회는 회원을 기관회원, 개인회원, 준회원, 관련 단체로 구분해 회원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제약협회도 의약품, 의약외품 제조업을 하는 법인 또는 개인에게 준회원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병협이 원장들의 단체라는 이미지를 벗고 간호사, 방사선사 등의 의료관련단체라는 힘을 얻게 되면 정부와의 협상에서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병협은 최근 이러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5일 제주도에서 병원내 직능단체장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병협은 병원 내 다른 직능군들을 끌어들이려는 기초작업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직능단체에 병원협회 회무참여 기회 제공, 사안별로 전문가 의견 반영을 통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법인 설립으로 재정 건전화 모색

병협의 딜레마는 회비 이외의 뚜렷한 수익사업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에 열린 제56차 정기총회에서 2014년 회계연도 감사보고에 따르면 회비 외 수입이 10억 5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4억 5000여 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협이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기획하는 또 다른 안은 자법인 설립이다. 회비 수입 이외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병협 학술사업본부에서 진행하는 국제학술대회나 병원의료산업전시회, 학술연구교육, 정기총회 전시사업 등을 자법인을 통해 더 활발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병협 관계자는 "회원들의 회비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법인을 설립해 병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회비도 절감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가 의약품 데이터베이스 구축 업무를 하도록 만든 약학정보원, 대한간호협회가 간호교육 인증평가 업무를 맡긴 한국간호교육평가원 등이 자법인 설립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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